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동 사람들’, 방송사 불법 고용 함께 바꿔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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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동 사람들’, 방송사 불법 고용 함께 바꿔나가요

입력 2025.11.07 15:23

수정 2025.11.0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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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온라인노조 기획팀장
직장 내 괴롭힘으로 숨진 MBC 기상캐스터 고 오요안나씨 어머니 장연미씨가 지난 10월 1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안형준 MBC 사장으로부터 고인의 명예사원증을 받은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성동훈 기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숨진 MBC 기상캐스터 고 오요안나씨 어머니 장연미씨가 지난 10월 1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안형준 MBC 사장으로부터 고인의 명예사원증을 받은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성동훈 기자

어머니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급히 손수건을 구해 건넸지만, 눈물은 좀체 멈추지 않았다. 딸의 사원증이 담긴 액자를 딸처럼 가슴에 안고 오열했다. “‘MBC 흔들기’ 세력의 준동”이라던 MBC로부터 “진심으로 위로와 사과”를 받기까지 걸린 시간 396일, 딸의 엄마가 28일 동안 곡기를 끊고서야 만들어진 지난 10월 15일 조인식 자리였다.

“대중은 악플 혹은 개인사로 인한 극단적 선택이라고 추측하지만, 사실 타의적 자살입니다. 그 배경엔 아무도 몰랐던 기상캐스터의 잔혹한 태움 문화가 숨겨져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24일 직장갑질119로 온 유족의 e메일이었다. 그해 9월 15일 오요안나 MBC 기상캐스터가 목숨을 끊은 뒤 슬픔에 잠겨 있던 유족들이 유품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증거를 발견했다. 유족은 “유서, 일기, 카톡 메시지, 가해자와의 통화 녹취 등 모든 증거는 다 수집”했다고 했다. 그런데 보수 언론에서 기사가 나갔고, 정치권에 의해 MBC를 공격하는 수단이 됐다. 청주방송 고 이재학 피디 사건처럼 대책위원회를 꾸려 투쟁하는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오요안나 죽음에 대해 MBC는 올해 1월 28일 “정확한 사실도 알지 못한 채 마치 무슨 기회라도 잡은 듯 이 문제를 ‘MBC 흔들기’ 차원에서 접근하는 세력의 준동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여느 기업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정방송의 모습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태도였다.

직장갑질119와 방송 비정규직 단체인 엔딩크레딧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2월 27일 국회에서 제2 오요안나 사건 방지를 위한 긴급 증언대회, 3월 14일 서울 상암동 MBC 앞에서 오요안나 추모 커피차 캠페인을 진행했다. 고인의 어머니(장연미)는 “일면식도 없는 엔딩크레딧이 어떤 단체인데 우리 딸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느냐”며 고마움을 전했다.

5월 19일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 결과 괴롭힘 행위가 있었지만, 근로자가 아니어서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계약이 뉴스 프로그램에 국한돼 있었고, 일부 캐스터는 외부 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영리활동을 자유롭게 했으며, 업무 수행에 구체적 지휘·감독 없이 자율적으로 일했고, 자유롭게 출퇴근했기 때문에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라고 했다.

그러나 오요안나는 MBC 정규직 기상팀장의 지시를 받고 원고를 수정하며 일했고, 방송 준비를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방송국에서 보내야 했다. 오요안나는 기획사도 없었고, 자유롭게 영리활동도 할 수 없었다. 방송 횟수가 줄어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프리랜서라니, 어처구니가 없는 결과였다. 오요안나는 MBC의 지휘·명령을 받고 일하는 단시간 노동자라는 것이 직장갑질119 노동 전문 변호사들의 판단이었다. 서울노동청 앞 특별근로감독 규탄 기자회견, 고인의 어머니가 우리와 함께한 첫 투쟁이었다.

