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몰락한 ‘세계 자동차의 수도’ 디트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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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몰락한 ‘세계 자동차의 수도’ 디트로이트

입력 2025.08.08 14:30

수정 2025.08.08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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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디트로이트의 버려진 공장들 / 손호철 제공

디트로이트의 버려진 공장들 / 손호철 제공

‘세계 자동차의 수도.’ 미국 오대호 중 하나인 이리호 근처에 자리 잡은 디트로이트에 따라다니던 별명이다. 나는 자동차를 몰고 ‘세계 자동차의 수도’를 향하고 있다. 나의 차는 로스앤젤레스공항에서 빌린 한국산 자동차다. 왜 디트로이트가 몰락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다. 몇 년 전 울산대교 위에서 현대차로부터 현대중공업에 이르는 울산공장 지대의 전경을 내려다본 적이 있다. 디트로이트의 몰락은 ‘한국 자동차의 수도’ 울산 성장의 뒷면이다.

디트로이트가 세계 자동차의 수도가 된 것은 헨리 포드가 1904년 자동차 공장을 이 도시에 건설하면서다. ‘미국 역사유적’으로 지정된 포드 피켓 공장을 향하는 길에는 디트로이트의 몰락을 보여주는 버려진 공장이 즐비했다. 포드는 피켓에서 ‘자동차 시대’의 시작을 알린 전설적인 ‘모델 T’를 제조했다. 공장에 들어서자 모델 T를 비롯해 다양한 포드 초기모델이 나를 맞았다. 이외에도 ‘초기 포드주의’라고 볼 수 있는 자동차 조립 과정 사진, 노동자 사진 등 중요한 자료가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 특히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커다란 시계와 시계 밑에 붙어 있는 현금계산기 같은 작은 기계, 그리고 이제 많은 공장에서 볼 수 있는 출근부였다. 설명을 읽어보니 작은 기계는 IBM의 전신인 ITR이 만든 것으로, 출근부를 넣으면 출퇴근 시간이 찍히는 장치였다. ‘현대적 노동 통제’의 흔적이다.

포드자동차가 도입한 세계 최초의 자동 출근 체크 기계 / 손호철 제공

포드자동차가 도입한 세계 최초의 자동 출근 체크 기계 / 손호철 제공

포드 공장은 자동차 산업을 넘어서 현대자본주의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대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효시’로 이제는 우파들도 사용하는 ‘시민사회’와 ‘헤게모니’라는 용어를 만든 이탈리아 공산당수 안토니오 그람시가 무솔리니 치하에서 감옥에 갇혀서도 주목한 것이 바로 ‘포드주의’였다. 초기 자본주의는 장시간 저임금에 기초한 ‘유혈의 테일러주의’에 의존했다. 1920~1930년대 대공황이 보여주듯이, 이 ‘과잉 착취’는 노동자 등의 구매력 부족으로 판매 부진, 불경기, 공황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는 데 기여한 것이 포드주의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 모델 T를 만든 디트로이트 피켓 공장 / 손호철 제공

헨리 포드가 자동차 모델 T를 만든 디트로이트 피켓 공장 / 손호철 제공

‘포드주의’ 성공 업고 급부상한 디트로이트

포드는 장인들이 자동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조립설비를 만들어 한 사람이 엔진을 설치하면 다음 사람은 타이어를, 또 다른 사람은 문짝을 설치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는 생산성을 엄청나게 높여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대량생산으로 자동차 가격은 싸지고 이윤은 늘어났다. 생산성이 높아진 만큼 높은 임금을 주는 것도 가능해졌다. 높은 임금을 받은 노동자들은 자동차를 살 수 있게 됐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연결한 포드주의와 ‘자가용 타는 노동자’가 탄생한 것이다. ‘노동자의 이익은 자본가의 손실’이었던 ‘제로섬(zero-sum)’의 적대적 노사관계가 노동자와 자본가가 공생하는 협조적 노사관계로 변화했다. 노동자에게도 처음으로 투표권을 줄 수 있게 됐다. 노동자들이 체제 내에 포섭됨으로써 이들의 투표가 더 이상 체제의 큰 위협이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피켓 공장의 초기 포드주의가 큰 성공을 거두자 포드는 가까운 하이랜드 파크에 세계 최초의 이동식 조립라인을 건설했다. 지엠(GM), 크라이슬러도 디트로이트에 공장을 지으면서 디트로이트는 미국 자동차의 수도, 아니 ‘세계 자동차의 수도’로 발전했다. 1950년 세계 자동차 생산은 1060만대였는데, 이중 80%인 800만대가 미국, 특히 디트로이트에서 생산됐다.

