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니아-지구를 망친 인류가 지구를 지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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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니아-지구를 망친 인류가 지구를 지킨다고?

입력 2025.11.05 06:00

수정 2025.11.05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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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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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고니아(Bugonia)

제작연도: 2025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19분

장르: 스릴러, 코미디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엠마 스톤, 제시 플레먼스, 에이든 델비스, 알리시아 실버스톤

개봉: 2025년 11월 5일

등급: 청소년 관람 불가

제작: 엘리먼트 픽처스, 스퀘어 페그, CJ ENM

‘아, 이런 날도 오는구나!’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가 해외에서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을 몇 년 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이다. 흥행엔 실패했지만, 평론 영역에서는 두고두고 언급되는 작품을 두고 영화판에서 쓰는 관용어가 있다. 저주받은 걸작. <지구를 지켜라!>가 그랬다. 비록 언어와 문화권이 달라도 영화를 평가하는 눈은 다르지 않구나, 그런 뿌듯함?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궁금했다. 영화가 가진 ‘한국적 맥락’의 섬세한 결이 번안될 수 있을까.

예컨대 <지구를 지켜라!>에서 강만식 사장을 납치한 병구·순이 커플은 외계인 본선과 텔레파시 통신을 차단하기 위해 강 사장의 머리를 박박 밀고, 의식조종을 당하지 않기 위해 강 사장 발등의 피부를 때밀이로 박박 밀고 거기다 물파스를 바른다. ‘이태리타월’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때밀이는 한국 발명품이다. 외국에서도 모기에 물리면 물파스 같은 걸 쓸까. 고문을 당하는 강 사장의 고통이 몸서리쳐지게 느껴질 한국 관객의 반응을, 이 영화를 자막으로 볼 외국 관객들도 느낄 수 있을까 궁금했다.

한국적 맥락, 번역될 수 있을까

미셸(엠마 스톤 분)은 대기업 CEO다. 정원이 있는 넓은 단독 주택에서 아침에 일어난 그는 요가와 명상을 하고, 격투기도 배운다. 회사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테디(제시 플레먼스 분)와 사촌 동생 돈(에이든 델비스 분)은 미셸을 지구에 침투한 외계인으로 의심하고 있다. 근거는 여럿이지만 테디의 음모론 가설 중 하나는 이것이다. ‘외모를 보면 나이를 먹어도 전혀 변화가 없어. 그들은 우리와 다른 종(種)이야.’ 테디만 유별난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1980년대 인기 TV SF 시리즈 <브이(V)>의 영향일지 모르겠는데 전 세계의 엘리트는 렙틸리언, 그러니까 도마뱀 외계인이 인간으로 둔갑해 지배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펴는 사람이 없진 않으니까. 테디와 돈은 미셸을 납치하는 데 성공한다. 텔레파시로 우주 본선과 교신하는 것을 막기 위해 머리를 박박 민 것까지는 원작 설정을 따른다. 아쉽게도 때밀이나 물파스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정체를 고백하라며 윽박지르는 테디와 미셸 사이의 설전이 가학적 고문을 대신한다.

테디와 원작의 병구는 말하자면 연쇄살인마다. 지구를 지배하는 외계인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외계인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납치해 고문하고 최종적으로 살해하면서 자신만의 음모론 퍼즐을 맞춰간다. 널리 알려진 연쇄살인마에 대한 프로파일링과는 다르게 원작이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리메이크는 계급 적대를 끌어들인다. 병구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방아쇠는 강 사장의 화학회사에서 일하다 쓰러진 엄마의 존재다. <부고니아>의 테디 엄마도 식물인간이 된 채 요양원에 누워 있다. 각 영화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엄마가 그렇게 된 것이 지구인을 대상으로 한 외계인의 신체 실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란티모스 감독이 한 발짝 더 나아간 것

원작을 본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가 어떤 결말로 치닫게 될지 알고 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역시 이야기 얼개에서는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원작에서 병구는 산속의 폐탄광에서 꿀벌을 치는 것으로 설정돼 있는데 리메이크에서도 테디는 꿀벌을 친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기후변화 종말론’은 원작이 개봉했던 21세기 초엽에는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고대 그리스에서 일종의 자연발생설처럼 꿀벌은 죽은 소를 정육면체의 방에 넣어두면 생겨난다고 믿었다는데, 고대 그리스어 ‘황소(βοῦς)’와 ‘생식·자손(γονή)’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원작의 결말을 간단히 말하자면 병구는 지구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런데 인류가 지구를 지킨다는 건 만용 아닐까. 예컨대 기후위기의 주범은 다름 아닌 인류 아닌가. 인류가 제거된다면 역설적으로 지구는 지켜지는 것 아닐까. 리메이크가 원작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끝까지 밀고 나간 상상력이.

신이 창조한 것은 평평한 지구였다는 신박한 주장

/google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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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주요 챕터마다 우주에서 지구를 비춘다. 영화의 마지막 장 인트로에서 지구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지구가 아니다. 지구평면설의 그 지구다. 사장실 옷장의 이동기구로 자기 우주선으로 돌아간 외계인은 그 ‘평평한 지구’ 위의 얇은 보호막을 훅 불어 날리는 방식으로 외계인 버전의 ‘최종해결책’을 집행한다.

외계인들의 인종 구성이나 그들이 입은 옷 등을 관통하는 콘셉트가 있다면 다양성일 것이다. 일종의 에필로그 격인 ‘세상의 종말’ 시퀀스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버전의 블랙 유머다. 재난 영화에서 아무런 죄 없는 존재로 보통 영웅적 주인공의 가족으로 설정되는 아이들(영화에서는 형용사를 배우던 중인 한국의 교실 풍경도 한 컷 나온다)도 예외 없다.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인간들은 이미 스스로 한 번 멸망했고, 다시 기회를 줬건만 유전자 속에 각인된 나쁜 버릇을 탈피할 수 없어서 실험은 결국 폐기됐다고 설명한다. 이 외계의 존재는 결국 성경에 묘사된 신과 다름없다.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지구평면설을 다시 정초한 인물은 사무엘 로버텀, 19세기 중반에 그가 펴낸 <검증 천문학>이라는 책(사진)이 시작이다. ‘지구는 구체가 아니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지구가 구체가 아닌 근거로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는 요한계시록 7장 1절을 제시한다.

지구가 원반형이고, 태양은 지름 약 50㎞(32마일)로 적도 상공에서 순환해서 돌고 있으며, 밤과 낮은 대기의 굴절 현상으로 발생한다는 주장은 결국 성경 구절에서 추론된 주장이다.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던가, 원반형 지구의 중심은 북극점이고 원반 끝인 남극 대륙은 얼음벽이다는 등의 현대판 지구평면설 주장의 원류는 알고 보면 다 로버텀의 책에 선구적으로 기술된 내용이다. 아마존 같은 인터넷서점에서 3만원 정도면 인쇄본 책을 사볼 수도 있지만, 구텐베르크 프로젝트나 구글 북스에 들어가면 총 221페이지짜리 영어책 전문을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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