죽음 1년, MBC는 뭘 했나

6월 10일 MBC 앞에서 오요안나 천도재와 추모 문화제를 열었다. 태안화력 고 김용균의 어머니(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가 오요안나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MBC를 상대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7월 1일 요구안 선포 기자회견, 17일 국회 토론회를 열었다. 30일 MBC 안형준 사장이 유족을 만난 후 8월 22일 실무 면담이 진행됐지만, MBC는 유족 측과 협상으로 문제를 풀 생각이 아니라 알아서 하겠다는 태도였다. MBC는 유족과 상의 없이 고인의 분향소를 차렸다. 우리는 8월 안에 해결해 9월 15일 고인 1주기 추모식을 함께 치르자고 했지만, MBC는 진정성을 보이지 않았다.

9월 8일 어머니가 미루고 미뤘던 단식 농성을 시작하면서 MBC 앞마당에 분향소를 차렸다. ‘외부 세력’의 MBC 앞마당 천막은 처음이었다. 사유지였기 때문에 MBC 요청 없이 경찰이 천막을 철거할 수 없었다. 엔딩크레딧과 직장갑질119는 농성 경험이 없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등 비정규직 단체에 연대를 요청했다. 농성장을 지킬 당번도 없었는데 노무사, 변호사 등 법률가들과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빈 시간을 채웠다.

미디어 도시 상암동, 방송노동자들이 숱하게 오가는 광장에 차려진 분향소는 ‘프레스센터’였다. 각계각층의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하루 세 번 선전전, 어머니와 비정규직의 절규는 상암동의 일상을 깨웠다. 비정규직 백화점을 형상화한 MBC 상징물, 방송사 갑질전, 방송 비정규직 투쟁 역사 전시는 ‘상암동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누가 오요안나를 죽였나? 죽음 1년 MBC는 뭘 했나?”라고 쓴 현수막이 MBC 건물을 병풍처럼 에워쌌다. 늦은 밤 MBC 직원들이 찾아와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조용히 헌화했고, 빈소를 찾는 ‘상암동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단식 10일이 돼서야 MBC 핵심 경영진이 교섭에 나왔다. MBC는 정부에서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기상캐스터의 근로자성 인정은 파장이 크다고 했다. 자체 조사 결과 괴롭힘과 고인의 죽음에 대한 인과관계도 명확하지 않으며, 보상에 대해서도 내부 반발이 많다고 했다. 우리는 대법원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선진국과 달리 근로자를 협소하게 판단하는 노동부 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유족처럼 노동 전문 법률가들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했으면 당연히 근로자라고 판단했을 것이며, MBC의 안전 배려 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이 매우 크다는 점을 설득했다.

임기 말 경영진이 MBC 내부를 설득하기 쉽지 않았다. 2차 교섭이 결렬되고 단식은 무한정 길어지는 상황이었다.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국회 국정감사 MBC 사장 증인 채택은 성사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MBC 공격, 민주당은 MBC 방어가 유일한 목표였다. 언론노조와 MBC노조 전·현직 간부들의 성명을 요청했지만 응답이 오지 않았다. 긴 연휴를 앞둔 상황, 눈앞이 캄캄했다.

사회 각계각층에 호소했다. 민변을 비롯한 변호사 단체에 입장문 발표와 진상조사를 요청했다. 백기완 재단을 통한 사회원로의 역할, 종교계 3대 종단에 중재를 요청했다. 어머니 건강을 걱정해 농성장을 방문한 MBC 경영진을 진심으로 설득했다. 연휴 기간이라도 만나자고 했다. 3대 종단의 중재로 교섭이 재개됐고, 협상과 정회를 반복한 끝에 잠정합의안이 마련됐다. 10월 4일 어머니에게 설명하고, 가족과 상의해서 의견을 달라고 했다. 동의하지 않으면 농성장을 지키며 더 싸우겠다고 했다. 늦은 밤 어머니가 딸의 명예를 회복한 합의안에 동의한다고 연락했다. 우리는 함께 울었다. 다음 날 잠정합의안에 서명한 후 어머니는 녹색병원에 입원했다. 열흘 뒤인 10월 15일 어머니와 MBC 안형준 사장이 조인식을 열었다.