‘달도 차면 기우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미국 자동차 산업과 디트로이트가 1970년대 들어 몰락하기 시작한 것은 두 가지가 기폭제가 됐다. 첫째 1960년대 부동산 붐이다. 디트로이트 집값이 폭등하면서 사람들이 집값이 싼 시외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특히 디트로이트의 인종주의는 1967년 아프리카계의 대규모 폭동으로 이어졌고, 이에 놀란 백인들의 탈출이 시작됐다. 자동차 산업도 백인들과 함께 떠나기 시작했다.

미국 역사유적인 이 공장에는 이곳에서 제조했던 포드자동차의 초기 모델들을 전시해 놓았다. 손호철 제공

미국 역사유적인 이 공장에는 이곳에서 제조했던 포드자동차의 초기 모델들을 전시해 놓았다. 손호철 제공

자동차 자본은 노조와 진보 세력의 입김이 강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노조에 가입해야 하는 ‘유니언숍’ 제도가 일반화돼 있는 디트로이트로부터 주법으로 노조 요구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임금이 싼 남부의 선벨트(Sunbelt)로 공장을 옮겼다. 포드와 지엠의 본부는 아직 디트로이트에 남아 있지만, 주공장은 각각 캔자스시티와 테네시주 스프링힐스로 옮긴 지 오래다. 그 결과 자동차노동조합원이 1970년대의 150만명에서 30만명으로 격감했다. 노동과 자본의 포드주의적 타협이 깨지고, 비정규직 등 노동의 유연성을 높인 ‘포스트 포드주의’가 도래한 것이다.

두 번째로 1970년대 오일쇼크다. 오일쇼크는 에너지 효율성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던 미국 자동차 산업에 큰 타격을 줬다. 대신 에너지 효율성이 뛰어난 일본 자동차 등 수입차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외국 자동차가 미국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미국 자동차 산업은 위기에 처했다. 크라이슬러는 결국 이탈리아와 프랑스 합작회사에 합병되고 말았다.

포드주의에 의한 대량생산 체제를 보여주는 사진이 공장에 전시돼 있다. 손호철 제공

포드주의에 의한 대량생산 체제를 보여주는 사진이 공장에 전시돼 있다. 손호철 제공

자본주의가 있는 한, 노동운동 임무는 미완성

디트로이트는 더 이상 세계 자동차의 수도가 아닐 뿐 아니라 미국도 이제 세계 제일의 자동차 생산국이 아니다. 2023년 세계 총자동차생산은 9300만대로, 그중 중국이 3000만대를 생산한다. 미국은 중국의 3분의 1인 1000만대, 일본 900만대, 인도 600만대, 한국 420만대의 순이다.

자동차 산업의 몰락으로 1950년대에 200만명까지 늘어났던 디트로이트의 인구는 2020년에는 7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실업률 역시 주요 도시 중 최고 수준인 16%를 기록하고 있다. 인종 구성도 쏠림이 심했다. 2020년 시 인구 중 백인은 9.5%에 불과하고 아프리카계가 78%, 히스패닉계가 7.9%를 차지했다. 대학 졸업생은 전국 평균(30%)의 절반도 안 되는 13%에 불과한 반면, 빈곤가정은 전국 평균(15%)의 2배가 넘는 40%에 달한다. 디트로이트는 한마디로 ‘가난한 아프리카계의 도시’로 변했다. 디트로이트시는 결국 2013년 파산하고 말았다.

1930년대 세계 최초로 조립라인을 도입해 본격적으로 포드주의를 전면화한 포드의 루지 공장 / 손호철 제공

1930년대 세계 최초로 조립라인을 도입해 본격적으로 포드주의를 전면화한 포드의 루지 공장 / 손호철 제공

우울한 마음으로 디트로이트의 중심가를 지나가는데 높이 20m의 거대한 원과 여러개의 기념석이 나타났다. 미국 자동차노조가 미국의 발전에 기여한 노동자들과 노동운동에 바친 기념물이다. 기념석에는 다양한 노동자들과 노동운동이 그려져 있다. 거대한 원은 노동기념물로는 특이한 ‘초월’이란 이름이 붙은 작품으로, 원의 가운데가 이어지지 않고 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노동운동의 임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자본주의가 있는 한, 노동운동의 임무는 끝날 수 없다.

공장들은 대부분 남부와 외국으로 이전했지만, 아직 지엠 본사는 디트로이트에 남아 있다. 손호철 제공

공장들은 대부분 남부와 외국으로 이전했지만, 아직 지엠 본사는 디트로이트에 남아 있다. 손호철 제공

미국 사회 발전에 기여한 노동자와 노동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디트로이트 중심부에 건설한 초대형 조각. 손호철 제공

미국 사회 발전에 기여한 노동자와 노동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디트로이트 중심부에 건설한 초대형 조각. 손호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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