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따라 감독 교체…성적·구단과 갈등으로 예견된 경질
정체성과 경영 문제 해결되지 않는 한 누가 되든 단명 가능성
지난해 12월 프리미어리그 경기 도중 항의하는 후벵 아모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로이터연합뉴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명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첼시 FC(이하 첼시)가 최근 잇따라 감독 교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맨유는 후벵 아모링 감독(41·포르투갈)과 첼시는 엔조 마레스카 감독(46·이탈리아)과 결별했다. 최근 성적과 경기력을 고려하면 이해 가능한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국 언론은 “감독 개인의 실패라기보다 그릇된 구단 운영 구조와 의사결정 시스템이 빚은 결과”라고 비판했다.
■알렉스 퍼거슨 이후 13년 반복된 실험과 실패…맨유가 잃은 건 ‘감독’ 아니라 ‘기준’
아모링은 포르투갈 스포르팅 CP를 정규리그 우승(2020-2021·2023-2024시즌)으로 이끌고 2021년 포르투갈 리그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된 뒤 2024년 11월 맨유 사령탑에 부임했다. 맨유 고위층은 당시 포르투갈에서의 성공 모델이 맨유에서도 그대로 작동할 것으로 판단했다. 맨유 내부에서는 “현재 선수단이 스리백 시스템을 소화할 수 있는가”, “단기 성과 압박 속에서도 장기 재건을 감내할 수 있는 환경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구단 수뇌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모링 경질은 오래전부터 예견됐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친 데다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아모링의 실패는 전술이나 결과 이전에 선임 과정에서부터 문제 소지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구단은 ‘새 시대’를 선언하며 젊고 혁신적인 지도자를 선택했지만, 정작 그가 구현하려는 축구와 당시 맨유가 보유한 스쿼드, 구단이 기대한 방향성 사이에는 태생적 불일치가 존재했다.
아모링 본인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는 “교황조차 나를 바꾸지 못한다”고 말할 만큼 자신의 시스템에 대한 확신이 강했다. 그러나 부진이 길어지면서 그 확신은 철학이 아니라 완고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구단은 초기 적응기를 거친 뒤 보다 공격적이고 유연한 전술 전환이 이뤄지기를 기대했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아모링은 과거의 선택으로 되돌아갔다. 아모링식 3-4-3은 전방 압박과 속도, 공격성을 중시해온 ‘맨유다움’과 일정한 거리감을 보였다.
맨유 출신 수비수 게리 네빌은 “구단은 실험을 멈추고, 클럽 DNA에 맞는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빌은 맨유의 전통으로 “젊은 선수 기용, 빠르고 공격적인 축구, 관중을 즐겁게 하는 플레이”를 꼽으며 “클럽이 감독에 맞추는 게 아니라 감독이 클럽에 맞춰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득점왕(6골)으로 현재 BBC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인 게리 리네커 역시 “아모링의 고집과 클럽의 판단 착오가 맞물린 결과”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12월 프리미어리그 경기 도중 항의하는 엔조 마레스카 첼시 감독. AFP연합뉴스
■전술-스쿼드 미스매치 넘어 ‘조직 설계 실패’
문제는 단순히 전술 적합성에 그치지 않았다. 아모링에게 요구된 것은 단순한 시스템 변화가 아니라 ‘새 질서’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선택을 고수할수록 ‘고집불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외부 압박에 따라 포메이션을 바꾸는 것을 ‘정체성 상실’로 간주하면서 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혔다. 이른바 ‘억지 3-4-3’ 포메이션은 맨유 내부 권력 구조와 감독의 고집이 결합된 결과물이었다. 전술 문제는 곧 권한 문제로 번졌다. 아모링은 선수 기용과 이적 정책, 장기 구상에 있어 더 큰 재량을 요구했지만, 맨유 고위층은 구조 중심형 의사결정 체계를 유지했다. 감독은 이를 ‘간섭’으로 인식했고, 구단은 ‘정상적인 관리’로 받아들였다. 이적 자금과 구단 구조를 둘러싼 아모링의 공격적인 발언은 내부 조율을 넘어 사실상 수뇌부를 압박하는 메시지로 해석됐다. BBC는 “내부 논쟁이 외부로 노출되는 순간, 감독의 입지는 이미 크게 흔들렸다”고 평가했다. 