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유엔사, 일방적 관리규정으로 ‘DMZ 갑질’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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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유엔사, 일방적 관리규정으로 ‘DMZ 갑질’ 왜?

입력 2025.12.19 14:54

수정 2025.12.1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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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지난 7월 8일 경기 평택시 캠프험프리스 바커필드 연병장에서 열린 유엔사 창립 기념행사에서 유엔군사령부를 비롯한 22개국 깃발이 도열한 가운데 예포를 발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7월 8일 경기 평택시 캠프험프리스 바커필드 연병장에서 열린 유엔사 창립 기념행사에서 유엔군사령부를 비롯한 22개국 깃발이 도열한 가운데 예포를 발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미관계에서 ‘빛 샐 틈 없는’ 동맹이라는 표현이 사라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을 금전적 거래의 대상으로 다루면서부터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한반도 우발 상황을 대비한 ‘주둔군’보다는 중국을 견제하는 발진기지의 ‘거점군’으로 성격을 바꾸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유엔군사령부(UNC·유엔사)의 향후 변화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을 전망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고, 유엔사는 미 합참의 지시를 받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유엔군사령부는 국제기구인 유엔의 ‘지휘’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유엔사의 비무장지대(DMZ) 출입 통제는 한국 정부와 미 군사 당국 간 ‘뜨거운 감자’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재강·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각각 ‘DMZ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비군사적이고 평화적인 활용 목적에 한해 DMZ 출입 권한을 한국 정부가 행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DMZ 이용에 관한 국내법이 제정되면 유엔사의 일방적인 관리규정도 개정 압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의 눈치 보기

유엔사는 관리규정으로 DMZ를 통제하고 있다. 이 관리규정은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처의 비서장(미군 대령)이 만든 것이다. DMZ를 출입하기 위해서는 48시간 전에 유엔사에 통보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48시간 전 통보 및 허가’는 6·25전쟁 후 체결된 정전협정의 합의 조항이 아니다. 단지 유엔사 군정위 비서처가 정전협정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편의적으로 만든 규정일 뿐이다. 유엔사는 이 관리규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나 한국군과 한 번도 협의를 하지 않았다.

유엔사가 제정한 관리규정에 따르면 DMZ에 들어가는 군인 및 민간인은 유엔군사령관의 승인을 받게 돼 있다. 유엔사가 관리권(Administration)을 한국군에 이양했지만, 관할권(Jurisdiction)은 여전히 행사하고 있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DMZ는 미국 정부의 지휘를 받는 유엔군사령관이 한국 정부에 대해 배타적 군사통제를 행사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다.

유엔사는 DMZ 관할권에 집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유엔사 관리규정은 휴전 이후 70년이 훌쩍 넘도록 한반도의 변화한 작전환경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규정을 적용받는 한국군의 입장은 무시되기 일쑤다. 적절한 수준의 DMZ 출입도 보장하지 않고 있다. 남북 간 군사적 합의도 DMZ와 관련되면 유엔사 승인 없이는 이행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한국 국방부는 미국 측 눈치 보기에 급급해 규정 개정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군 당국은 정치권이 발의한 DMZ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법안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방부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유엔사와 사전 협의 없이 비무장지대의 출입 등 이용을 국내 법률로 규정하면 (중략) 정전체제 관리에 불필요한 혼선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어 “특히 정전협정을 준수하지 않는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면 한·미관계와 유엔사 회원국들과의 국제적 신뢰 및 안보 협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유엔사 군사정전위 비서장도 지난 12월 8일 만난 조원철 법제처장에게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발의된 DMZ 관련법은 ‘정전협정을 준수한다’는 것을 전제로 DMZ 출입 절차의 개선 내용을 담고 있어 유엔사가 반대할 명분이 부족하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합참 고위 당국자들은 DMZ 관련법 제정을 반대하면서도 유엔사 규정 개정의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주권국가에서는 부끄러운 모습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이 지난 11월 3일 경기 파주시 비무장지대(DMZ) 최북단 경계초소인 오울렛 초소(OP)를 방문해 시찰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이 지난 11월 3일 경기 파주시 비무장지대(DMZ) 최북단 경계초소인 오울렛 초소(OP)를 방문해 시찰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DMZ 출입 ‘흑역사’

유엔사는 관리규정에 따른 ‘군사분계선(MDL) 통과 허가권’과 ‘DMZ 출입 허가권’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군 대장이라도 유엔사에 48시간 전 통보해 승인을 받지 않고는 DMZ 출입이 불가능하다. 육·해·공군 3군 참모총장은 물론 한국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과 국방부 장관, 대통령조차 예외가 아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전 세계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경의선 육로를 통해 MDL을 넘을 때도 도라산의 유엔사 상황실로부터 최종승인을 받아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현종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은 최근 백마고지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을 방문하려 했지만, 유엔사가 출입을 불허했다. 김 차장이 대한민국 안보의 컨트롤타워인 국가안보실 고위 당국자라는 점에서 유엔사의 횡포라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7월에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의 DMZ 방문이 불허됐다. ‘48시간 전 승인’ 절차를 어겼다는 이유에서였다. 유 추기경은 DMZ에서 전할 계획이었던 한반도 평화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

2019년 8월에는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이 DMZ 내 대성동 마을을 방문하려 했으나 유엔사가 ‘주민 불편’을 이유로 동행 취재진의 방문을 불허하면서 불발됐다. 2019년 6월에는 방한한 독일 정부 대표단이 강원도 고성 GP(감시초소)를 방문하려 했지만 무산됐다. 유엔사가 ‘안전상 이유’를 내세워 정경두 당시 국방부 장관 요청에도 불구하고 DMZ 출입 허가를 해주지 않은 탓이었다.

앞서 유엔사는 2021년 12월 전투복 상의를 입고 육군 3사단 백골부대 전방관측소(OP)를 방문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향해 ‘규정 위반’이라고 걸고넘어졌다. 대선후보의 규정 위반을 빌미로 유엔사의 존재감을 한국민에게 강하게 인식시키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유엔사의 DMZ 인원 통제는 주로 출입자의 안전을 위한 보호 차원이 목적이다. 그러나 유엔사는 정치적 이유나 존재감 과시를 위해 관리규정을 내세우며 출입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보니 유엔사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걸림돌’로 등장한 지 오래다. 미국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 뒤 잦아진 남북교류협력과 군사적 신뢰 구축 움직임을 유엔사의 DMZ 관할권을 내세워 그 속도를 조절하고 통제했다.

유엔사는 정작 북한군의 정전협정 위반에는 침묵하고 있다. 북한은 국경선을 만들겠다면서 DMZ 전역에서 대규모 방어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북한전문매체 NK뉴스는 최근 MDL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를 보도했다. 북한이 전체 DMZ 길이의 약 74% 구간에서 나무를 제거하고 방벽, 울타리, 대전차 장애물 등 새로운 방어 구조물이 설치됐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정전협정이 금지한 ‘현상 변경’으로 북한의 심각한 정전협정 위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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