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약에 우리>의 은호(구교환 분)와 정원(문가영 분)이 자취방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쇼박스 제공
지난달 <만약에 우리>(김도영 감독) 시사회가 끝나고 생각했다. ‘모처럼 몰입되는 멜로 영화를 봤다’고. 원작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2018)를 어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영화는 기분 좋을 만큼의 적당한 아련함을 남겼다.
플롯은 간단하다. 20대 초반에 만나 서로 열렬히 사랑했지만, 결국 헤어진 옛 연인이 주인공이다. 이후 10년 만에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우리가 왜 헤어졌더라’ 과거를 회상한다.
“가장 초라했던 그때, 가장 눈부시던 우리.” 영화의 홍보 문구가 암시하듯, 귀엽고 사랑스러운 연애를 하던 두 사람은 서로의 초라함을 견디지 못하고 헤어진다.
둘은 대학생 때 만났다. 돈이 없어도 서로만 있으면 행복했다. 지방에서 상경한 은호(구교환 분)와 보육원에서 자란 정원(문가영 분)에게는 각자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하지만 사랑도, 꿈도 비싼 서울살이에 시들어간다. 돈이 필요해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느라 정말 원하던 일을 준비할 시간은 없고, 일만 하는데도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는다. 나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쟤 때문인 것도 하다. 그렇게 사랑에 불순물이 섞인다.
비슷한 시기를 거쳤던 20~30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닐까. ‘취준생’(취업준비생)이라는 시기가 사람을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지, 서울 물가가 얼마나 사악한지를 알기에 더 공감하며 봤던 거 같다. 이 ‘보편적 초라함’이 중국 원작에서는 어떻게 그려졌을지도 궁금했다. 그날 바로 넷플릭스에서 <먼 훗날 우리>를 재생했다. 그리고 곧 당황했다. 플롯은 똑 닮았는데, 그 속의 캐릭터가 꽤 달랐기 때문이다.
<만약에 우리>의 은호와 정원은 돈이 없을 뿐 착실했다. 서로만을 바라보고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모범생과라고 할까. 반면 원작의 린젠칭(징보란 분)과 팡샤오샤오(저우동위 분)에게는 조금만 삐끗하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함이 있었다. “베이징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꿈인 샤오샤오는 돈만 보고 사람을 만나곤 했다. 젠칭은 포르노를 구워낸 불법 DVD를 팔다가 구속되기도 한다. 둘은 꿈보다는 ‘한탕’을 위해 베이징에 온 것처럼도 보인다. 서로 올곧게 애정을 표현하기보다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도 결국 사랑을 한다.
<먼 훗날 우리>의 세상은 내가 디뎌왔던 세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원작보다는 한국판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나를 더 이입해볼 수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은호와 정원보다 젠칭과 샤오샤오가 더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젠칭과 샤오샤오의 모난 구석이 손에 만져지는 듯했기 때문이다. 극중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았을지 상상이 갔다. 남자 보는 눈 없는 샤오샤오는 계속 자신을 내주다가 버림받는 사랑을 반복했을 테고, 젠칭은 몰래 바람을 피우며 편한 대로 살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저 착하기만 한 은호와 정원의 10년은 어슴푸레했다.
여전히 <만약에 우리>가 괜찮은 멜로 영화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캐릭터적으로는 너무 무난한 은호와 정원이지만, 배우 구교환과 문가영의 연기가 둘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다만 사회가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보통의 한국 청년’으로 젠칭과 샤오샤오가 각색된 것이 조금 아쉬워졌다. 보편적인 이야기로 바꾸는 것이 상업적으로는 안전한 선택이었을 테다. 이해는 가지만, 영화계가 위축될수록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보기 어렵겠다는 우울한 지레짐작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