특히 유소년 선수와 일부 핵심 선수에 대한 아모링의 공개적 평가절하 발언은 아카데미를 클럽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아온 구단 철학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비판은 아모링 개인에만 머물지 않는다. 더 큰 책임은 그를 선택하고 2억5000만파운드가 넘는 투자를 집행한 구단 고위 경영진의 판단에 있다는 지적이다. 가디언은 “왜 이 조합이 위험할 수 있는지 사전에 걸러내지 못한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고 짚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 은퇴 이후 13년 동안 맨유는 데이비드 모예스, 루이스 판할, 조제 무리뉴, 솔샤르, 랑닉, 텐하흐 그리고 아모링까지 7명의 감독을 거쳤지만, 실패는 반복됐다. 감독 교체로 위기를 넘기려는 시도는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게 했다. “맨유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라는 철학과 경영에 대한 질문이다. 감독이 교체될 때마다 전술이 바뀌었고, 전술이 바뀔 때마다 필요한 선수 유형도 달라졌다. 맨유의 연이은 실패는 감독 교체 과정에서 누적된 손실과 혼란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물이다.
■첼시도 피해갈 수 없었던 구조적 함정
엔조 마레스카 경질 역시 결론은 비슷하다. BBC와 가디언에 따르면, 마레스카의 퇴장은 단순한 성적 부진 때문만은 아니었다. 최근 리그에서 하락세는 부담이었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감독과 구단 수뇌부 사이의 신뢰 붕괴였다. 마레스카는 선수 기용과 로테이션, 회복 프로그램 운영 과정에서 구단의 개입이 과도해졌다고 느꼈다. 이에 대해 구단은 감독이 의료·피지컬 스태프의 권고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첼시는 ‘장기 프로젝트’를 표방해 왔지만, 실제 운영 방식에서는 여전히 즉각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모순이 드러났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첼시는 감독에게 장기 비전을 요구하면서도 단기 결과로 평가하는 구조를 반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마레스카는 2024년 6월 첼시 지휘봉을 잡은 뒤 약 1년 만에 2025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우승을 이끌며 구단에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안겼다. 그러나 우승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팀을 떠나게 됐다. 성적만 놓고 보면 결별이 불가피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가디언은 “첼시에는 감독이 지켜야 할 골든 룰이 있다”며 “마레스카 감독이 이를 어기면서 경질됐다”고 분석했다. 첼시의 ‘골든 룰’은 감독이 구단 운영의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라는 원칙이다. 첼시는 선수 영입과 스쿼드 구성, 장기 전략을 감독이 아닌 구단 수뇌부와 전문 영입팀이 주도하는 구조를 고수한다. 선수 기용에서도 의료진과 로드 매니지먼트 원칙이 감독 판단보다 우선하며, 부상 위험이 큰 선수의 무리한 출전은 허용되지 않는다. 첼시는 감독을 전권을 쥔 지휘관이 아니라 구단이 설계한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수석코치로 규정한다.
첼시는 마레스카 경질 5일 만에 리암 로세니어(42·영국)를 후임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로세니어는 선수 은퇴 직후 잉글랜드 헐 시티에서 팀을 안정적인 경쟁 구단으로 끌어올리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2024년부터 프랑스리그 스트라스부르로 가서 지휘봉을 잡았다. 전통적으로 자국 무대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 다른 영국 지도자들과 반대 행보다. 그는 전술보다 팀워크, 단결, 화합 등 조직과 기준, 팀 문화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다만 첼시와의 궁합이 어떨지는 지켜봐야 한다. 누구를 뽑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질문은 “구단은 어떤 축구를, 어떤 방식으로 지속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이뤄졌느냐”다. 첼시든, 맨유든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차기 감독이 누구든 ‘단명’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