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파업 선언 기자회견이 열린 2024년 5월 29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인근에 노조 측의 요구 조건이 적힌 트럭이 서 있다. 권도현 기자
직원 A: 변호사님, 우리 부서 사람들은 성과급을 한 푼도 못 받았습니다.
변호사: 왜요? 성과가 안 좋았던 겁니까?
직원 A: 아니요, 애초에 평가 자체를 안 했어요. 회사가 우리 부서를 성과평가에서 빼버린 겁니다. 그러고는 ‘평가가 없으니 줄 게 없다’는 거예요.
변호사: 다른 부서 직원들은요?
직원 A: 다른 부서 사람들은 최하등급을 받아도 일정 금액은 받았어요. 그런데 우리는 0원. 너무 불합리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A를 비롯한 직원들이 소송을 걸었는데, 대법원까지 가서 반전이 있었습니다. “평가를 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직원들이 최하등급을 받아도 일정액을 받은 이상, 평가에서 제외된 직원에게도 최소한 그만큼은 지급해야 한다.” 회사가 성과평가 제도를 운용하면서 특정 부서를 평가에서 빼버렸다면, 그 책임은 회사에 있습니다.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전가할 수는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대법원 2024. 3. 12. 선고 2021다252946 판결).
성과급은 회사 마음대로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는 게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성과급은 ‘보너스’라고는 불리지만, 회사가 만든 제도와 약속에 따라 지급해야 하는 임금적 성격을 가집니다. 평가를 누락했더라도, 최소한 최하등급 지급률만큼은 의무라는 점이 이번 판례의 메시지입니다. “평가를 안 했다고 해서 성과급이 사라지진 않는다.”
약속의 성과급
이렇게 회사와 근로자가 성과급을 두고 다투는 사건도 있습니다. 성과급 관련 최근 판례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성과급 약정이 분명한 경우, 법원은 그대로 집행하게 합니다. 전주의 어느 병원 의사가 병원과 매출 연동 성과급 약정을 맺었는데, 병원이 일부 매출을 빼고 계산했습니다. 법원은 “약정에 없는 공제까지 할 수 없다”며 병원에 미지급 성과급을 지급하라고 했습니다(2019가단11847). 제주에서는 회사 실질 운영자가 “보너스는 약속합니다”라고 말한 녹취를 근거로, 구두 성과급 약정에 의한 2억원 청구도 인정했습니다(2018가단58099).
‘노사합의와 관행도 약속이다.’ 창원에서는 20년 넘게 성과급을 노사합의로 정해 오던 회사가 합의가 결렬되자 일방적으로 기준을 정해 지급했습니다. 법원은 “노사합의와 관행은 구속력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2020년 합의 때 “일방적으로 제도를 바꾸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은 점이 중요했습니다. 결국 법원은 과거 합의 기준에 맞춰 다시 계산해 차액을 지급하라고 했습니다(창원지법 2025. 2. 26. 선고 2024가합101520 판결: 항소 중).
‘퇴직했다고 안 주면 위법.’ 퇴직자에게는 성과급을 안 준 경우가 문제 된 사건도 있습니다. 회사는 “지급일 현재 재직자에게만 준다”는 내부 방침을 내세웠지만, 법원은 “성과급은 근무한 기간의 대가이므로 퇴직 여부와 상관없이 받을 권리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다만 평가 기간을 채우지 못한 일부 원고는 패소했습니다(서울동부지법 2022가단141877).
대법원이 포괄임금제에 던진 메시지
2025년 9월, 대법원은 의미 있는 판결을 했습니다. 대형병원 전공의(레지던트)들의 “주 80시간 근무, 연장·야간수당 달라!”는 주장에 대해 병원 측은 “전공의 선생님, 우리 병원은 포괄임금제입니다. 월급 안에 다 포함된 겁니다”라고 맞섰습니다. 대법원은 “포괄임금제는 예외, 계약서에 명확히 없으면 인정 안 돼”, “수련도 병원 지휘 아래 했다면 전부 근로시간”이라며 전공의들의 청구를 인정했습니다.
