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있던 옛 노예시장. 지금은 노예박물관으로 바뀌어 비극의 역사를 증언해주고 있다. 손호철 제공
“놀라운 은혜여!/ 나같이 철면피를 구한 얼마나 달콤한 소리인가/ 한때 나는 길을 잃었지만, 이제 나는 길을 찾았네/ 한때 눈멀었지만, 이제는 볼 수 있다네.”
유럽과 아프리카, 아메리카대륙으로 이어진 노예 3각 무역을 요약한 설명. 손호철 제공
미국 남부의 중심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이 가까워지자 미국 포크송의 대부인 우디 거스리의 아들 아를로 거스리의 노래를 찾아 틀었다.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장을 찾아가며 듣기에 적합한 노래였기 때문이다. 시장은 마트처럼 깨끗하지는 않지만, 시끌벅적하고 살아 숨 쉬는 삶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시장은 원래 즐거운 곳이지만, 찰스턴 시장은 그렇지 않다. 사람을 사고팔던 노예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악명 높은 노예선 선장 존 뉴턴은 1748년 노예라는 ‘화물’을 가득 싣고 아메리카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죽음 직전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을 살려주면 회개하고 다른 삶을 살겠다고 기도했고, 다행히 살아났다. 그는 목사가 됐고, 자신의 삶을 주제로 이 노래를 지었다. 악명 높은 노예선 선장이 지은 이 노래야말로 악명 높은 노예시장을 찾아가며 듣기에 적합한 노래 아닌가?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대륙으로 끌려가던 노예들의 노예선 선적 모습. 손호철 제공
노예 가득 싣고 오면 수십억~수백억원 벌어
찰스턴은 아름다운 남부의 도시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노예 거래의 중심지였다니? 찾아간 노예시장은 노예시장이었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색창연한 석조건물이었다. 1856년 문을 열어 1860년대 중반까지 영업했던 이 시장은 이제 ‘옛 노예박물관’으로 변했다. 박물관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숨이 막혔다. 노예제도에 대해 많은 자료를 읽었지만, 노예 거래의 현장에서 벽에 걸린 당시의 1차 자료들을 직접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다음 달 3일, 94명의 건강한 특급 니그로 화물을 판매합니다. 시에라 레옹에서 방금 도착한 39명의 남자, 15명의 소년, 24명의 여성, 16명의 소녀”, “쌀농사에 익숙한 55명의 특급 니그로 가족 판매함. 조건은 3분 1 현금이며 잔액은 2년 분할상환할 수 있지만 이자 있음”, “사우스캐롤라이나 거래 증명서: 1250달러에 마거릿이라는 여자 노예와 그 아이를 판매했음을 증명함”, “현상수배: 도주한 니그로 여자와 두 아이 현상금 20달러. 이름은 배티, 인상착의는 키가 크고 옆얼굴에 내가 인장 찍었음.”
