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가 일어났다. 억새가 흔들리며 바람의 결이 드러났다. 멀뚱하게 키가 큰 이 풀은 멀리서 보면 하얗게, 가까이에서는 은빛으로 머리를 흔든다. 지금 경기 평택 원평동 군문교 바로 아래는 온통 억새로 가득 차 있다. 원평나루라고 부르는 이곳은 평택의 가을 명소.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입소문을 타고 인근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꽤 많아졌다.
곁으로 안성천이 흘러 억새가 자라기에 참 좋은 조건을 갖췄다. 하마터면 우리는 이 억새밭을 잃어버릴 뻔했다. 평택시가 노을유원지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군문교 주변 30만㎡에 캠프장, 야구장 등을 조성하려 했다. 다행히 이곳에서 수달의 배설물이 발견되며 사업은 백지화됐다. 누군가에게는 아쉬운 일일지 모르겠으나, 이토록 멋진 자연을 곁에 두고 가을마다 억새 산책을 즐길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매력적인 일이다.
햇살 좋은 가을의 복판, 사람들은 이곳을 거닌다. 나도 그 가운데로 들어가 가을을 느낀다. 돌아 나오는 길, 멀리 휠체어를 밀고 산책 나온 부부가 보였다. 천천히 계절을 만끽하는 그 모습에 내 가슴도 푸근해지는 기분. 바람은 조금 차가워졌지만, 강변의 산책길은 따스하기만 했다. 하얀 억새를 흔들면서, 그렇게 가을은 우리 곁에 다가와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