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과 명태균 공천 개입, 통일교 청탁·뇌물 수수 의혹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김건희씨가 지난 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때로는 가장 은밀한 곳에서 진실이 드러날 때가 있다. 12·3 불법 계엄 사태를 수사한 내란특검의 최종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가장 눈길이 간 대목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기 초반부터 계엄 준비에 나섰다는 정황이나 계엄 선포를 지난해 12월 3일로 선택한 이유 같은 것보다 계엄 선포 후 터져 나왔다는 김건희 여사의 분노였다.
“너 때문에 다 망쳤다.”
특검이 확보한 진술에 따르면, 김 여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향해 화를 내며 이렇게 쏘아붙였다고 한다. “생각한 게 많았는데 계엄이 선포되는 바람에 모든 게 망가졌다”는 취지의 발언도 뒤따랐다. 이 짧은 대화는 그날 밤의 혼란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권이 작동해온 기묘한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도대체 무엇을 망쳤다는 것일까. 김 여사가 그토록 공들여 생각하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상적인 대통령의 배우자라면 대통령이 헌법을 중단시키고 군대를 동원한 상황에서 국민의 안위나 역사의 심판을 먼저 걱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 여사 발언의 맥락에는 헌법 질서의 파괴에 대한 우려나 국민의 공포에 대한 공감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계획이 틀어진 것에 대한 짜증과 분노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듯하다.
이는 김 여사가 자신을 단순히 대통령의 배우자가 아니라 국정의 공동운영자 혹은 실질적 권력자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법무부 장관에게 수시로 연락해 자신에 대한 수사상황을 확인하고 상대 진영 인사들에 대한 수사에도 개입했다는 그간의 정황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의 분노는 권력을 철저히 사유화해온 자의 고백처럼 들린다.
그러므로 그에게 ‘계엄’은 헌정 파괴의 범죄가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이 정교하게 짜놓은 권력 유지와 생존의 시나리오를 남편의 우발적이고 거친 행동이 산산조각 내버린 ‘돌발 사고’에 불과했던 것 아닐까. 윤 전 대통령을 향한 질타는 국정 책임자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내 사업을 네가 망쳐버렸다”는 동업자의 원망처럼 들린다.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순간에도 중요한 건 ‘나의 계획’이었다.
그래서 “너 때문에 다 망쳤다”는 김 여사의 말은 역설적으로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준다. 만약 계엄이 성공했다면, 혹은 윤 전 대통령이 그의 생각대로 움직이며 계속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실현됐을 그 ‘망가진 계획’들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더 큰 재앙이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3일 이후 우리가 목도한 장면들, 수사 결과에서 드러난 내용을 보면 윤 전 대통령이 망친 것은 김 여사의 계획뿐이 아니다. 독재를 꿈꾸며 헌정을 유린하고 시스템을 망가뜨렸다. 이들을 하루라도 빨리 단죄하는 것이 완전한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이주영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