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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재명”이라는 식민적 상상력

입력 2026.01.14 06:00

수정 2026.01.1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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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4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FAFO(까불면 다친다)’ 게시글. 백악관 인스타그램

지난 1월 4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FAFO(까불면 다친다)’ 게시글. 백악관 인스타그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잡아간 뒤 서반구(아메리카 대륙)를 미국의 영향력 아래 가두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도널드+먼로’에서 따온 트럼프의 ‘돈로 독트린’은 외교 전략이라기보다는 서반구 전체를 향한 위협 내지는 강한 지배 의지의 표명에 가깝다.

돈로 독트린은 200년 전 먼로 독트린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정신은 완전히 다르다. 먼로 독트린이 유럽 제국주의의 간섭을 거부하며 신생 공화국들의 자율을 강조했다면, 돈로 독트린은 미국이 다시 제국이 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린란드 발언은 이 야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는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두고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했고, 측근 인사의 가족은 성조기로 덮인 그린란드 지도를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곧(SOON)”이라고 썼다. 중남미를 향한 언사는 더 거칠다. 콜롬비아 대통령을 “병자”라 부르며 군사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고, 쿠바를 “붕괴 직전”이라고 단정한다. 덴마크도, 중남미 국가들도 미국을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모든 태도를 집약하는 표현이 바로 백악관이 마두로 생포 직후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린 네 글자, ‘FAFO’다. “까불면 다친다(Fuck Around and Find Out).” 법과 규범, 외교가 사라진 자리에는 힘과 모욕, 비속어가 가득하다. 중국과 러시아를 차단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명분을 붙이지만, 이는 패권 유지를 위해 무력과 협박을 일상화하는 제국의 논리일 뿐이다.

문제는 이 ‘FAFO 외교’가 한국 정치와 결합하며 또 다른 괴물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마두로를 잡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극우 유튜브와 일부 정치권에서는 “다음은 이재명”이라는 말을 퍼뜨리고 있다. “베네수엘라 침공은 한국에 보내는 경고”라며, 마두로 압송 장면에 이 대통령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 온라인을 떠돈다. 한국은 망가졌고 미국이 나서서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황당함을 넘어 섬뜩하다. 베네수엘라는 선거 불복과 야권 탄압, 국제 제재가 일상이 된 사실상 독재국가다. 반면 한국은 정권 교체가 가능한 민주주의 국가이며, 미국 정부도 이 대통령의 당선을 두고 “대한민국의 민주적 힘과 회복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집권당의 무리한 입법 추진을 비판할 순 있지만, 한국과 베네수엘라를 같은 선상에 놓고 억지 주장을 펴는 것은 의도적인 왜곡일 뿐이다.

돈로 독트린은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에 예측 불가의 결단력이 결합한 실체적 위협이다. 이 불안한 시대에 국내 정치를 국제 문제로 전환하며 음모론을 퍼뜨리는 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길이자, 미국의 권력에 매달린 식민주의적 사고나 다름없다. 그토록 중시하는 한·미관계에도 도움이 될 게 없다.

이주영 편집장 young78@kyunghyang.com

이주영 편집장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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