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에 걸려온 전화…“누군가 내 얘길 들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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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에 걸려온 전화…“누군가 내 얘길 들어줬으면”

입력 2025.11.03 06:00

수정 2025.11.0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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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 전화하는 사람들···정부, 실질적 지원 늘려야

박연숙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상담지원센터(자살예방 상담전화 콜센터 2센터) 센터장이 지난 10월 29일 서울 을지로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박연숙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상담지원센터(자살예방 상담전화 콜센터 2센터) 센터장이 지난 10월 29일 서울 을지로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긴급전화 ‘109’.

불이 났을 때 119에 전화하듯 마음에 ‘죽고 싶다’는 불이 났을 때, 그 불을 끄기 위한 번호. 자살예방 상담전화 번호다. 지난 10월 17일 서울 중구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내 자살예방 상담전화 콜센터 2센터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전화 응답률(응대율)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2센터에 상담인력 40명을 새로 고용하면서 기존 1센터 100명에 더해 전체 상담인력이 140명으로 늘었다.

지난 10월 29일 오후 찾은 2센터 상담실에선 상담사들이 칸막이 사이로 모니터를 응시하며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상담실 내 벽면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는 당일 전체 전화 건수와 응답, 포기, 대기 전화 건수 등 상담 현황이 실시간으로 표출됐다. 저녁을 지나 밤이 되면 상담전화 건수가 대폭 늘어난다.

“나는 너무 급하고 누군가를 붙들고 얘기하고 싶은데, 밤에는 얘기할 사람이 없거든요. 고요해지고 대인관계가 줄어드는 밤에 불안이 심해지기도 해요. 그럴 때(다른 기관들이 문을 닫을 때) ‘109’가 보호망이라고 생각해요.” 박연숙 자살예방 상담전화 콜센터 2센터장의 말이다. 자살예방 상담전화는 24시간 운영한다.

“누구라도 붙잡고 한마디라도”

정부는 2024년 1월부터 기존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을 비롯해 8개 기관 상담전화를 ‘109’로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박 센터장은 “‘109’로 번호가 통합된 이후 전년 동기보다 상담 수요가 40% 이상 증가했다”며 “‘109’로 통합 개편한 것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면서 상담 수요가 늘었다고 보고 응대율을 개선해보자는 취지에서 2센터를 개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자살예방 상담전화 인입량은 2023년 상반기 월 1만8304건에서 2024년 상반기 월 2만6843건, 올해 상반기 월 2만8416건으로 늘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2센터에는 하루평균 160건의 상담전화가 걸려온다. 어떤 어려움을 호소할까. 2센터는 10월 개소해 아직 유의미한 통계가 나오진 않았지만 상담 내용은 주로 가정불화, 대인관계 문제, 정신과적 문제, 생활고, 신체적 질환 등의 복합적인 문제를 호소한다고 박 센터장은 말했다. 그는 “전화를 하신 분들은 그런 상황이 다 연결돼서 분노, 답답함, 자신감 하락, 자책, 인간관계 두려움 등을 표현한다”면서 “직장인은 일이 안 되고 아이를 키운다면 양육이 어렵고 학생이라면 공부에 집중하기 어렵고….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면서 이렇게 일상이 무너지는 상황에 부닥쳐 있다고 말한다”고 했다.

“상담사나 사례관리사분들과 이야기해보면 전화를 한 분들이 ‘내가 자살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기 전에 누구라도 붙잡고 한마디라도 하려고 전화했다’, ‘나 혼자만 왜 이렇게 힘든가’, ‘이제 내게 남은 선택지나 대안은 없다’ 이런 말들을 한다고 해요. 이런 상황에선 내가 무엇을 활용하면 좋을지, 누가 도움이 될지 등 아무런 생각이 없어져요. 무망감과 함께 사고체계가 멈추는 거죠.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조차 인식하기 어려운 경우들도 있어요.”

‘109’는 ‘한 명의 생명(1)도, 자살 zero(0), 구하자(9) 빨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09’ 상담은 자살 고위험군 대응이 중요한 업무다. 지금 당장 자살을 계획하거나 실행 단계에서 109로 전화를 걸어온다. 콜센터에서는 위기 상황이 포착되면 상담사가 전화를 건 사람의 안정을 위해 통화를 지속하면서 경찰에 신고, 긴급 출동이 이뤄지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상담전화를 끊고 난 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피상담자에게 지역 내 정신건강복지센터, 자살예방센터, 가족센터, 청소년상담기관 등 상담기관을 안내한다. 상황에 따라 당사자 동의를 얻어 직접 지역 기관에 연결해준다.

