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해의 경제망원경] (54) AI 열풍에도 경제는 왜 차가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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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해의 경제망원경] (54) AI 열풍에도 경제는 왜 차가운가

입력 2025.11.21 14:57

수정 2025.11.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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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중해 경제학자
이재명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6월 20일 울산에서 열린 ‘대한민국 AI 고속도로, 울산 AI데이터센터 출범식’에 참석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에서 세 번째) 등과 함께 손뼉을 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이재명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6월 20일 울산에서 열린 ‘대한민국 AI 고속도로, 울산 AI데이터센터 출범식’에 참석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에서 세 번째) 등과 함께 손뼉을 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지난 칼럼에서는 경제는 차가운데 증시가 뜨거운 이유를 인공지능(AI) 열풍에서 찾았다. AI에 대한 기대가 실제 경제 실적을 훨씬 초과하며 버블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을 설명했다. 이어지는 질문은 AI 열풍에도 경제 전체 성장률은 왜 나아지지 않느냐는 것이다.

AI가 가져올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점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경제 성장에 미치는 효과의 규모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비영리기관 ‘에포크 AI’는 최근 매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생산활동에서 노동 작업이 AI로 충분히 자동화되면 연간 30% 이상의 폭발적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연간 30% 성장률은 인류가 경험한 적 없는 대단한 수준인데, 에포크 AI는 AI 기술 발전이 가져올 외부효과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크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AI 발전이 가속화돼 인간의 지능을 훨씬 뛰어넘는 초지능이 출현하는 특이점 시점을 2045년 전후로 전망한다. 올해 국내 번역된 그의 저서는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이다. ‘인류가 AI와 결합하는 순간’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커즈와일은 AI가 인간 뇌와 통합돼 인간 지능이 수백만 배 확대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적으로는 계산 비용이 현저하게 감소하고 생산 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깝게 되면서 성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제성장률은 AI 열풍과 별개

기술 관점에서 보면 특이점은 아니더라도 이미 생활 곳곳에서 AI의 영향을 쉽게 체감한다. 국내에서 몇몇 대학은 온라인 시험에서 AI 사용이 드러나 성적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초등학교 학생들은 숙제에 AI를 활용해 교사들을 난처하게 한다. 휴대전화에 내장된 AI 모델을 사용하면 해외여행 시 간단한 통역 편의를 누릴 수 있다.

생산 활동에서는 AI 자동화가 점차 확산하고 있으며, 대규모언어모델(LLM) 중심의 데이터센터를 넘어 스마트폰이나 PC 등 개별 기기에도 AI 기능이 심어진다. 이에 따라 AI에 거는 기대가 커지고 있고, 데이터센터 인프라 투자와 반도체 수요도 크게 증가하면서 AI 열풍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열풍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은 획기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내년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 연 3.1%는 이전 추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미국은 올해 2.0%, 내년 2.1%, 한국은 올해 0.9%에서 내년 1.8%로 전망된다.

경제성장률은 AI 열풍과 별개로 보인다. 세계 AI 열풍을 주도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및 샌프란시스코에는 애플, 구글, 엔비디아, 테슬라, 인텔 등 빅테크 기업과 오픈AI, 앤트로픽 등 AI 기업이 몰려 있으나 캘리포니아 경제성장률은 미국 평균보다 약간 높을 뿐이다. 2000년부터 2024년까지 미국 경제는 연평균 2.1% 성장했으나, 같은 기간 캘리포니아는 2.6% 성장했다. 코로나19 이후 2023~2024년 미국은 2.8%, 캘리포니아는 2023년 1.8%, 2024년 3.2%를 기록했다. 기하급수적 성장의 징후는 찾아볼 수 없다.

현대차그룹의 제조공장에 배치된 4족 보행 로봇 ‘스팟’. 현대차그룹 제공

현대차그룹의 제조공장에 배치된 4족 보행 로봇 ‘스팟’. 현대차그룹 제공

세계 곳곳에서 AI 열풍이 생산 현장부터 교실까지 큰 파장을 일으키는데도 경제성장률에는 크게 반영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가지 경제학적 설명이 있다.

첫째, 시차 문제다. AI를 비롯한 신기술이 경제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려면 조직 변화를 수반해야 하며, 이 과정에 시간이 걸린다. 때로는 기존 기득권의 저항으로 신기술 수용이 늦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기술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고, 일정 기간 후에 점차 발현되는 ‘J-곡선 효과’가 발생한다.

또한 시스템 차원의 변화는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거쳐 직조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과 함께 온라인 쇼핑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인정받았지만, 즉각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휴대전화 보급이 확대되면서 온라인 쇼핑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사례가 그렇다.

둘째, 미시적 차원에서 신기술로 인해 사라지는 업종이나 사업이 발생한다. 온라인 쇼핑이 대형마트나 소매점 영업을 대체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런 사업 탈취 효과를 빼고 보면 신기술의 경제적 영향은 기대만큼 크지 않게 된다.

셋째, 산업 부문 간 생산성 격차도 중요하다. 제조업은 자동화를 통해 생산성을 빠르게 향상시키는 반면, 교육이나 의료처럼 노동집약적인 서비스 부문은 생산성 향상이 제한적이다. 그러나 모든 산업의 노동자는 임금 경쟁을 하므로 제조업 생산성 향상에 따라 임금이 오르면, 서비스 부문에서도 생산성 향상 없이 노동 비용이 상승하는 이른바 ‘비용 질병’ 현상이 발생한다. 비용 질병 현상은 신기술이 제공하는 추가적인 성장 효과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AI가 경제 성장 잠재력 발휘하려면 시간 걸려

마지막으로 물리적 한계도 존재한다. AI 수요가 증가하면서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급증하는 점이 대표적이다. 지난주 주간경향이 보도했듯이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으로 만든 데이터센터를 구동하는 데 필요한 전력 수급을 놓고 국회에서도 논쟁이 있었다. 전력뿐 아니라 데이터센터를 운용하는 데는 물도 필요하고 넓은 부지도 필요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AI가 다루는 건 ‘정보’인데, 경제는 결국 물건이 제조되고, 사람과 물자가 운송되고, 집과 도로와 병원이 건설되고, 이를 활용한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 정보 처리 효율(지능)이 무한히 올라가도 현실 세계에서 물질과 서비스가 움직이는 속도와 규모에는 물리적 상한이 존재한다. 이게 바로 “AI가 경제 성장을 무한대로 가속시키지는 못한다”는 논지의 핵심이다.

기술만 보면 세상이 금방 바뀔 것 같지만 현실 경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경제는 복잡하다. 경제가 복잡하다는 것은 여러 부문이 상호 연결돼 있다는 의미다. 기술 중심으로 증권시장을 바라보고, 이를 경제 전체로 투영시키면 경제 전체의 맥락을 놓치기 쉽다. 기술은 경제 발전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AI 열풍은 과열 현상이기도 하지만 혁신 신기술이라면 따라다니는 일종의 정상적인 현상이다. 이런 과열은 관련 투자와 인프라 구축을 유도하는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AI 열풍이 곧바로 경제 성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AI가 경제 성장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제도와 체제 마련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 수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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