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인 2021년 10월 TV 토론회에 나온 가운데 손바닥 한가운데에 ‘왕(王)’ 자를 그려놓은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연합뉴스
지금 한국을 보면 종교적 대혼돈의 시기가 열린 것 같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건 몇 가지를 나열해 보자. 김건희 주변에는 이른바 무속인들이 항상 들러붙어 있었다. 지금 밝혀지고 있는 사실들에 비하면, 윤석열이 손바닥에 ‘왕(王)’ 자를 적어 놓았던 사건은 웃고 넘길 수준이다. 천공이나 건진법사같이 민망하고 유치한 이름들이 옛 권력의 핵심에서 흘러나온다. 심지어 쿠데타를 기획한 것도 전진 군인이자 현직 무속인 노상원이다. 최근에는 통일교가 김건희와 권성동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수사를 받는 중이다. 심지어 통일교는 트럼프와도 관련을 맺고 있다. 이들이 벌인 사건은 심각하지만, 자세히 볼수록 블랙 코미디에 가까워서 실소를 참을 수 없다.
내란 세력이 정치와 종교의 기이한 유착 관계를 보여준다면, 더불어민주당 쪽에서는 좀더 전통적이고 익숙한 유착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김민석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 그와 개신교의 관계가 논란거리였다. 그는 자신을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민주주의자”라고 소개한 바 있다. 지난 5월에는 민주당 의원들이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방문해서 차별금지법 추진 계획이 없음을 밝히기도 했다. 전광훈 같은 극우 개신교 인물들이 워낙 야단법석을 떨다 보니, 민주당과 개신교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다. 하지만 이쪽도 정교분리의 원칙 따위는 간단히 무시한다.
한국사회의 어두운 구석에서는 종교 집단에 의한 끔찍한 폭력이 계속된다. 정명석과 그 일당은 수십 년간 조직적인 성범죄를 저질렀다. 사이비 종교에 빠져 가정 파탄에 이르렀다는 사람의 소문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적지 않은 시민이 이런 식의 고통을 당해왔지만, 한국의 국가 제도가 여기에 개입한 적은 없다. ‘용감한 언론인’의 탐사 보도가 가끔 이런 어두운 영역을 다룰 뿐이다.
한국의 종교
한국의 종교는 분명 독특하다.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가 종교를 가지고 있는데 개신교, 천주교, 불교가 삼자 구도를 형성한다. 미국은 개신교, 프랑스는 가톨릭이 다수이고, 일본에서는 신사에 가는 것이 문화생활의 한 부분이다. 한국에는 다수 종교라고 불릴 만한 것이 없다. 겉으로만 봐서는 이 사회가 주로 어떤 종교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판단하기 힘들다. 개신교인의 비율이 가장 높고, 여기저기서 시뻘건 십자가와 ‘예수천국 불신지옥’ 따위의 문구를 볼 수 있지만, 이 종교가 사회에 일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말하기는 또 어렵다.
한국이 세계에 수출하는 문화는 K팝과 K드라마뿐이 아니다. 한국 종교는 꽤 오래전부터 세계로 진출해왔다. 통일교 분파는 세계 곳곳에서 믿기 힘든 기괴한 장면을 연출해왔고, 최근에는 신천지가 프랑스에 진출해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서울 용산구 통일교 서울본부 로비에 걸려 있는 한학자 통일교 총재와 고 문선명 총재의 사진(왼쪽 사진). 오른쪽은 경기 가평군 통일교 본원의 모습 / 성동훈·정효진 기자
한국의 무속은 종교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사회 일반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심지어 예능 방송의 단골 소재로도 쓰인다. 무속이라는 개념 자체가 문제적이다. 김건희 주변 인물들을 보면, 흔히 상상하는 무속인의 모습, 예컨대 전통 복장을 차려입고 굿하는 무당의 모습과 상당히 다르다. 이들을 샤먼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인류학이 다루는 원주민 사회의 샤먼이란 자기 공동체와 초자연적인 힘 사이에서,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현대 한국의 무속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정의 불가능’이나 ‘무정형’ 같은 말일 것이다. 그것은 전통 종교라 하기도, 신흥 종교라 하기도 어렵다. 심지어 종교라고 불릴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물론 ‘종교’ 개념 자체에 대한 질문도 필요하다). 그것은 사유와 언어의 규칙을 파괴해서, 아무 생각이나 아무 말을 해도 상관없는 비이성의 공간을 여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무속인이 권력 집단의 조언자 그룹을 구성했다는 것이고, 한국의 유권자는 이들에게 국가 권력을 맡겼다는 것이다.
정교분리란 무엇인가?
한국의 종교가 본래의 가르침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비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이는 국가와 정치 공동체가 신경 쓸 것이 아니다. 시민들이 논의해야 할 문제는 종교 그 자체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어떤 원칙에 따라 종교를 다루어야 하는지다. 그 원칙은 이미 헌법 제20조에 규정돼 있다.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근대 민주주의는 예외 없이 이러한 정교분리 원칙에 기초한다. 예를 들어, 어떤 종교 세력이 동성애를 ‘죄’로 규정한다면, 이는 내부의 교리 문제이고, 국가 권력이 개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공적 공간에서 차별적 발언이나 행위를 하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정치인이 자신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 역시 헌법 원칙을 부정하는 행위다.
물론 구체적 수준으로 들어가면, 미묘한 문제들이 있다. 무엇보다 모든 인간은 사적 존재인 동시에 정치 공동체의 시민이기도 하다. 정교분리 원칙에 따르면, 동일한 사람이 사적 공간에서는 종교인이 되고, 정치 공간에서는 종교와 단절된 시민이 돼야 한다. 그런데 정치인이 직무를 수행할 때, 자기 신앙을 완전히 배제하고, 자신의 정치이념과 민주주의적 가치만을 따르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이런 분리의 완전한 실현이 어렵다 해도, 나름의 기준을 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조건이다.
정교분리는 간단히 답하기 어려운 실천적 문제들을 제기한다. 종교 단체가 국가의 지원을 받아 교육이나 돌봄 기관을 운영하는 일은 전 세계적으로 흔한데, 종교적 중립을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가? 공적 업무를 맡은 사람이 근무 시간에 자신의 종교를 드러낸 복장을 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다양할 수밖에 없고, 이로부터 여러 개의 ‘정교분리 모델’이 나온다. 프랑스는 공식적으로 미국 모델(secularism)과 프랑스 모델(laïcité)을 대비시킨다. 전자는 국가로부터 종교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핵심이고, 후자는 종교가 국가 조직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은 모델이 없다는 점인데, 정교분리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이 그 결과다. 종교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데, 이를 정교분리의 문제로 접근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종교와 정치 사이의 미묘한 경계선을 어떻게 설정할지는 공적 논의의 대상조차 된 적이 없다. 정말로 ‘내란 세력 척결’을 완수하고 싶다면, 이 문제부터 고심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