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9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항공 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에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에어쇼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공군의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에어쇼 참가를 위한 날개를 잠시 접었다. 일본이 일본 항공자위대 소속 오키나와 나하 기지에서 하기로 합의했던 블랙이글스의 중간 기착과 급유 지원을 거부한 탓이다. 일본은 블랙이글스가 지난 10월 28일 독도 상공에서 태극문양을 그리는 훈련을 했다는 이유로 합의를 철회했다. 공군은 대체 급유지를 마련하지 못해 결국 11월 17일 열린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에어쇼에 참가하지 못했다.
한국 국방부도 맞대응했다. 지난 11월 13일부터 일본 도쿄에서 열린 자위대 음악 축제에 한국군 군악대 참가를 보류했다. 또 8년 만에 재개할 계획이었던 한·일 해군 간 공동 수색·구조훈련도 11월 중 실시하기로 했지만 잠정 중단했다.
블랙이글스 공중급유 거부사태로 한·일 간 군사 교류가 삐걱거리자 미국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블랙이글스의 일본 기지 급유는 한·일 안보 협력 발전을 상징하는 이벤트 성격도 있었기 때문이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11월 17일 한국을 중심으로 일본·필리핀이 하나의 삼각 구조를 띠고 있는 뒤집힌 세계 지도를 공개하며, “한반도는 외곽이 아니라 전략적 중심축”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한·일 군사 공조를 강력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미·중 ‘눈치 보기’
사실 블랙이글스가 일본 나하 기지에 중간 기착하기로 결정한 데는 중국 정부를 의식한 측면이 있다. 블랙이글스는 2022~2024년 싱가포르 에어쇼 참가 등을 위해 대만 남부의 가오슝 국제공항을 중간 보급기지로 활용했다. 그러나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는 중국 정부는 한국 군용기인 블랙이글스가 대만 공항에 중간 기착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런 배경에서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후 군은 한·일 군사 교류를 종용하는 미국과 대만 공항 기착을 싫어하는 중국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카드로 일본 자위대 기지 중간 기착을 선택했다.
과거에는 특수비행팀이 미국의 방해로 여러 차례 에어쇼 참가가 좌절되기도 했다. 미국은 2014년 11월 한국 공군 특수비행팀이 중국 광둥성 주하이에서 열린 국제 에어쇼에서 하려 했던 시범 비행을 불허했다. 이 주하이 에어쇼에는 블랙이글스가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미국 정부의 ‘태클’로 무산됐다. 당시는 한국 정부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체제 출범 이후 중국과 부쩍 가까워지고 있던 시점이다. 블랙이글스의 중국 에어쇼 참가는 한·중 양국 간 국방 교류·협력 확대 차원에서 추진된 사안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블랙이글스의 주하이 에어쇼 참가 불허는 한·중 국방 교류와 협력에 대한 미국의 ‘경고 신호’였다.
미국은 블랙이글스 기종인 T-50의 주요 기술이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참가 반대 의사를 전달했고, 한국 정부는 에어쇼가 2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블랙이글스의 에어쇼 참가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10월 1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축하 비행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미국은 블랙이글스의 주하이 에어쇼 참가 반대의 근거로 자국의 무기수출통제법과 국제무기거래규정을 내세웠다. 미국 정부는 에어쇼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미국 록히드마틴이 공동개발한 T-50B를 중국 등 외국 정부 인사들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행위, 즉 시연도 미국의 무기수출통제법에 어긋난다는 억지를 부렸다. 미국 측은 “T-50에는 록히드마틴이 제작한 날개와 비행 제어장치, 전자 장비 부품 등 미국의 일부 핵심 기술이 포함돼 있어 국외 전개 때 미국 무기수출통제법, 국제무기거래규정 등 관련 규정을 적용받게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국 정부는 T-50의 국산화율이 71%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핵심 원천기술을 미국 록히드마틴이 보유하고 있어 미국 측이 원하는 대로 꼼짝없이 블랙이글스의 주하이 에어쇼 불참을 선언해야 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 딴죽을 걸었던 미국은 주하이 에어쇼에 미 공군의 군용수송기 C-17을 전시했다.
미국 정부의 ‘갑질’은 주하이 에어쇼 이전에도 있었다. 과거 블랙이글스 기종으로 사용하던 ‘A-37B’ 역시 미국산이기 때문이었다. A-37B 기종은 미 정부 허가 없이 분해나 조립을 할 수 없어 미국 측이 반대하면 국제 에어쇼 참가가 불가능했다. 장거리 비행이 어려웠던 A-37B가 에어쇼에 나가기 위해서는 기체를 국내에서 분해하고 에어쇼 현지에서 조립해야 했는데, 미국 측은 종종 이 작업을 원천 봉쇄했다.
공중급유 기능
블랙이글스는 국산 초음속항공기 T-50B 9대(예비기 1대 포함)로 이뤄진 대한민국 공군의 특수비행팀이다. 블랙이글스는 2009년 기종을 T-50으로 전환하고 재창설된 특수비행팀이다. T-50B는 한국형 고등훈련기 T-50을 특수비행용으로 개조한 기체다. T-50B의 ‘B’는 ‘블랙이글스’를 가리킨다. 블랙이글스 기종의 T-50 전환에는 필자의 제언이 한몫했다. 당시 필자는 “블랙이글스 기종을 T-50으로 전환하면 블랙이글스가 전 세계 에어쇼에서 국산 초음속항공기의 세일즈맨이나 홍보대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정책 제안을 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 T-50은 K방산에서 경제적 부가가치와 새로운 수출상품으로서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졌다. 지금도 블랙이글스는 한국 공군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면서 T-50과 이를 개량한 경공격기인 FA-50의 수출을 위한 전략적 도구 역할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 에어쇼를 위해 전 세계를 비행해야 하는 블랙이글스에는 하나의 약점이 있다. 공중급유를 할 수 없는 점이다. 이 때문에 매번 중간 기착지를 거쳐 정비와 휴식 시간을 가진 뒤 급유를 받고 최종 목적지로 이동해야 한다. 공군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블랙이글스 팬들은 특수비행팀의 재창설 20년이 되는 2028년 전후로 블랙이글스가 운용하는 T-50B 기종을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인 KF-21 ‘보라매’로 바꾸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2028년쯤이면 KF-21 40여대가 공군에 배치되는 시점이다. KF-21은 공중급유 기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최첨단 전투기인 KF-21이 공중곡예에 적합한지는 논란이 많다. 공중곡예에서는 최첨단 장비보다는 공중 묘기를 부리기에 적합한지가 더 중요하다. 미 공군의 특수비행팀 썬더버드도 F-16 기종으로 1983년부터 42년째 공중곡예를 하고 있다.
그래서 T-50B를 개조해 공중급유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T-50을 경공격기로 바꾼 FA-50의 경우 필리핀에 2차로 인도할 물량과 폴란드에 수출할 예정인 기체에는 공중급유 기능이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