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커피를 ‘세계 음료’로 만든 보스턴의 반란



주간경향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19) 커피를 ‘세계 음료’로 만든 보스턴의 반란

입력 2025.09.26 15:06

수정 2025.09.26 15:09

펼치기/접기
  •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보스턴 부두에 영국 화물선을 재현한 배가 정박해 있다. 손호철 제공

보스턴 부두에 영국 화물선을 재현한 배가 정박해 있다. 손호철 제공

“커피요? 티요?” 호텔에서 아침을 먹으러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질문이다. 미국은 아예 종업원들이 커피 주전자를 들고 와 “커피요?” 하고 묻는다. 커피가 이처럼 보편화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약 250년 전으로, 한 정치적 사건 때문이다.

나는 플리머스를 떠나 커피를 ‘미국의 국민차’로 만든 사건을 찾아서 보스턴으로 향했다. 1773년 말에 있었던 ‘보스턴의 반란’의 현장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한 시간 정도 달려 보스턴 중심가로 들어가자, 당시 보스턴 시민들의 정치적 모임 장소였던 고색창연한 건물이 나타났다. 항구 쪽으로 향하자 고층빌딩을 배경으로 작은 옛 선박 한 척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배 위에서 흰 사각형 상자를 바다로 던지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찍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영국 차를 바다에 던져버렸던 250년 전의 ‘보스턴 차 파괴사건’을 재현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250년 전 ‘보스턴 차 파괴사건’을 재현해 차 상자를 바다에 던지는 시늉을 하고 있다. 손호철 제공

관광객들이 250년 전 ‘보스턴 차 파괴사건’을 재현해 차 상자를 바다에 던지는 시늉을 하고 있다. 손호철 제공

영국은 17세기부터 중국에서 수입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영국은 동인도회사에서 차 수입을 독점하게 했고, 식민지들은 영국 차만 수입하도록 규제했다. 영국은 식민지 유지에 재정적자가 누적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1767년 식민지가 수입하는 차, 유리 등 물품에 대해 세금을 징수하는 타운센드법을 제정했다. 이는 세금징수를 위해서는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보스턴 등 미국의 식민지 주민들은 “대표 없이, 세금 없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저항했다. 영국은 결국 차를 제외한 품목에 대해서는 이 법을 무효로 했다.

보스턴 티 파티 박물관에서 당시 복장을 한 직원이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손호철 제공

보스턴 티 파티 박물관에서 당시 복장을 한 직원이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손호철 제공

‘차 파괴’ 나비효과로 미국 독립과 커피 확산

미국 상인들은 동인도회사의 차 독점과 세금에 대해 네덜란드 상인의 차를 싼값에 밀수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러자 동인도회사의 적자가 심해졌다. 영국은 차를 동인도회사가 식민지 상인에게 팔고, 이 상인들이 식민지에서 팔던 판매방식을 동인도회사가 직접 식민지에서 판매하도록 하는 법을 1773년 제정했다. 뉴욕 등 다른 미국 식민지들은 차 주문을 취소하거나 이미 도착한 차는 하역을 하지 않고 영국으로 돌려보내는 등 차 수입을 중단했다. 보스턴은 강경한 주지사의 고집으로 차를 실은 배가 보스턴 항에 도착 후 정박해 하역 준비에 들어갔다.

“아니 웬 모호크야?” 1773년 12월 16일 저녁, 보스턴 항에 정박 중인 영국 배 앞에 모호크족의 독특한 복장을 한 일행이 나타났다. 이들은 재빨리 배에 올라타 선창으로 내려갔다. 이들은 조금 뒤 배에 싣고 있던 차 상자를 들고 나타나 바다로 던지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차 상자들이 바다로 사라졌다. 인구 1만6000명의 20%에 달하는 3000여명의 주민이 부두에 모여 이를 지켜보며 만세를 불렀다. 미국 독립전쟁의 격발 쇠인 보스턴 차 파괴사건이 시작된 것이다.

보스턴 티 파티 박물관 근처 다리에는 보스턴 차 파괴사건으로 촉발된 미국 독립전쟁에서 싸운 이들을 기리는 ‘독립전쟁 애국자’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손호철 제공

보스턴 티 파티 박물관 근처 다리에는 보스턴 차 파괴사건으로 촉발된 미국 독립전쟁에서 싸운 이들을 기리는 ‘독립전쟁 애국자’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손호철 제공

주목할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자유의 아들들(Sons of Liberty)’과 같은 급진세력만이 아니라 보수적인 상인들을 포함해 일반 시민 다수가 항쟁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차를 공격한 사람들이 원주민인 모호크족의 복장을 한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영국의 처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위장술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과 다른 ‘아메리카’라는 자기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미가 있었다.

