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소아과 의사, 가짜뉴스를 치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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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아과 의사, 가짜뉴스를 치료하다

입력 2026.01.09 14:56

수정 2026.01.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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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재 변호사

이집트의 허위 정보 대응 활동가, 마흐무드 하드후드

이집트 군부 정권의 허위 정보를 검증·대응하는 ‘오픈 트랜스포메이션 랩’ 설립자 마흐무드 하드후드(가운데)의 현장 활동 모습. 이한재 제공

이집트 군부 정권의 허위 정보를 검증·대응하는 ‘오픈 트랜스포메이션 랩’ 설립자 마흐무드 하드후드(가운데)의 현장 활동 모습. 이한재 제공

지난해 11월, 이집트 카이로에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박물관이 들어섰다. ‘이집트 대박물관’의 개관 소식은 한국을 포함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이 상징적 프로젝트를 주도한 엘시시 정권이 민주적으로 당선된 대통령을 군사 쿠데타로 끌어내리고 13년째 집권 중인 권위주의 정부라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2011년 중동을 휩쓸었던 ‘아랍의 봄’의 결과로 30년 독재자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졌고, 2012년에는 사상 최초의 민주적 선거를 통해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당선됐다. 하지만 2013년, 엘시시 당시 국방부 장관이 주도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며 이집트 최초의 민주 정부는 1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쿠데타를 저지하려 광장을 메웠던 수많은 시민은 폭력적으로 진압됐다. 특히 한국의 광주를 떠올리게 하는 2013년 8월 14일의 ‘라바(Rabaa) 광장 학살’은 이집트 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시위대를 향한 군부의 무차별 발포로 라바 광장에서만 1000명 이상의 시민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흐무드 하드후드(Mahmoud Hadhoud)는 이 어두운 시대를 온 몸으로 통과한 청년이다. 혼돈의 시기 의대생이었던 그는 현장의 소식을 전하는 저널리스트가 되어 학업을 병행했다. 그는 마침내 소아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으나 결국 진료실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환자 한 명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도 고귀하지만, 의도된 거짓 정보와 빈곤으로 병들어가는 사회 전체를 치료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겐 더 필요합니다.” 그는 그렇게 환자 차트 대신 이집트 통계 데이터를 분석하는 저널리스트가 되어 사회의 환부를 도려내기로 결심했다.

이집트 군부 정권의 허위 정보를 검증·대응하는 ‘오픈 트랜스포메이션 랩’ 설립자 마흐무드 하드후드(왼쪽)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는 모습. 이한재 제공

이집트 군부 정권의 허위 정보를 검증·대응하는 ‘오픈 트랜스포메이션 랩’ 설립자 마흐무드 하드후드(왼쪽)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는 모습. 이한재 제공

허위정보를 막는 데이터의 방패를 세우다

현대 권위주의 정권에게 대규모 여론전은 중요한 무기다. 정부는 거짓 정보와 선동을 통해 대중을 동원하려 하고, 외부의 적을 만들어 시선을 돌린다. 이는 지역을 불문하고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의사 가운을 벗은 마흐무드가 가장 긴급하게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곳이 바로 이 허위 정보와의 전쟁터였다.

그는 비영리단체 ‘오픈 트랜스포메이션 랩(Open Transformation Lab)’을 공동 설립하고, 산하의 ‘아라비 팩트 허브(Arabi Facts Hub)’를 이끌며 저널리즘 혁신의 최전선에 섰다. 이들은 군부 정권이 생산하는 허위 정보와 선동을 데이터를 통해 직접 검증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들은 미디어 생태계 자체를 바꾸는 데 집중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정보의 진위 여부뿐만 아니라 ‘왜 그 거짓이 통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거짓이 확산하는가’라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군부 정권과 맞서는 언론 생태계 재구성은 다양한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먼저 이들은 언론사가 스스로 기본적인 검증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사실 검증 자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오픈 트랜스포메이션 랩은 데이터베이스와 결합한 AI 기반 허위정보 탐지 도구도 개발했다. 이 데이터베이스와 AI 도구를 이집트 미디어에 공유하는 것이 군부정권의 다양한 허위정보를 검증할 수 있도록 하는 첫걸음이다. 이들은 언론인과 시민들에게 허위정보 검증 과정, 방법론에 대한 교육도 진행한다. 지금까지 이를 통해 도구와 교육을 지원받은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언론인만 450명이 넘는다.

마흐무드가 이집트의 지난 10년 권위주의 정권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꺼낸 단어는 의외로 ‘빈곤’이었다. “통계청 데이터상, 이집트의 절대 빈곤율은 2015년 25% 수준이었던 것이 최근 35% 수준까지 상승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보기엔 가장 위험한 징후입니다.” 권위주의 정부하에서 이집트의 중산층이 붕괴하고, 이는 만성적인 경제위기로 이어졌다. 결국 이집트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으면서 2016년부터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고 있다. 1990년대 말 한국을 연상케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IMF 구조조정으로 통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식량 가격은 폭등했습니다. 반면 정부 주도의 철강, 부동산 산업에 투자한 부자들은 손쉽게 억만장자가 됐습니다. 사회보장 시스템은 오히려 열악해졌습니다.” 최근 급격히 심화한 이집트의 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마흐무드의 진단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권위주의 정부는 ‘희생양 만들기’를 통해 국면 전환을 꾀한다. “이집트는 본래 손님을 환대하는 국가입니다. 그런데 정부 기관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난민이 우리 경제를 망친다’는 식의 반(反)이민 정서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아라비 팩트 허브는 즉각적인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것이 사실과 다름을 증명했다. 마흐무드는 언론의 이러한 즉각적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정부가 책임을 외부에 전가할 때,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민주주의는 완성이 아닌 과정”

언론 환경을 바꿔 민주주의의 불씨를 살리겠다는 마흐무드와 동료들의 활동은 현재 이집트 국경 밖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집트 내에서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현지에 일부 팀이 남아 있지만, 체포되거나 구금된 동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돈 때문이 아니라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활동가이자 인권 옹호자로서 사회를 바꾸려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노력은 국제적인 인정을 받아 유엔민주주의기금(UNDEF)과 캐나다 국제개발연구센터(IDRC) 등의 지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마흐무드는 한국이 군사 독재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룬 역사, 그리고 12·3 불법 계엄 사태와 이에 맞선 시민들의 대응이 매우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한 번의 성취로 완성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켜내려는 노력이 계속돼야 하는 과정”이라며, 세계 곳곳의 권위주의 정부 등장에 맞선 세계 시민들의 연대를 촉구했다.

“한국의 비상계엄에도 분명 나름의 명분이 있었을 겁니다. 누군가는 안보를 위해, 경제를 위해 민주주의의 정지가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해치려는 모든 사람의 공통된 레퍼토리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물러난 곳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더 비참해집니다. 민주주의 대신 얻으려던 것이 안보든 경제이든, 결국은 그것조차 얻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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