전공의들이 병원에 연장근로수당과 야간근로수당을 청구한 사건에서 핵심은 ‘포괄임금약정’이 성립했는지 여부였습니다. 대법원은 포괄임금제가 성립하려면 ▲근로시간 산정이 본질적으로 어렵거나 일정한 추가 근로가 불가피한 상황 등 실질적 필요성이 있어야 하고 ▲임금에 이미 수당이 포함된다는 점이 객관적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근로계약서나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묵시적으로 인정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전공의들의 근무시간표에 적힌 시간은 교육 시간의 성격을 갖더라도 모두 근로시간으로 인정되며, 병원이 준 급여는 1주 40시간의 대가일 뿐 그 이상을 포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대법원 2025. 9. 11. 2019다273803 판결).
‘전공의니까 원래 밤낮없이 일하는 것’, ‘의료현장의 특수성’이라는 병원 측의 논리를 일축하고, 근로시간과 수당 지급 원칙을 확인한 사건입니다. 전공의뿐 아니라 ‘특수성이 있다’는 이유로 장시간 노동을 당연시해온 여러 업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이 사건을 2019년부터 심리해 7년 만에 선고했습니다. 많은 전공의는 그사이 전문의가 돼 임금 채권은 소멸했을 것입니다.
하이닉스가 노동법에 쏘아 올린 1억원
2025년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을 장악하며 매출 22조원, 영업이익 9조원을 기록하는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습니다. “1억원 성과급”이라는 파격적인 보상은 회사 이미지를 단숨에 ‘일하고 싶은 기업 1위’로 끌어올렸고, 다른 기업에서 ‘올해 임단협의 최대 걸림돌은 SK하이닉스’라는 말도 나옵니다.
사측은 기본급의 1700% 지급안을 내놨지만, 직원들은 영업이익의 10%가 가능하다고 보고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경영진은 공개적인 공청회를 열어 직원들의 의견을 청취했습니다. 노사는 마침내 ‘기존 성과급 상한(기본급의 최대 1000%-계약연봉의 약 50% 상당액)을 없애고, 연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지급한다’는 전례 없는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이 모델은 상한선을 없애고, 회사가 이익을 낼수록 직원 보상이 커지는 단순하고 투명한 원칙을 제도화했습니다. 더 나아가 개인별 산정액의 20%를 2년에 걸쳐 이연 지급하도록 해 단기 보상에 그치지 않고 직원들이 회사의 장기 성장에 참여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성과급 배분 규정은 10년간 유지됩니다.
새로운 합의는 기업 보상 문화에 중요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회사는 직원들을 ‘파트너’로 인정하며 신뢰 회복과 장기적 경쟁력 확보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과급의 임금성 논란이 불거지며, 평균임금에 포함될 경우 퇴직금이 수억원까지 늘어나는 ‘퇴직금 폭탄’ 리스크도 제기됐습니다. SK하이닉스의 2025년 성과급 협상은 그 자체로 일단락됐지만, 대한민국 노동법 분쟁의 새로운 불씨일 수도 있습니다.
SK하이닉스의 2025년 성과급 협약과 전공의 포괄임금 초과수당 사건은 각각 단체교섭을 통한 제도적 합의와 소송을 통한 사법적 구제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안 모두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임금이 회사의 재량이나 선심성 보너스가 아니라 법과 제도로 보장돼야 할 근로자의 권리라는 사실입니다.
성과급 제도를 설계할 때는 영업이익 산정 기준, 적자 발생 시 처리 방식, 배분 구조와 최소 보장 규정 등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또한 평균임금 포함 여부, 퇴직자와 휴직자에 대한 지급 규정까지 고려해 문서화해야 하며, 이연 지급과 환수(clawback) 장치를 마련해 단기 성과 편중이나 부정행위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편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 산정이 본질적으로 곤란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인정됩니다. 따라서 계약서에는 포함되는 수당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하고, 실제 근로시간을 기록·정산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분쟁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성과급이든 포괄임금제든 제도의 불명확성을 제거하고, 노사 간 합의와 문서화를 통해 투명하게 운영할 때 비로소 안정성이 확보됩니다. 특히 임금과 관련된 근로조건은 불명확할 경우 쉽게 분쟁으로 이어지므로, 이는 근로자 보호뿐 아니라 경영자의 예측 가능성과 기업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선결돼야 할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