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베카리아는 법왜곡죄를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할까



주간경향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9) 베카리아는 법왜곡죄를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할까

입력 2026.01.09 14:54

수정 2026.01.09 14:55

펼치기/접기
  • 한동수 변호사·전 대검찰청 감찰부장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2월 26일 기자회견에서 “법왜곡죄, 재판소원,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안을 흔들림 없이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12월 26일 기자회견에서 “법왜곡죄, 재판소원,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안을 흔들림 없이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우리 사회 몇 가지 현안은 죄형법정주의의 의미를 다시 묻고 있다.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된 명확성의 원칙, 유추해석 금지원칙과 관련해 법왜곡죄가 불명확한 것인지, 북한을 외환유치죄에 규정된 외국으로 볼 수 있는지, 대통령 당선인을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공무원으로 볼 수 있는지 등이 그것이다.

체사레 베카리아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1764년 저서 <범죄와 형벌>(Dei delitti e delle pene)에서 죄형법정주의, 고문과 잔혹한 형벌 금지, 사형제 폐지, 범죄와 형벌의 비례 등을 주장했다. 이로써 그는 ‘근대형법의 아버지’로 불리게 됐다. 이 책에 적힌 “오직 법률만이 범죄에 대한 형벌을 명할 수 있고, 이 권한은 사회계약을 통해 결합된 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입법자에게만 속한다”는 문장은 죄형법정주의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무엇이 범죄이고, 또한 그 범죄에 대해 어떤 형벌을 가할 것인지는 반드시 의회가 사전에 제정한 법률에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죄형법정주의, 각국의 헌법과 형법을 관통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1948년)과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1966년)은 ‘어느 누구도 행위 또는 부작위가 행하여진 당시의 국내법 또는 국제법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유죄로 판결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했다. 이로써 베카리아의 죄형법정주의는 오늘날 국제인권규범으로 각국의 헌법과 형법을 관통하는 원칙이 됐다.

우리 헌법도 제12조 제1항에서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제13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로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라고 규정해 죄형법정주의를 천명하고 있다.

이처럼 죄형법정주의는 범죄와 형벌이 국회가 제정한 형식적인 의미의 법률로써 미리 정해져 있어야 하므로 그 파생원칙으로 ‘형벌법규의 법률주의(관습형법 금지의 원칙), 형벌불소급(사후입법금지)의 원칙, 절대적 부정기형(형의 기간을 확정하지 않고 선고하는 자유형) 금지의 원칙, 법규내용 명확성의 원칙, 유추해석 금지의 원칙’ 등을 가지게 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법왜곡죄를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그 조문은 “법관, 검사 또는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에 관하여 법령을 의도적으로 잘못 적용하거나 범죄사실을 묵인하여 당사자의 일방을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드는 경우 (중략)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부당한 목적”, 특히 “부당”이라는 문구에 대해 주관적 해석 가능성이 있어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되는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헌법재판소는 2000년 명확성의 원칙에 관해 “처벌법규의 구성요건이 (중략) 다소 광범위하여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을 필요로 하는 개념을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통상의 해석방법에 의하여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면 당해 처벌법규의 보호법익과 금지된 행위 및 처벌의 종류와 정도를 알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면 헌법이 요구하는 처벌법규의 명확성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고 판시했다.

‘부당’이 포함된 법조문에 대해서는 ‘현저하게 부당한 이익’과 ‘부당한 이익’ 모두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직권남용’ 역시 법원이 ‘부당한 목적’, ‘부당한 방법’으로 행사하는 경우로 해석하고 있는 만큼 명확성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독일은 우리나라보다 죄형법정주의 적용에 더 엄격한데도 법왜곡(Rechtsbeugung)죄의 구성요건은 보충적인 해석을 더 필요로 하는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법률을 왜곡한 경우’만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에 비춰보더라도 명확성 위반 논란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국회에서 논의 중인 법왜곡죄는 명확성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자의적 법 해석과 집행 배제해 인권보장

조은석 내란특검은 피고인 윤석열, 김용현 등이 무인기 북한 침투 심리전단 살포작전, 오물풍선 원점 타격계획, 방공무기 이용 한강중립수역 상공 경고사격 계획을 세웠으며, 이 가운데 무인기 침투가 9차례 진행돼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유도했다는 혐의에 대해 외환유치죄가 아닌 일반이적죄로 이들을 기소했다.

외환유치죄의 구성요건인 “외국과 통모(通謀)하여 대한민국에 대하여 전단(戰端)을 열게 하거나 외국인과 통모하여 대한민국에 항적(抗敵)”한 행위 가운데, 북한은 적국이어서 외국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전통적 견해인 점과 의사연락에 관한 합의가 없다는 점, 외환예비음모죄가 일반이적죄보다 법정형이 낮은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외국에 북한이 포함되는지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형법을 개정하려는 법안이 발의돼 있다. 이런 법 개정 여부와 관계없이 현행 규정상 외국에 북한이 포함된다고 보더라도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적극적인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또한 통모의 개시가 없더라도 예비음모죄로 처벌할 수 있다. 피고인들이 북한을 끌어들여 국지전 등을 일으키려 했다는 것이 범행의 동기를 비롯한 사안의 실체에 더 맞는다는 시각이 있다. 나아가 윤석열 정부에서 외교사령탑 역할을 한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의 논문 중 “북한의 기습적인 대남 국지도발이 장기화하여 제한전이나 게릴라전으로 이어질 경우 (중략) 일본 자위대의 한국지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재 부분과의 관련성 또한 법정에서 밝혀져야 한다는 요청이 있다.

민중기 특검은 또 윤석열 전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공천 개입 행위에 대해 공직선거법 등 관련 법상 대통령 당선인이 공무원으로 규정되지 않아 기소에 이르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되는 명확성의 원칙과 유추해석금지 원칙에 반하는가의 문제다. 2012년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제주특별자치도 위촉위원이 뇌물죄가 적용되는 공무원에 포함되는지에 관해 “유추해석을 통하여 형벌법규의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법관에 의한 범죄구성요건의 창설’에 해당하여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된다. (중략) 국가공무원법·지방공무원법에 따른 공무원이 아님에도 법령에 기하여 공무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공무원 의제규정이 없는 사인을 이 사건 법률조항의 ‘공무원’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처벌의 필요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범죄와 형벌에 대한 규정이 없음에도 구성요건을 확대한 것으로서 죄형법정주의와 조화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비록 국가공무원법·지방공무원법상에 따른 공무원이 아니라 하더라도 법령에 의해 위촉되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공무를 담당하는 경우에는 뇌물죄의 주체인 ‘공무원’으로 정당하게 해석될 수 있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관 3인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위와 같은 견해 대립은 대통령 당선인의 경우에도 동일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죄형법정주의는 궁극적으로 자의적인 법 해석과 집행을 배제해 헌법이 보장하는 최상위의 가치인 인권보장을 위한 것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않고 오히려 내란·외환에 관한 죄를 저지르는 초유의 헌법질서 파괴 상황을 맞이해 합당한 처벌을 찾는 과정에서 죄형법정주의의 의미를 다시금 새기게 됐다. 특히 판·검사가 맡은 바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구조적 문제로 인해 법왜곡죄를 신설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된다. 일찍이 타고르가 말한 ‘동방의 등불’이 켜지면서 우리나라는 인간의 존엄과 평화를 향해 역동적으로 전진하는 빛의 혁명을 거치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