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23일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서 사퇴한 강선우 의원의 국회 본회의장 자리가 비어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정권 교체 이후 7개월 남짓한 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적지 않은 수의 정치 스캔들에 연루돼 있다. ‘공천헌금 1억원 수수 의혹’이 제기된 강선우는 탈당한 뒤 제명당했고, 공천헌금 묵인을 비롯한 온갖 비위 사건에 관련된 김병기도 당 윤리심판원의 제명 처분을 받았다. 이재명 정부는 한나라당과 바른정당 출신 이혜훈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로 지명했는데,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의혹과 폭로가 터져나오는 중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상황을 ‘도덕적 해이’로 묘사하고, ‘당의 기강’을 바로 잡으라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
‘정치는 원래 더럽다’는 믿음
흔히 정치인의 ‘도덕성 문제’라고 불리는 것의 세부 내용을 보면 뇌물, 권력 남용,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언어적∙신체적 폭력 등이다. 이중 대부분은 ‘불법 행위’로 규정돼야 한다. 그래서 상당수가 고소∙고발이나 경찰 수사로 이어진다. 이런 행위를 ‘도덕적 해이’ 정도로 표현하는 것은 사건의 심각성과 의미를 희석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민주당 공천헌금 사건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듯이, 문제는 정치인 개인의 예외적이고 우발적인 일탈이 아니라 불법 행위를 묵인하거나 심지어 활용하는 정당 정치 구조에 있다.
한국 정치인의 부정부패는 다른 민주주의 나라에 비해 심각한가? 이는 간단히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매년 국가청렴도지수(CPI)를 발표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나라의 정치인들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한국 정치의 특성이라고 할 만한 것은 찾을 수 있다. 세상 어디에나 정치 스캔들이 있지만 그것이 발생하는 구조와 상황, 정당과 국가 제도가 거기에 대응하는 방식, 그런 사건이 정치 공간 내에서 수행하는 기능은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특징 중 하나를 볼 수 있는 것이 ‘정치란 원래 더러운 것’이라는 일반적 믿음이다. 여기에 담긴 의미는 정치의 장에서 더러운 행위가 자유롭게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불법과 비도덕이 정치의 ‘자연적이고 정상적인 본성’이라는 것이다. 다수가 이런 믿음을 갖게 된 이유를 한 가지로 특정하는 것은 힘들다. 단순히 ‘깨끗한 정치’를 경험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정치 자체에 대한 이해 방식 때문일 수도 있다. 즉 공동체의 삶을 운영하는 활동이 아니라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과 투쟁에서 정치의 본질을 찾는 것이다. 혹은 부정성의 논리가 지배하는 양당 체제 때문일 수도 있다. 유권자 다수가 저쪽을 반대하기 위해 이쪽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어느 쪽이 더 깨끗한지는 결정적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더구나 양쪽 모두 제 나름의 방식으로 불법을 저지르고 있으니, 다수가 저런 믿음을 갖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부정부패와 불법이 정치의 정상적 조건처럼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에서 ‘정치는 더럽다’는 인식이 발생한 것일 수도 있고, 이런 인식이 저 사실을 오히려 강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거대 양당의 정치인 대부분은 자기 정당 안에서 불법 행위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보다,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몰두한다.
그들의 실제 활동을 보라. 상대 정당의 잘못을 공격해서 여론전의 무기를 만들고, 자기 편의 스캔들을 관리하는 데 최대의 노력을 투입한다. 여기서 말하는 ‘관리’에는 노골적 부정, 방어, 묵인, 제재, 꼬리 자르기 등이 모두 포함된다. 자기 진영의 불법 행위를 적절히 용인하고, 활용하고, 방어하는 것이 지지층 결집과 전략적 이익에 실제로 도움이 된다. 법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 원칙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지키거나 위반할 수 있는 일종의 수단처럼 간주한다.
한국 정당 정치의 동력
한국 정치의 이러한 특징을 확인하려면, 신문 정치면을 살펴보면 된다. 정치 기사의 상당수가 온갖 부정부패에 관련된 것들이다. 연예 매체가 연예인 스캔들로 유지되는 것처럼, 정치 콘텐츠 생산자도 정치인 스캔들로 먹고산다. 정치인의 불법 행위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상상해보자. 아마도 정치인의 발언과 정당 활동의 상당 부분이 함께 사라질 것이고, 정치 미디어도 자기 소재를 잃게 될 것이다.
한국의 정치인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국가 운영의 방향이나 정책을 두고 다른 정치인과 논쟁하는 모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입법자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보다 언어적 공격을 주고받는 모습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늘 비슷한 과정이 반복되지 않는가? 정치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 상대 정당은 이 사건을 거대 스캔들로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방어하는 쪽에서는 ‘근거 없는 의혹 제기’라고 맞받아치다가 사건이 방어 불가능한 수준을 넘어가면 꼬리 자르기로 적당히 무마한다. 이런 노력에 비하면 정부를 운영하고 의회에서 법을 만드는 것은 오히려 2차적 활동으로 보일 정도다.
이런 상황은 수사기관과 사법부가 정당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이상적 환경을 제공해준다. 불법이 불법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당, 수사기관, 정부, 사법부가 뒤얽힌 대혼돈의 장이 펼쳐진다. 이는 결코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한국 정치의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모습이다. 이곳의 정치를 움직이는 주요 동력은 이런 대혼돈에서 나오고, 그렇게 만들어진 움직임은 예상 불가능한 결과로 이어지곤 한다.
지난 10년간 한국 정치를 움직였던 결정적 동력은 스캔들에서 나왔다. 당장 문재인 정부를 떠올려 보자.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후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이 사건은 곧바로 거대한 정치 스캔들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인 윤석열’이 탄생하게 됐고, 결국 내란 사태라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이와 동시에 조국을 방어하는 공고한 지지 세력이 형성됐고, 이들이 만든 조국혁신당은 22대 대선에서 단번에 제3당의 지위를 차지했다.
부정부패와 불법이 정치의 정상적 조건으로 기능하는 한 이런 상황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예측 불가능성이 정치 공간 전체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법을 존중하는 도덕적 정치인이 필요한 것은 단순히 ‘깨끗한 정치’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캔들이 정치 변동의 방향을 규정하는 황당한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집권당이 보여주는 모습이 불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