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날짜는 정해져 있는데 합천의 곳곳을 다 돌아야 했다. 아직 가야 할 곳이 많아서 황매산은 반드시 이날 올라야 했다. 차를 몰아 산 정상을 향해 달렸다. 해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겨울 해는 유독 달리기가 빨랐다. 해가 다 도망가기 전, 다행히 정상 바로 아래 주차장에 도착했다. 노을이 남아 있으니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은근하게 솟아오른 길을 달렸다. 마침내 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 석양은 대지 위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많이 늦었지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선물이라며 이 광경을 보여주려는 듯이.
1113m의 정상엔 세찬 바람이 불었다. 몸이 날아갈 것만 같은 폭풍 같은 그 안에서 어렵사리 눈을 뜨고 바라보니 멀리에서 흘러 내려온 백두대간의 산맥이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산과 산이 해가 지는 방향을 향해 뻗어나가는 광경이라니.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던가. 낮과 밤이 엇갈리는 그 시간의 저 아래 풍경은 산맥의 바다였다. 저쪽의 덕유산, 이쪽의 지리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해가 지는 시간을 피해 이곳을 떠난 이는 결코 보지 못할 웅장함이다. 함께 취재 온 사진작가가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그 모습은 그것대로 그림 같았다. 겨울 황매산의 저녁나절은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