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부터 1993년까지 쓰레기 매립장으로 사용됐던 옛 난지도 자리에 조성된 서울 마포구 생태공원 전경.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우리는 쓰레기를 너무나도 빨리 치우고, 잊는다. 나의 본가는 옛 난지도 동네다. 십수년 전만 해도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으면 거의 허허벌판이었는데, 이제 이곳은 세련된 방송사 건물이며 빌딩, 아파트, 공원으로 가득하다. 하늘공원을 걸을 때면 종종 발밑에 얼마나 막대한 쓰레기가 여전히 묻혀 있을까 생각에 빠져들곤 했다.
기사를 작성하며 임태훈의 신간 <쓰레기 기억상실증>을 읽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쓰레기 기억상실증”이란 쓰레기를 일상적으로 생산하고 버리면서도,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 누가 그것을 처분하는지는 외면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야 자본주의하에서 소비자들은 더 많은 쓰레기를 생산하면서도 죄책감을 갖지 않고, 계속 ‘새 상품’(빠르게 쓰레기가 될수록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을 노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기억상실은 대신 대가를 치러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세련된 도시 중산층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수시설, 공장식 축산시설, 살처분, 쓰레기 소각장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들을 ‘남의 것’으로 밀어내고 눈앞에서 치워내는 것까지가 라이프스타일의 완성이다. 수도권의 생활폐기물을 지방의 민간 소각장에 떠넘기는 것 역시 그 일환이다.
기억상실의 대가는 약자들에게로 향한다. 한 취재원은 이렇게 말했다. “쓰레기 소각장 입지 최고의 세 조건이 뭔지 아세요? 입지 좋고, 땅값 싸고, 민원 없고. 지방은 고령화됐고 수도권처럼 목소리 내는 사람들이 없으니까 딱인 거예요.” 그리고 기억상실의 상태에선 우리는 마치 우리가 살아가고 소비하는 방식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게 된다. 마치 낭떠러지를 향해 달리는 기차처럼.
정부는 민간 소각이 해결책인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해 ‘기억상실한 채 살아갈 수 있는’ 이들, 강자, 도시 중산층만의 해결책이다. 절대로 공동체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김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