이렇게 물속으로 던져 버린 차는 4만2000㎏으로 당시 가격으로 1만파운드(현재 가치로 170만달러)라는 것이 동인도회사의 주장이다. 영국은 재산상의 피해를 넘어서 “이 같은 식민지의 반란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라는 강경론에 기초해 보스턴 항을 봉쇄하고, 매사추세츠를 응징하는 일련의 ‘불용인 법’을 제정하는 등 강력한 처벌에 나섰다. 이는 오히려 식민지를 단결시켰고, 결국 미국 독립전쟁을 앞당기고 말았다.

보스턴 티 파티 박물관에는 보스턴 차 파괴사건 기념우표가 전시돼 있다. 손호철 제공

보스턴 티 파티 박물관에는 보스턴 차 파괴사건 기념우표가 전시돼 있다. 손호철 제공

보스턴 차 파괴사건 후 미국인들은 차를 마시는 걸 반애국적 행위로 간주했고, 차 대신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보스턴 차 파괴사건이 그전까지 별 인기가 없었던 커피의 소비를 급속히 촉진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패권과 함께 커피는 세계로 퍼져나가 ‘세계 음료의 패권’을 갖게 됐다. 시애틀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커피체인 스타벅스 등 수많은 커피 업체가 보스턴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나비효과’라는 것이 있다. 남미 아마존강에서 한 나비의 날갯짓이 수많은 연쇄작용을 일으켜 미국에 폭풍우를 가져오듯이, 우발적 사건이 중대한 역사적 전환을 가져온다는 이론이다. 영국의 차 판매 정책이 보스턴 차 파괴사건을 초래하고, 이에 대한 영국의 강경 대응이 2년 뒤 미국 독립전쟁을 촉발했다. 그 결과로 미국이 독립을 쟁취했다. 또 커피가 미국의 음료, 이어 세계의 음료가 되고 말았다. 미국의 독립과 커피의 보급은 나비효과의 전형적인 예다.

보스턴 차 파괴사건 현장 근처에 주차할 수 없어 다리 건너에 주차했다. 걸어서 다리를 건너자 재현해 놓은 범선 위쪽으로 옛날 스타일의 집이 한 채가 나타났다. 당시 주민들이 모여 차를 공격하려 준비했던 곳으로 이제는 박물관 겸 기념품 판매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2층 발코니에는 당시 복장을 한 중년 여성이 당시의 구호를 외치며 분위기를 잡고 있었다.

보스턴 차 파괴사건 당시 영국에서 발간된 <미국 역사> 책에 있는 삽화. 모호크족 복장으로 위장한 것이 인상적이다. 손호철 제공

보스턴 차 파괴사건 당시 영국에서 발간된 <미국 역사> 책에 있는 삽화. 모호크족 복장으로 위장한 것이 인상적이다. 손호철 제공

‘민족해방 선구자’서 제국주의로 씁쓸한 변신

그 구호를 듣고 있자, 갑자기 보스턴 반란을 왜 ‘보스턴 티 파티(Tea Party)’라고 부르는지 의문이 들었다. 영국 차를 바다에 던져버렸으니, 당연히 ‘보스턴 차 파괴사건’이나 ‘보스턴 차 투척사건’이지 무슨 ‘파티’란 말인가? 찾아보니, 미국도 초기에는 ‘차 파괴사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사유재산을 신성시하는 분위기에서 남의 재산을 파괴한 행위를 칭송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1830년대 이후 ‘보스턴 티 파티’라고 미화해 부르고 있다. 남의 재산을 파괴한 사건을 파티라고 부르다니, 미국이 얼마나 보수적인 사회인가를 보여주는 씁쓸한 코미디다.

보스턴 시민들이 여러 문제를 논의했던 옛 의회 건물 / 손호철 제공

보스턴 시민들이 여러 문제를 논의했던 옛 의회 건물 / 손호철 제공

씁쓸할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서구와 일본의 지배에 저항해 중국혁명에 성공한 마오쩌둥은 건국 초기 당 최고회의에서 “미국은 영국 제국주의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민족해방운동의 선구자이니, 같은 처지의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고 주장했고, 미국에 화친을 제의했다. 미국은 이를 외면했고, 마오쩌둥은 당내에서 곤란한 위치에 처하고 말았다. 미국은 영국의 식민주의에 저항해 일찍이 독립을 이룬 민족해방운동의 선구자지만, 이후 필리핀 등을 직접 식민지로 삼았고, ‘제국주의’ 국가로 변해 수많은 민족해방운동을 분쇄했다. 관광객들이 배 위에서 차를 던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 보스턴 차 파괴사건 당시 미국이 가졌던 초심은 어디로 간 것인지 씁쓸하기만 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