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원내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힌 후 입장문을 집어넣고 있다. 한수빈 기자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사퇴는 늦었고, 사과는 짧았으며, 반성은 모호했다. 하지만 그의 거취와 무관하게 이번 사태는 고위공직자가 얼마나 후진적인 특권 의식에 절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도된 수많은 의혹을 보면 공과 사의 경계가 무너진 ‘사노비 정치’의 끝판왕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번 논란을 관통하는 핵심은 단순한 도덕성 문제가 아니다. 권력의 사유화다. 장남의 국가정보원 채용 개입 의혹, 차남의 대학 편입과 취업 청탁 정황, 배우자의 구의회 업무추진비 사적 유용 의혹, 대한항공 고가 숙박권과 공항 의전, 지역구 병원의 특혜 진료까지…. 공직자의 권력이 어떻게 가족의 편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는지를 이보다 더 신랄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보좌진은 정책 참모가 아니라 가족의 개인 비서처럼 동원됐다. 항공사와 병원, 대기업은 공적 감시의 대상이 아니라 사적 편의 제공 창구처럼 활용됐다. 의정활동과 국정감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자녀 취업과 가족 편의를 위한 레버리지로 전락했다.
더 심각한 것은 당사자의 대응 방식이다. 의혹이 제기되자 김 의원은 사실을 설명하기보다 언론을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걸고, 제보자가 내놓은 증거들을 ‘해고된 보좌관의 음해’로 몰아세웠다. 나아가 전직 보좌진의 단체 대화방을 공개하며 ‘메신저 공격’으로 국면을 전환하려고도 했다.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기보다 권력으로 찍어누르려는 태도는 이번 사태의 성격을 ‘권력형 비위’로 규정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낯설지도 않다. 불과 몇 달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던 강선우 민주당 의원이 과거 보좌진에게 변기 수리, 쓰레기 처리 등을 지시했다는 갑질 논란 끝에 물러난 과정을 지켜보며 경험했던 익숙한 장면이다. 국회의원은 언제부터 지역구에서 ‘가족 대행 서비스 센터’ 역할을 하게 됐나. 보좌진은 왜 의원 자녀의 진로와 가족 여행, 병원 예약까지 처리해야 하는가.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제2, 제3의 김병기는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원내대표직 사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제 공은 수사 기관으로 넘어갔다. 국정원법 위반,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상 횡령 등 산적한 혐의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민주당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누리는 제왕적 권한과 불투명한 공천 시스템을 개혁하는 자정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이 정도는 괜찮다”거나 “법적 문제만 없으면 버텨도 된다”는 오만한 태도가 공직 사회의 기준이 돼선 안 된다. 권력이 공공의 이익이 아닌 사적 이익을 위해 쓰일 때, 그 끝은 결국 파멸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날려야 한다. 우리 사회가 공직 윤리의 최소기준을 지켜낼 수 있는지, 그 시험대가 마련됐다.
이주영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