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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그리고 경주

입력 2025.11.21 14:59

지난 10월 3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의전차량 ‘훙치’를 포함한 중국 측 차량 행렬이 경북 경주 요금소를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월 3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의전차량 ‘훙치’를 포함한 중국 측 차량 행렬이 경북 경주 요금소를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 정상회의가 끝난 지 약 3주가 지났다. 10월 말 한·미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쉴 새 없이 일이 몰아쳤다. 이재명 대통령은 APEC 기간 미·중·일을 포함해 총 13개국 정상과 양자 회담을 했다. 곧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의 일이기도 했다. 11월 1일 밤 11시 무렵 경주역에서 서울행 KTX에 몸을 싣고 생각했다. ‘앞으로 한 5년은 경주에 올 일이 없을 거다.’

APEC 소회를 풀어볼까 하니 ‘경주’라는 공간만 기억에 남았다. 미국과의 관세협상 타결, 미·중·일 정상회담 등 굵직한 뉴스의 뒷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었는데, 10여 년 만에 마주한 경주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이 또렷하다.

울산에서 나고 자란 내게 경주는 낯선 도시가 아니다. 초·중·고교 시절, 경주는 영남권 청소년들의 수학여행·체험학습의 성지였다. 그래서 내심 경주에서 APEC이 열린다고 했을 때 반가웠다. 여러 우려가 혼재했지만, 경주가 ‘한국적인’ 도시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APEC 준비가 본격화하며 고향에 있는 지인들이 직·간접적으로 관련 업무에 투입되는 일도 있었다. APEC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다시 찾은 경주는 추억 속 경주보다 작았다. 내가 자란 탓인지, 서울이란 대도시에 익숙해진 탓일지. 일부 외신은 APEC과 같은 국제행사를 치르기에 경주는 기반시설이 부족하다며 혹평하는 기사를 냈다. 주로 ‘묵을 만한 호텔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한편으론 이틀간의 국제 이벤트를 위해 큰 호텔을 짓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경주는 문화재 보호를 이유로 고도 제한된 구역이 많기도 하다.

경주 시내는 밤 9시면 가게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문을 연 소수의 가게만 외지인이 북적였다. 택시기사는 “황리단길도 평소엔 밤에 다니는 사람이 적다”며 “APEC 준비로 타지에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해 택시 영업도 늦은 시간까지 했지 앞으로는 (밤 영업을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보문단지 내 많은 관광시설이 코로나19 팬데믹 때 문을 닫았다며, APEC을 앞두고 ‘흉물’로 불린 시설들을 가리려고 나무도 많이 심었다고 설명했다. “수학여행의 성지는 옛말”이라고도 했다.

APEC 기간, 경주 시민들은 일종의 사명감으로 하나가 된 듯했다. 미디어센터로 가는 셔틀버스 정류장엔 새벽 6시 반부터 자원봉사자들이 나와 안내를 도왔다. 이들은 버스가 떠날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양손을 흔들었다. 미디어센터 내엔 학생 자원봉사자가 많았는데, 눈을 마주칠 때마다 “필요한 게 있을까요”라며 적극적이었다. 나중엔 괜히 미안해져 눈을 내리깔고 걸을 정도였다.

보문단지와 경주박물관 일대는 외국 정상들이 이동할 때마다 장시간 교통통제가 되기 일쑤였다. 외지인들은 불평했지만, 시민들은 불편을 기꺼이 감내했다. 정상회의 준비 기간, 크고 작은 불편을 수없이 견뎠겠구나 짐작했을 뿐이다.

APEC이 끝난 뒤 따라붙은 ‘성공’이란 수식어는 경주 시민의 것이라 생각한다. ‘수학여행 성지’란 명성처럼, 경주가 다시 활기를 찾게 되기를. 나 역시 떠날 때의 다짐보다 이른 시일에 경주를 다시 찾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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