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너는 어찌 그리 사람 보는 눈이 없느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아내를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1986년에도 그랬다. 쌀쌀맞은 표정과 깍쟁이 같은 서울 말씨. ‘이 사람은 아니다’ 싶었다. 그런 판단은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장모님도 나를 ‘날라리’로 판정했다. 나와 처가의 사람 보는 안목으로는 애당초 맺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그런 아내와 36년째 살고 있다. 연애 기간까지 합하면 무려 40년이다.
이런 기억을 떠올린 건 한 예능 프로그램 때문이다. 어느 유명 여자 가수가 예능 프로에서 남자친구를 공개하자 댓글 창에 비난이 쏟아졌다. ‘저 친구는 나이가 몇인데 사람 보는 눈이 저래?’, ‘지금이라도 헤어져야 해’, ‘저 남자는 아닌 것 같다.’ 용기를 내 남자친구를 공개한 그를 응원하기는커녕 사람들은 낯선 남자친구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각자의 기준으로 마음껏 재단하고 평가했다.
우리는 정말 사람을 잘 보고 있는 걸까?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심리학자 알렉스 토드로프(Alex Todorov)는 2006년 실험을 통해 사람이 낯선 얼굴을 보고 신뢰성, 능력 등을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0.1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 점에서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우리는 ‘첫인상’을 빠르게 형성하고, 그 인상이 이후 판단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런 직감은 정확한 정보나 맥락 없이 이뤄지기에 잘못 판단할 가능성도 높다. 맞선을 보거나 면접할 때 모두 마찬가지다.
나 역시 면접할 땐 면접을 받는 사람이 말을 꺼내기 전에, 그의 표정과 눈빛, 면접장에 들어올 때 태도와 앉는 자세를 보고 얼추 마음의 결정을 한다. 그의 말을 듣는 건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입증하는 시간이다. 내 머릿속은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러면 그렇지’, ‘어디 감히 나를 속이려고 해?’를 연발한다.
나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상대에 대한 생각이 3단계로 변한다. 1단계는 상대를 경계한다. 이 단계에서 썩 마음에 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 2단계는 상대를 이해한다. 알고 나서 나쁜 사람은 없다. 처음에 안 좋게 봤던 것들도 그럴 만한 이유와 배경이 있다. 끝으로, 깊게 사귀어서 진짜 좋은 사람도 드물다. 오래 사귈수록 상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결점도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 한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있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다. 그 자신이 좋은 사람이거나.
사람 보는 눈이 개인에 한정될 때는 그나마 다행이다. 안목 없는 자신을 자책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사람 보는 안목이 공적인 일에 적용되는 건 다른 문제다. 사람 보는 눈에 의해 인사(人事)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인사가 만사다. 모든 일은 사람을 얼마나 잘 쓰느냐에 달려 있다. 같은 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도 어떤 일을 맡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사를 할 때, 그 사람이 이전에 썼던 글과 했던 말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 사람의 현재도 중요하지만, 과거 그 사람의 말과 글이 곧 그 사람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에게 발탁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자신을 아무리 잘 꾸며도 소용없다. 그동안 잘 살아왔어야 한다. 이런 역사는 되돌릴 수도 없다.
우리는 누군가를 평가할 때 외모, 이력, 직업, 평판 등 겉으로 드러난 정보에 기대기 쉽다.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나 미디어를 통해 편집된 모습만 보고 상대를 안다고 착각한다. 짧은 만남 몇 번에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사람 보는 눈은 그보다 훨씬 깊은 감각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의 질을 결정한다. 좋은 사람과 함께하면 나도 좋아지고, 나쁜 사람과 함께하면 나도 나빠진다. 그런 점에서 사람 보는 눈은 곧 살아가는 기술이며, 살아남는 지혜다.
환갑을 훌쩍 넘고 보니, 누군가를 만나면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 이 사람과 유사한 사람을 불러오고, 그 사람과의 말로가 어땠는지 떠올려본다. 하지만 이런 통계적 접근 방식은 적중 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 고정관념과 편견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면 일단 판단을 유보한다. KBS 라디오에서 <강원국의 지금 이 사람>을 진행할 때도 그랬다. 백지상태에서 그 사람을 유심히 관찰한다. 이런 관찰을 통해 그 사람의 내면과 상처, 성장 가능성까지 보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을 볼 때 무엇을 관찰해야 할까?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신호는 두 가지다. 그 하나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가. 다른 하나는 불리한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작은 약속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은 큰 약속도 가볍게 어긴다. 약속을 어겨 불리한 상황이 됐을 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지, 아니면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지도 중요하다. 말의 앞뒤가 다르거나, 상황에 따라 주장이 바뀌는 사람은 결국 신뢰를 잃는다.
또 하나 주의 깊게 봐야 할 점은 타인의 성공을 대하는 태도다. 친구가 승진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하는가, 아니면 ‘운이 좋았지’라며 깎아내리는가. 그 반응에는 그 사람의 그릇이 담겨 있다.
이해관계가 걸렸을 때나 돈 앞에서도 본성이 드러난다. 더치페이할 때 적게 내려는 사람, 도움을 요청할 때 모른 척하는 사람, 이익이 없으면 무심해지는 사람은 관계에서도 자신만을 챙긴다.
밥상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함께 밥을 먹는 자리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본질적인 공간이다. 불편하거나 눈치가 보이는 사람과는 인생을 함께하기 어렵다. 밥 앞에서는 진심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결국 함께 밥을 편히 먹을 수 있는 사람이 함께 인생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을 잘 본다는 건 상대를 꿰뚫는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잘 아는 능력, 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무너지는지, 어떤 말에 흔들리는지, 내 기준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자기에게 맞는 사람을 고를 수 있다. 따라서 사람 보는 눈은, 나에게 ‘필요한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더불어 지내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은 있다. 사람은 변한다. 지금은 부족해 보여도 변화할 수 있고, 지금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변할 수 있다. 한 방향을 보고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면 족하다.
좋은 관계는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함께 성장하려는 의지 위에 놓인다. 아내와 나는 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아내와 나 모두 직장에 다니던 시절보다 지금 더 죽이 잘 맞는다. 오래 살아볼 일이다. 그 여가수의 선택이 옳았는지도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우리가 할일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의 눈을 조금씩 더 맑게 다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