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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내로남불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입력 2025.09.26 15:04

수정 2025.09.2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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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지난 9월 11일(현지시간)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애틀랜타 공항으로 향하기 위해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을 나서며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11일(현지시간)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애틀랜타 공항으로 향하기 위해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을 나서며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언젠가부터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무슨 사자성어처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은 어른의 표현이고, ‘우리 편 착한 편, 너희 편 나쁜 편’ 같은 어린아이의 표현도 있다. 이는 단순히 자신이 저지른 부정이나 불법에 무지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이중잣대나 판단 기준의 비일관성 따위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라는 상대주의적 견해를 표현한 것도 아니다. 내로남불은 객관적인 공통의 윤리 규칙을 부정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옳고 그름의 유일한 가치 기준으로 삼는 태도다.

이것의 변형으로는 ‘나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상관없다’가 있다. 이런 태도를 가진 인간 역시 모든 가치를 옳고 그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불이익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타인의 부당한 행위로 자신이 피해를 보았을 때, 그가 규칙을 어겼다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에게 준 피해에만 집중한다. 이런 사람은 언제라도 내로남불의 실행자가 될 수 있다.

개인뿐 아니라 기업이나 이익 집단, 심지어 국가 공동체도 이런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얼마 전 트럼프 정부가 한국 노동자를 폭력적으로 체포하고 추방하자, 많은 사람이 분노를 터뜨렸다. 하지만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고려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은 ‘미국이 우리 뒤통수를 쳤다’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은 객관적 규칙과 가치가 아니라 ‘우리’가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이다. 눈을 돌려 한국 내부를 보자. 국가기관이 제도적 인종 차별을 실행하고, 이주노동자를 향한 온갖 폭력을 동원해도, 한국사회의 주류는 별 관심이 없다. 그게 결국 ‘우리’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폭력도 ‘우리’의 이익에 부합하면 좋은 것이고, 피해가 되면 나쁜 것이다.

지지층만 보는 주류 양당

모두가 내로남불의 태도를 따르는 상태, 즉 각자의 이익이 곧 각자의 옳음을 규정하고, 100명의 개인이 100개의 윤리적 규칙을 가지고 있는 상태, 그래서 모두가 모두에 맞서 싸워야 하는 상태, 이것이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자연 상태’다. 사회를 구성하려면, 여기서 벗어나 공통의 규칙을 수립해야 한다. 물론 자연 상태는 인류 역사에 실재한 적 없는 이론적 상상이지만, 그게 언제나 상상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하나의 경향으로는 실질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지금 한국이 그렇지 않은가? 사회 공통의 규칙을 존중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 그리고 나의 이익과 불이익이 가장 중요하다는 목소리 중에 어느 쪽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가?

상대에 대한 반대에서 나오는 정치를 형상화한 이미지 /  언스플래시

상대에 대한 반대에서 나오는 정치를 형상화한 이미지 / 언스플래시

가장 노골적인 내로남불을 보여주는 것은 주류 양당의 정치인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정당 지지자의 태도도 비슷하다는 점이다. 이들은 윤리 규칙을 무시하고, ‘우리 당의 이익’을 가치 판단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다. 이런 광경이 너무 익숙해서 대부분은 그냥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는 분명 기묘한 상황이다. 평범한 시민이 무슨 이득을 보겠다고 정치인의 내로남불에 동참하는가?

애초에 정당은 이익집단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자. 정당은 자신의 이념을 공동체의 운영 원리로 만드는 데 존재 이유가 있다. 특정 계급이나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당이 있더라도, 그런 특수한 이익이 공동체 전체의 이익으로 일반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자신만의 특수한 이념이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당은 현실에 존재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선거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주류 양당은 특수의 일반화라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이른바 ‘고정 지지층’에만 신경을 쓴다.

한국에서 정당의 고정 지지층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경제적 이익이나 사회적 계급은 결정적 요인이 아니다. 한국의 양당 구도를 계급 대결 구도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정치 이념도 결정적이지 않다. 만일 이념에 따라 지지층이 형성된 것이라면, 지지자가 정치인의 내로남불에 동참하는 기묘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어떤 정치 이념도 그런 태도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정성의 정치 공간

고정 지지층의 형성 요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카리스마적 정치인과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정당에 감정적으로 동화되거나, 경험의 유사성을 통해 일종의 동지애적 관계를 맺는 경우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 있는데, 바로 상대 세력에 대한 적대감이다. 주류 양당과 고정 지지층의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임’이 아니라 ‘~아님’이다. 즉 민주당 세력의 존재 근거는 ‘국민의힘 반대’이고, 국민의힘 세력도 ‘민주당 반대’로 유지된다. 한국 정당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이러한 부정성의 논리다. 물론 ‘검찰 독재 반대’나 ‘좌파 운동권 반대’처럼 부정의 구체적 대상은 다양하다.

이런 논리에서 도출되는 첫 번째 원칙은 ‘저들의 집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다른 모든 판단 기준을 압도한다. 물론 두 진영의 반대가 같은 수준의 타당성을 갖지는 않는다. 국민의힘은 국정 농단과 내란 사태의 주범이므로, ‘국민의힘이 집권하면 나라 망한다’라는 우려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반면 민주당 집권을 막기 위해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런 주장에 음모론과 망상이 개입하고 있다. 하지만 두 진영 모두 동일한 두 번째 원칙을 동반하는데, ‘저들을 막기 위해 우리 세력을 무조건 지지하고 방어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한국 정당의 존재 이유는 자기 이념에 따라 공동체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적대 세력의 위협을 제거하는 데 있다. 따라서 자기 정당을 지키는 것이 곧 이 나라와 정치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간주한다. 결국 내로남불은 몇몇 뻔뻔한 정치인과 맹목적 지지 집단의 예외적 태도가 아니라 한국 정치의 기본 논리로 자리 잡는다. 자기 세력이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적대 세력에게 효과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잘못된 일이 아니다. 자기 세력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적대 세력에게 이익이 된다면 그런 인정이 오히려 잘못된 일이다. 자기 세력에 이익이 되면 옳은 것이고, 상대에게 이익이 되면 그른 것이다. 주류 양당은 실제로 이런 논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가? 이런 곳에서 공동체라는 것은 상상의 대상도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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