노예 경매를 알리는 당시의 포스터. 손호철 제공
16세기부터 시작된 아메리카대륙의 노예 거래는 기본적으로 ‘3각 무역’이었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네델란드 등의 상인들은 총과 탄약, 직물, 럼주 등 공산품을 싣고 아프리카로 향했다. 아프리카에 도착한 이들은 이 물건을 주고 현지 상인들이 포로로 잡거나 납치해온 아프리카인들과 교환했다. 다음은 ‘중간 항해’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들을 싣고 아메리카대륙으로 향했다. 노예상들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예들을 움직이기도 어려울 정도로 빽빽하게 태워 대서양을 건너는 긴 여정을 떠났기 때문에 15~20%는 항해 중 목숨을 잃고 상어의 밥이 됐다. 노예상들은 아메리카대륙에 도착하면 이들을 현지 노예상들에게 팔고 그 돈으로 목화, 사탕수수와 같은 노예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사서 유럽으로 돌아가 팔았다. 유럽과 미국의 부와 풍요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특급 남성 1500~1600달러(2007년 기준으로 3만6000~3만8000 달러), 1급 남성 1400~1500달러 (3만3000~3만6000달러), 2등급(보통) 남자 1100~1250달러(2만6000~3만달러), 특급 여성 1325~1400달러(3만1000~3만3000달러), 1등급 소녀 1275~1325달러(3만~3만1000달러), 2등급 소녀 800~1100달러(2만1000~2만6000달러)”
노예들이 도착하면, 찰스턴의 노예 상인들은 그들을 팔 수 있도록 잘 먹이고 단장시켰다. 다음에 중요한 작업은 이들을 등급별로 분류하는 것으로, 당시의 등급별 가격표가 전시돼 있다. 보통 남자가 지금 가격으로 3500만~4000만원이니, 노예를 한배 가득 싣고 오면 수십억~수백억원에 달하는 떼돈을 벌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노예는 당시 최고의 자산으로, 1840~1860년대에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가장 부유했던 갑부는 1843명의 노예를 거느리고 있었다. ‘노예 재산’만 600억원이 넘었다는 이야기다. 1844~1846년에 주지사를 지낸 윌리엄 에이컨은 노예가 804명으로 주에서 세 번째로 부자였고, 노예들을 동원해 쌀농사를 지어 유럽에 수출했다.
성별, 나이, 건강 상태 등에 따라 결정되는 노예 가격표. 손호철 제공
트럼프 시대, 노예제 보상 등에 대해 역풍
찰스턴 등 미국에 도착한 노예들은 ‘2차 여행’을 떠나야 했다. 자신을 구입한 새 주인을 따라 떠나는 ‘국내 이동’으로, 많은 노예가 가족으로부터 헤어져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1787~1861년 노예들의 국내 이동이 100만명에 달한다. 아메리카대륙으로 끌려온 아프리카 노예의 역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고 부끄러운 역사’다.
1865년 북군의 윌리엄 셔먼 장군은 남북전쟁 승리 후 남군으로부터 압류한 땅 중 40만에이커를 자유인이 된 아프리카계 노예들에게 분배했다. 하지만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이를 무효화하고 땅을 원주인인 노예주들에게 돌려줬다. 1999년 한 아프리카계 단체의 연구에 따르면, 미 역사에서 아프리카계가 박탈당한 재산은 1조4000만~4조7000만달러로 아프리카계 1인당 14만2000달러(2024년 기준으로 18만8000달러)를 보상해야 한다. 2020년 경찰에 의한 아프리카계 살해사건 후 터져 나온 민권운동 속에서, 2021년 일리노이주의 에번스톤시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계에게 보상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하버드대학도 1억달러로 ‘노예제 유산’ 프로그램을 만들어 하버드의 노예제 관련성과 보상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주인에게 채찍질을 당한 노예의 등에 남은 상처가, 미국이 아프리카계에게 저지른 역사적 죄악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손호철 제공
하지만 노예제 ‘과거 청산’ 노력이 정체돼 있다. 아프리카계 민권단체들이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2020년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이 문제가 쟁점이 되기도 했지만, 트럼프주의와 미국의 보수화 속에 노예제 보상 등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아프리카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해온 자메이카의 세계적인 레게 가수 밥 말리는 1980년 아프리카에 공연하러 갔다가, 아프리카의 빈곤과 억압에 충격을 받았다. 이제 미국의 아프리카계는 대통령(오바마)도 배출했다. 아직도 인종차별과 불평등은 심각하지만, 미국 아프리카계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생활 수준은 아프리카인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것도 사실이다. 박물관에서 나와 ‘트럼프주의’라는 극우적 현실로 돌아오자, 아프리카에서 야만인으로 살 것을 미국으로 데려와 아프리카인보다 잘살게 해줬으면 고마워해야지, 무슨 보상이냐는 주장이 나올지 모른다는 걱정이 엄습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아프리카계 민주당 연방의원들에게 “그들이 온 완전히 파괴된 범죄 지역으로 돌아가 그곳을 고치는 것이나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