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미어샤이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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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미어샤이머’ 시대

입력 2026.01.16 15:05

수정 2026.01.1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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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5일자로 틱톡에 게시된 ‘가짜 미어샤이머’ 영상. 상단에 “미어샤이머: 일본이 경제적 보복을 받지 않고 중국을 도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현대 지경학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다”라는 자막이 중국어로 적혀 있다. 틱톡 갈무리

지난해 11월 25일자로 틱톡에 게시된 ‘가짜 미어샤이머’ 영상. 상단에 “미어샤이머: 일본이 경제적 보복을 받지 않고 중국을 도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현대 지경학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다”라는 자막이 중국어로 적혀 있다. 틱톡 갈무리

이것은 하마터면 쓸 뻔했던 기사 이야기다.

지난해 12월 초 SNS에서 미국 국제정치학계 석학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중·일 갈등을 분석한 발언 영상을 봤다. 영상에서 미어샤이머 교수는 일본이 “세계 최대 제조업 기반이자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 허브를 상대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국과의 갈등은 “경제적 안정성과 장기적 안보 모두를 훼손하는 오판”이라고 말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지난해 11월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 이후 양국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향후 상황도 일본에 불리하게 전개될 것이란 분석이었다.

국제부 일본 담당 기자 입장에선 혹할 만한 이야기였지만 기사로 쓰진 못했다. 영상 풀버전을 찾지 못해서였다. 해당 영상 자막은 중국어였고, 길이는 2분가량으로 짧았다. 편집본으로 짐작돼 자칫 그의 말을 왜곡하게 될까 우려됐다. 며칠 전 업로드된 영상이어서 시의성이 떨어진다는 판단도 있었다.

이후 해당 영상이 ‘조작 영상’이라는 AFP 통신 보도를 보게 됐다. 인물 영상과 음성 모두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낸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었다. 미어샤이머 교수 본인도 ‘가짜 미어샤이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영상)은 중·일관계에 대한 내 견해를 정확히 나타낸 것이 절대 아니다”라며 두 달가량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애쓰는 중이라고 AFP에 전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최근 페이스북에서 미어샤이머 교수 영상을 링크하며 그가 미국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군사작전을 비판적으로 논평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최 PD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링크했던) 비디오는 딥페이크였기에 삭제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동영상은 꽤 믿을 만한 정보였다. 언론 취재·보도는 사실의 위계 판단과 종합에 따라 이뤄진다. 직접 보고 들은 것, 정부·당국 및 공신력 있는 기관의 발표나 문서, 관계자 발언, 제3자 전언, 영상, 사진, 외신 보도 등 증거에 각각 다른 신뢰도를 부여하면서 이왕이면 여러 증거를 비교하고 더해 사실성 여부를 판단한다. 그 판단에 근거를 더하고자 ‘~에 따르면’ 같은 표현을 더한다. 영상의 경우 그것이 송출된 매체·채널명을 병기하며 내용을 소개하는 식으로 종종 쓰였다. 전언만으로는 쓸 수 없다고 내부 판단된 내용도 영상까지 확보되면 기사화되는 일이 있었다.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당장 해외 언론도 속은 모양이다. 지난달 25일 스위스 온라인 매체 왓슨은 “어제 우리는 ‘엡스타인 사건’이 미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미어샤이머 교수 발언을 기사에 실었다”면서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딥페이크의 피해자가 됐다”고 밝혔다. 그러고 보니 ‘마두로 체포’ 당일에도 AI로 만든 가짜 사진·영상이 쏟아져 혼란을 키웠다. 역사적 순간에도 가짜가 끼어드는 세상이다.

앞으로 언론은 어떻게 취재·보도해야 할까. AFP, 로이터 등은 팩트체크 코너를 통해 이따금 영상 조작 여부를 분석해 선진 사례로 거론된다. 그마저도 일상적으로 유통되는 다수 영상의 진위를 그때그때 판단하는 데엔 효용이 크지 않다. 개인이 확인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이러다가 ‘하마터면’으로 끝나지 않는 날이 오는 것 아닐까. 요즘 하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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