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달리다가 눈에 띄는 이정표를 찾아 들어갔다. 경기도 시흥의 관곡지. 이때쯤이면 생각나는 곳 중 하나인지라 오늘은 어쩐지 이곳에 가야만 할 것 같았다. 기록에는 관곡지가 조선 세조 때 연못이라고 나온다. 사헌부 감찰이던 권만형의 집안에서 소유한 사유지였다고. 여기에 권만형의 장인인 강희맹이 명나라에서 가져온 연(蓮)의 씨앗을 심었다고 한다. 그는 문신이자 농학자였고, 가져온 씨앗은 관곡지에서 시작해 널리 퍼져나갔다. 그래서 시흥에서는 이 마을을 연꽃의 마을이라며 ‘연성’이라 불렀다.
가을마다 이곳이 생각난 건 몇 년 전 보았던 풍경 때문이었다. 한여름 우아한 자태를 뽐냈을 연꽃은 지고 이파리며 줄기는 이미 시들었지만, 촘촘히 모여앉은 가을의 연밭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볕 좋은 날 관곡지를 찾은 사람들은 고샅길을 따라 걷고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며 가을을 즐기는 풍광. 이때쯤이면 어디든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모습이겠지만, 이곳은 아직 남아 있는 연의 향기가 더해져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오랜만에 찾아온 날도 그랬다. 사람들은 연밭 사이로 걸었고, 희미한 연의 향기는 대지에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 청명한 가을이 완연한 풍경. 하늘도, 연밭도, 사람도 다정하다. 부디, 모두가 언제나 오늘만 같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