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시브 연극 <슬립노모어>, 창극 <심청>, 무용극 <김성훈 on Sync Next 25 Pink>
창극 <심청>의 가장 충격적인 이미지 중 하나는 원작에서 심 봉사가 눈을 뜨는 연회 장면이다. 비장애인이든 시각장애인이든 모두 희번덕하게 뜬 안대 가면을 쓰고 등장하면서 관습의 희생양이 된 심청의 처지를 재차 강조한다. 국립극장 제공
본적 없는, 경험하지 못했던 관객 체험형 혹은 몰입형 작품이 연달아 상연되고 있다. 8월 말~9월 초 한국 공연예술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할 만큼 파격적인 작품이 연속 상연됐다. 효심을 상징하는 고소설 <심청>을 기반으로 한 판소리 <심청>을 해체한 잔혹 창극 <심청>,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을 모티브로 섬에 갇힌 소년들의 약육강식을 추출해 8명 남성 무용수의 컨템포러리 댄스(동시대적 무용)와 전라 퍼포먼스로 폭력의 악순환을 감각하게 한 <김성훈 on Sync Next 25 ‘pink’>(이하 ‘핑크’),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와 앨프레드 히치콕 영화 <레베카>를 모티브로 하면서 서사적으로는 분절하고 해체한 관객체험형 몰입극 <슬립노모어> 등이 대표적이다.
해체로 시작하는 동시대적 사유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대표적인 작품은 국립창극단의 <심청>이다. 효심을 상징하는 고소설 <심청>을 해학과 풍자로 풀어낸 창극 <심청>(요나 김 연출, 한승석 작창·음악, 헤르베르트 무라우어 무대, 라인하르트 트라웁 조명, 이상현 음향, 벤야민 뤼트케 영상·라이브카메라, 팔크 바우어 의상)은 독일과 유럽 오페라계에서 활동하는 창작진들이 합류하면서 온전히 해체됐다. 객석에 들어서면 다큐멘터리 영상이 프리쇼처럼 상영된다. 심청을 아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말에 대중은 “효녀”, “희생자”, “답답하다”, 혹은 “잘 모른다”는 답변을 내놓는다. ‘심청이 정말 효심의 대명사일까?’라는 문제 제기다. 객석이 환한 상태에서 예닐곱 살짜리 소녀들이 객석 입구에서 괴기스러운 혼령 분장을 하고 쏟아져 나오며 비명 같은 웃음을 내지른다. 객석 맨 앞줄까지 달려가 한바탕 웃어대는 수십 명의 소녀가 다시 썰물처럼 객석을 빠져나가면서 심청의 생모 곽씨의 장례식이 시작된다. 심청의 희생은 고래로 수많은 딸의 희생과 닿아 있으며, 그들의 혼령이 여전히 지켜보고 있다는 복선이다.
검은 양복을 입은 문상객들로 가득 찬 무대 위, 아기를 안은 심 봉사 앞을 이질적인 스커트 정장의 세련된 여성이 지나간다. 뺑덕어멈이기도 하고 관습적 이야기를 해체하는 창작진들의 시선이기도 하다. 라이브 ENG 카메라가 촬영하는 문상객들과 심 봉사의 측면과 후면이 무대의 상부와 안쪽 벽면에 동시에 확대된다. 기존의 심청 서사를 비틀어 잔혹성으로 벼려낸 창극은 원작 판소리의 가사를 그대로 유지하며 국악과 서양의 혼종된 라이브 연주로 교직된다. 벽면 낙서로 가늠하는 어린 심청의 고독과 무심한 심 봉사의 무능, 심청의 인당수 인신 공양이 사회적 타살임을 드러내는 주변 정황이 영상과 무대 위 라이브 퍼포먼스, 우리 고유의 판소리와 웅장한 서양 오케스트라와 국악관현악으로 애잔하면서 괴기스럽게 펼쳐진다.