상담기관뿐만 아니라 교제폭력이나 가정폭력, 금융·부채·도박·중독 등의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기관도 안내하거나 연결해준다. 박 센터장은 “상담사들이 노련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예상 밖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상담하면서 바로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서 최대한 지원 기관을 찾아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109’에 전화하기조차 주저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1분이라도 좋으니까 전화를 걸어 말 한마디 하는 한 걸음을 내디뎌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희가 판단하지 않고 듣고 격려하고 해결책도 고민해보겠다고요. ‘109’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최근 3년간 자살예방 상담전화 응답률’ 자료에 따르면 응답률은 2023년 55.7%, 2024년 56.7%에서 올해 상반기 49.0%에 그쳤다. 정부는 2센터 개소로 응답률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지만, 상담 수요도 늘고 있다. 인력이 충분치 않은 데다 업무 강도가 높아 상담사들의 소진(번아웃) 문제도 심각하다는 지적도 계속 있었다. 박 센터장은 “‘109’는 긴급 위기 상담하면서 일반적 상담도 해야 해서 상담사의 전문성, 역량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충분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상담사들이 심리적·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대리외상 문제를 겪을 수 있어서 상담사 대상 상담을 진행하고 예방 교육을 강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형훈 보건복지부 2차관(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 10월 23일 서울 중구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 열린 자살예방 상담전화 콜센터 2센터 개소식에 참석, 상담팀을 격려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이형훈 보건복지부 2차관(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 10월 23일 서울 중구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 열린 자살예방 상담전화 콜센터 2센터 개소식에 참석, 상담팀을 격려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자살률 1위’ 오명 언제까지

한국에선 하루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지난 9월 25일 발표한 ‘2024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 사망자 수는 1만4872명(하루평균 40.6명)으로 전년보다 894명(6.4%) 늘었다.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은 29.1명으로 전년 대비 6.6%(1.8명) 증가했다.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다른 나라와 비교를 위해 연령 표준화한 자살률은 26.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OECD 평균(10.8명)에 비해 2.4배 높고, 두 번째로 자살률이 높은 리투아니아(18.0명)와의 격차도 크다.

2003년 이후 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음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3년새 자살률 증가세를 보이는 데다 연령·지역별로도 자살률 격차가 존재해 자살 원인과 예방 대책을 찾는 일이 복잡해지고 있다. 자살 사망자 수는 2022년 1만2906명, 2023년 1만3978명, 2024년 1만4872명으로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도 자살 사망자 수가 7067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해 연령별 사망원인을 보면 10대, 20대, 30대, 40대 모두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었는데, 40대는 자살이 처음으로 암을 넘어서 사망원인 1위를 기록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인구감소지역의 자살률은 36.3명으로 비인구감소지역 29.5명보다 많았다.

전문가들은 자살률이 증가하는 것과 관련해 생애주기별로 겪는 개인적·사회경제적 어려움이 다양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시행하는 심리부검 결과에 따르면 자살 사망자는 사망 전 평균 4.3개의 스트레스를 복합적으로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도한 경쟁구조, 실패·낙오에 대한 부정적 시각, 사회안전망 부족, 정신과 진료 및 심리치료 기피 분위기, 유명인의 자살과 자극적인 보도, 지역의 정신건강·자살대응 인력 부족 등이 자살률이 높은 이유로 꼽힌다.

이아라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형 사회적 재난 몇 년 뒤 자살률이 오르는 경향이 있는데 코로나19 팬데믹 때 사회적 고립, 경제적 어려움 등 스트레스 요인이 많았다. 억눌렸던 그 스트레스 요인이 자살률 증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사회적·경제적 어려움도 크기 때문에 사회적 영향이 적지 않게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예전과 비교해 ‘자살률 증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잘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자살을 ‘사회적 재난’이라 규정하고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정부는 지난 9월 12일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제9차 자살예방정책위원회를 열고 ‘2025 국가자살예방전략’을 의결했다. 5년 이내에 연간 자살 사망자 수를 1만명 아래로 줄이고, 2034년엔 자살률을 17명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로 제시했다.

자살예방전략으로 고위험군 집중 대응 부분이 눈에 띈다. 자살 시도자가 발생했을 때 경찰·소방의 출동, 응급실 동행, 심리지원 등 지자체 자살예방센터의 즉각 개입을 강화한다. 자살예방센터 인력을 현재 센터당 2.6명에서 내년 5명으로 늘린다. 응급실 내원자를 대상으로 응급 치료와 사례관리를 제공하는 위기대응센터를 92곳에서 내년 98곳으로 늘린다. 치료비·심리검사 지원 소득기준(현 기준준위소득 120% 이하)을 폐지한다. 내년 자살예방 관련 예산은 올해 562억원에서 내년 708억원으로 26% 증액했다.

정부가 자살예방 대책을 강화하고는 있지만, 현장에선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아라 교수는 “응급실 위기대응센터를 운영하면서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고위험군을 사후관리했더니 그렇지 않은 대비군에 비해 자살 사망률이 3분의 1로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고위험군 개입은 굉장히 중요하다”며 “다만 시범사업이다 보니 치료비 지원액 100만원으로는 입원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환자들도 있다. 현장에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입원비를 걱정하는 환자들을 보면 안타깝다. 실질적인 지원이 더 늘어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 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 SNS 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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