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성향 단체들이 지난 9월 29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중국인 무비자 입국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요즘 국회에선 여야 할 것 없이 ‘아니면 말고’가 원칙처럼 통용된다. 엄밀히 말하면 ‘아니어도 맞고’다. 한계선을 넘어선, 음모론에 가까운 주장이 이어진다. 타깃을 잡아 공포와 불안을 조성하고, 주장을 뒤집는 사실이 제시돼도 인정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사실’ 여부가 아니라 ‘적’을 향한 분노다.
한시적으로 시행 중인 중국인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을 두고 중국인에 의한 범죄 행위와 전염병 확산 가능성에 유의하라는 주장이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나왔다. 국민의힘은 ‘중국인 3대 쇼핑(의료·선거·부동산) 방지법’ 당론 추진까지 공언했다. 코스피 상승의 배경으로 중국 자본 개입설을 제기하면서도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다”(김민수 최고위원)라고 했다.
이들은 보수진영 일각의 혐중 정서에 편승하고 있다는 지적에 타당한 우려점을 짚은 것이라고 반박한다.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사실로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있는 주장이 대부분이다. 가령 외국인 건강보험 부정수급자의 70.7%가 중국인이라는 국민의힘 주장은 “부정수급의 99.5%는 사업장을 퇴사했을 때 사업주가 신고를 늦게 해 발생했다”(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는 설명으로 반박된다.
하지만 정서적 혐오의 위력은 상당해서 ‘사실’은 좀처럼 조명받지 못한다. 음모론을 펴는 쪽에선 프레임에 맞춰 파편적 사건들을 끌어다 쓰거나, 여러 허위정보에 약간의 사실을 가미하는 식으로 진실을 덮는다. 그러면서 감정을 건드린다. 불안, 공포, 화가 뒤엉키는 감정의 파고 속에서 ‘우리 편’의 결집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유튜브 정치의 영향력이 커지며 심화하고 있다. ‘타당한 의혹 제기’라는 외피를 쓴 음모론식 주장이 정당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이유다. 최근 여당 일부 의원은 친여 성향 유튜브에서 불거진 조희대 대법원장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회동설’을 꺼내들었다. 의혹의 당사자들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힌 이후에도 여당에선 해당 유튜버 주장을 반복하는 수준의 이야기만 되풀이됐다.
회동설에 불을 지핀 의원들은 공신력 있는 사람에게 제보를 받았다면서도 ‘사실 확인은 수사의 영역’, ‘정치인이 의혹을 제기한 것이 무슨 문제냐’고 했다. 조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해온 일부 지지층에는 소구됐을지라도, 의혹을 띄운 의원들이 회동설의 진위를 입증하는지가 쟁점화하면서 사법부 개혁을 논의할 공간이 협소해졌다는 자조가 당내에서 나왔다.
맹목적 혐오와 게으른 비판은 음모론 딱지를 피해갈 수 없다. 정치인이 쏟는 에너지의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 자신의 주장에 한국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가 담겨 있다면, 문제임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확보하는 작업을 거쳐 대안을 제시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장기이식법’ 개정안을 발의 1년여 만인 지난 10월 21일 철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 의원이 지난 9월 발의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과 이 법안을 연결 지어 장애 혐오 발언과 근거 없는 음모론을 펼친 이들의 공세 때문이다. 기증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대기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개정안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의원들이 음모론에 선을 긋고 힘을 보탰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중앙 정치무대에 음모론의 등장을 허한 지금의 국회에 기대할 순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