지난 9월 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신사옥 앞에 마련된 고 오요안나 1주기 추모 분향소에서 어머니 장연미씨가 MBC의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지난 9월 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신사옥 앞에 마련된 고 오요안나 1주기 추모 분향소에서 어머니 장연미씨가 MBC의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오요안나 투쟁이 남긴 것

첫째, 프리랜서 사이에서 벌어진 괴롭힘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MBC가 오요안나를 노동자로 인정해 명예 사원증을 수여하고 방송사 처음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상설 추모 공간을 본사 안에 만들기로 약속해 고인의 명예를 회복했다. 둘째, 외환위기 이후 모든 방송사에서 젊은 여성을 프리랜서로 계약해왔던 기상캐스터 직무를 정규직인 기상·기후 전문가로 전환하기로 합의해 향후 타 방송사 기상캐스터와 타 직종의 정규직화에 물꼬를 텄다. 셋째, 어떤 계약을 맺고 일하든 방송사를 위해 일한 노동자를 반드시 보호해야 할 책임이 방송사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정치권의 지원이나 노동조합(민주노총·언론노조·MBC본부)의 도움 없이 작은 단체 활동가들의 헌신으로 38일 동안 농성장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다는 점이다.

한계도 많았다. 합의에 따라 안형준 사장이 공개 사과는 했지만,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해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내용만 열거했을 뿐 고용구조 개편 등 의미 있는 대책은 발표하지 않았다. 제3의 전문기관에 비정규직·프리랜서 실태를 조사한 후 조사 결과에 따라서 정규직 전환과 처우 개선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MBC의 거부로 요구안을 관철하지 못한 게 매우 아쉽다.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 엔딩크레딧은 이번 합의를 시작으로 방송국 변화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한다. KBS를 포함해 기상캐스터를 젊은 여성 프리랜서로 채용하는 관행을 바꾸는 출발점을 만들자는 운동이다. 기상캐스터만이 아니다. 리포터, 아나운서, PD, FD, AD, 작가 등 셀 수 없는 이들이 상시 지속적인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프리랜서 계약에 묶여 있다. 11월 2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년 방송제작 노동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방송노동자 51.2%가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고 답변했고, 34.4%는 구두계약을 경험했으며, 서면계약의 60%는 프리랜서나 용역 계약이었다. 비정규직 백화점 방송사가 착취로 만드는 K드라마, 차별로 만드는 K콘텐츠라는 부끄러운 현실이다.

기상캐스터를 시작으로 방송사의 착취 구조를 바꿔야 한다. 단계적으로라도 고용구조를 개선해 나가고, 차별을 줄이는 게 방송의 책무다. 정부는 모든 방송사에 대한 강도 높은 특별감독을 벌여 불법 고용을 바로잡아야 한다. 제2의 오요안나를 막을 수 있도록 국제노동기구(ILO) 190호 협약(폭력과 괴롭힘 협약)을 비준해 직장 내 괴롭힘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도록 하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을 전면 확대해야 한다.

무엇보다 방송 비정규직 ‘상암동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혼자 싸우는 건 힘들지만 같이 싸우면 된다. 엔딩크레딧에 가입해 노동 상담을 받고, 익명으로 제보하고, 여론화와 노동부 근로감독청원도 가능하다. 비정규직이어도 괜찮다. 내년 3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방송사와 정부기관을 상대로 대화나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새로 임명될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과 ‘타운홀미팅’을 열어 방송 현실을 알리면 좋겠다. 뭐라도 해야 바뀐다. 당사자가 용기를 내면 할 수 있다.

방송사에 불만 많으시죠? 연락주세요. 함께할게요.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 엔딩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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