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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소비하는 정치

입력 2025.09.24 06:00

수정 2025.09.24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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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숭례문 인근의 찰리 커크 추모공간 / X 캡처

서울 숭례문 인근의 찰리 커크 추모공간 / X 캡처

미국 극우 청년 활동가 찰리 커크가 총격으로 숨졌습니다. 그 소식은 국경을 넘어 국내 극우 진영의 추모 열기로까지 번졌죠.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 단체인 자유대학은 서울 숭례문광장과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 앞에 추모 공간을 마련하고 스스로 ‘상주’를 자처했습니다. 그들에게 커크는 단순한 청년 활동가가 아니라 ‘롤모델’이자 정치적 미래를 투사할 상징 같았습니다.

미국의 반응은 더 노골적입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백악관에서 ‘찰리 커크 쇼’ 추모 방송을 이어갔고, JD 밴스 부통령은 “좌파 진영을 근절하기 위해 정부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도 전에 폭력의 책임을 ‘좌파’에 전가하며 정치적 보복의 기회로 삼은 것이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커크를 비난하는 외국인의 비자를 취소하겠다”는 발언까지 내놓았습니다. 추모가 증오와 적대의 동력이 돼버린 듯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해 7월 유세 도중 총격을 당했을 때,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이 야당 대표이던 지난해 1월 부산에서 피습됐을 때, 사회는 이미 폭력의 그림자를 경험했습니다. 정치적 신념을 앞세운 테러와 살상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치 세력은 그 명백한 원칙을 흐리고, 사건을 선전과 동원의 도구로 삼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폭력 그 자체도 용납될 수 없지만, 폭력을 대하는 정치의 태도 역시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찰리 커크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의 마음을 탓할 수는 없겠지만 추모가 정치의 레토릭 속에서 증오를 재생산하는 수단으로 소비되는 현실은 더 깊은 우려를 남깁니다. 증오와 폭력이 일상화되는 순간, 민주주의의 안전망은 무너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자산으로의 추모가 아니라 폭력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주 주간경향은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AI 3대 강국’ 달성을 위한 정책을 들여다봅니다. 정부는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내년 시행을 앞둔 인공지능법의 후속 입법 절차를 진행 중인데요, 산업적 측면에서 진흥 위주로 짜이는 정책이 놓칠 수 있는 인권 침해 소지나 규제 허점 등을 짚어봅니다. 경찰의 진입 제한 조치로 서울 명동 인근에서의 ‘혐중 시위’는 일단 제한됐지만, 특정 국가를 겨냥한 폭언과 시위는 한·중관계는 물론 경제적 측면에서도 악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혐오와 차별로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하는 비용을 따져봤습니다. 이와 함께 출범 1년을 맞은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경과를 짚어보고, 협치보다는 대치 쪽으로 기울고 있는 정치권 상황, 이재명 대통령이 재차 약속한 상속세 공제 확대의 배경과 문제점도 분석해봅니다.

이주영 편집장 young78@kyunghyang.com

이주영 편집장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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