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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되고, 너는 또 안 되고?

입력 2025.10.29 06:00

수정 2025.10.2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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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후] 나는 되고, 너는 또 안 되고?

시작은 들끓는 한강벨트 부동산의 이야기였다. 하루가 멀다고 신고가가 터져나오는 부동산 광풍을 취재하고 마감하려던 차에 정부의 10·15 부동산 대책이 나왔다. 시장 분위기가 급변했고, 사람들의 말도 달라졌다. ‘정부 대책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던 이들도 입장을 바꿨다. 그만큼 10·15 대책의 충격은 컸다. 기껏해야 서울 몇 곳을 투기지역으로 묶고, 대출이나 더 죌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예측은 빗나갔다.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광범위하게 지정하면서, 말 그대로 부동산시장을 일거에 멈춰 세웠다.

이호준 기자 사진 크게보기

이호준 기자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장에서 광풍을 목격했던 입장에서 정부의 선택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지방선거를 앞둔 여당이 오죽하면 이런 선택을 했을까 싶기도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들끓는 민심을 가라앉히겠다며 쏟아져나온 여당 정치인과 관료들의 발언이 상식적이지 않았다. ‘강도 높은 대책을 갑자기 내놔서 송구하다’거나 ‘이해해달라’는 말이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수억원 빚내서 집 사는 게 정상이냐”거나 “돈 모아서 나중에 사라”는 식의 꾸짖음이나 가르침에 가까운 발언이 쏟아졌다.

더군다나 해당 발언의 당사자들은 이미 부동산만 따져도 수십억원의 자산을 쌓은 이들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내놓은 해명조차 ‘내 상황은 좀 불가피했다’ 수준이니 민심이 요동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토허구역 지정으로 해당 지역의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직이나 파견 등 투기가 아닌 현실적인 이유로 전세를 안고 집을 사고팔아야 하는 이들도 있다. 전세 낀 아파트 거래가 불가능해지면서 규제지역에서는 갈아타기나 이사를 준비하던 사람들의 계획도 적지 않게 틀어지게 됐다. 일시적 2주택자들의 경우 정부의 대책으로 세를 준 집 매매가 불가능해지면서 비과세 기간을 놓쳐 수억원의 양도소득세를 물어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대책 이후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했을 일은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불편에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었어야 했다.

10·15 대책으로 부동산시장의 열기는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어찌 됐건 정책은 제 할 일을 한 셈이다. 문제는 정책 입안자들이다. 지금처럼 ‘나는 됐지만, 이제 너는 안 된다’는 식의 태도와 인식으로는 시장의 신임을 얻을 수 없다. 부동산이 안정될 거라지만, 서울 강남의 집을 팔았다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뉴스는 아직 없다. 이미 2층으로 올라간 이들이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외쳐봤자, 귀 기울여 들을 이들이 더 이상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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