<김성훈 on Sync Next 25 Pink>는 유혈 낭자한 공간에서 8명의 남성 무용수가 생생한 조명 디자인과 고통스러운 사운드 디자인을 배경으로 인공 피와 그 위를 전라로 구르고 뛰고 벽에 부딪치고 전율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퍼포밍 아트 컨템포러리 무용극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핑크>(김성훈 안무·연출, 해미 클레멘세비츠 음악, 정승준 무대, 박창순 음향, 양용환 조명)는 폭력의 악순환을 8인 남성 무용수가 전라로 표현해 큰 충격을 준 작품이다. 유혈이 낭자한 하얀 무대 위에 8명의 남성 무용수가 걸레를 들고 등장해 열심히 닦아내는 퍼포먼스로 막을 연다. 조금 옅어져 핑크에 가까운 핏자국들은 힘의 크기에 따라, 관계망에 따라 약육강식의 동물적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다시 유혈 공간으로 바뀐다. 인공 피가 흩뿌려진 공간에서 퍼포머들은 전라로 인간 본연의 폭력성과 불감증을 점증 표현한다. 놀라운 것은 가장 아름답고 정상적이라고 생각한 8명 무용수의 현란하고 절도 있는 군무이다. 이어진 안무에서 전원 탈의하며 각자의 고통과 폭력을 감내하는 장면은 정상적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한 군무가 오히려 폭력에 가까웠으며, 이를 통해 인류는 수없는 피해자와 희생양을 양산해왔다는 사유로 확장된다. 마지막에 남은 전라의 무용수가 인공 피 위를 구르며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퍼포먼스는 반복되는 폭력에 무기력한 인류를 상징하는 비애로 와닿아 객석 여기저기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불편함도 작품의 일부
2003년 런던을 시작으로 뉴욕과 상하이에 이은 서울 전용관을 개관한 펀치드렁크 오리지널 작품 <슬립노모어>(펠릭스 배럿 연출, 맥신 도일 안무·협력연출)는 이머시브 씨어터(관객몰입형 공연) 개념을 확장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슬립노모어(Sleep no more), 즉 ‘더 이상 잠들지 못한다’는 덩컨 왕을 살해한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죄책감과 공포를 드러내는 대사이자 이 작품의 주요 퍼포먼스이다. 공연장은 100여개의 방을 갖춘 7층 규모 매키탄 호텔로 충무로 대한극장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공간이다. 맥베스 등장인물들의 서사와 영화 레베카가 융합해 재배열됐다. 관객들은 입장과 동시에 소지품 보관 후 휴대전화를 담아 봉인한 가방을 메고 가면을 든 채 레베카의 맨덜리 저택을 모티브로 한 맨덜리 재즈 카페로 향한다. 원하는 음료를 마신 후 사전에 받은 카드를 기준으로 가면을 쓰고 본격 참여 공간에 놓인다. 규칙은 절대 말하면 안 된다는 것. 넌버벌 퍼포먼스이므로 관객도, 배우도, 안내자도 다국적 다인종이다. 퍼포먼스와 눈빛으로 소통이 가능한 이 공간의 매력은 탐색을 거듭할수록 마술적 체험으로 환원된다.
관객에게 주어진 3시간 동안 같은 퍼포먼스를 3번 반복하므로 이야기의 순서와 관계없이 주요 퍼포먼스는 대부분 체험한다. 중요한 것은 관객 각자의 개인화된 체험이다. 다수의 관객이 몰리는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의 동선 외에 맥더프 부인과 세 마녀 등 조·단역 배우들을 따라다니다 보면 배우와 관객의 1 대 1 상호작용을 체험한다. 배우들의 동선과 연기는 대부분 컨템포러리 댄스와 발레로 표현되므로 모든 소통은 무용에 가깝다. 호텔 중심부에 있는 연회장과 세 마녀의 숲, 혼돈의 록카페이자 병원으로 오르는 길목, 탐정 사무소, 장의사 등 100여개의 미로 같은 방은 섬세하게 설계돼 공간만 탐색하는 마니아 관객들도 있다.
연극 <슬립노모어>는 관객들이 가면을 쓰고 직접 7층 규모 100여개 방을 탐색하면서 시작된다. 각 공간에 설계된 서사를 수행 중인 퍼포머와 밀접한 상호작용성을 체험하고 스스로 이야기를 꿰맞추고 탐색하면서 관객 맞춤형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미쓰잭슨 제공
세 작품은 모두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긴장을 풀 수 없다. <심청>의 경우 원작을 파괴해 상처받았다는 관객 리뷰가 다수이고, <슬립노모어> 역시 코앞에서 보는 폭력적인 장면들과 배우들의 전라 노출을 훔쳐보는 설정이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다. 8명 무용수가 전라로 인류의 폭력성을 표현한 <핑크> 역시 마찬가지다. <슬립노모어> 한국 협력사인 미쓰잭슨의 박주영 대표는 필자와 서면 인터뷰에서 “일반적인 연극에서는 편집된 장면만 볼 수 있다면 <슬립노모어>에서는 장면에서 장면으로 전환되는 과정도 볼 수 있다. 인간의 본능, 탐욕과 잔인함을 다룬 원작 <맥베스>의 주제를 생생하게 연출하고자 노출 장면도 등장하는데, 이 또한 <슬립노모어>만의 특징이다. 뉴욕과 상하이 공연의 탄탄한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안전관리는 철저히 이뤄지고 있다”며 모든 퍼포먼스는 작품을 확장하고 해석하는 관객참여로 완성되며 불편함 또한 작품의 일부임을 강조했다.
이들 작품은 원작을 온전히 해체하고 연출가와 창작진들이 재해석한 시선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레지테아터(연출가 중심의 극)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또한 세 작품 모두 객석을 퍼포먼스 공간으로 활용하거나 관객의 중도 퇴장도 극의 일부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확장된 이머시브 씨어터라 할 수 있다. 관객의 경험과 해석에 따라 다르게 수용되는, 모든 경계를 해체한 작품들이기도 하다. <심청>과 <핑크>는 막을 내렸고, <슬립노모어>는 오픈런 공연으로 폐막 일정은 미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