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안규백 신임 국방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상부 지시에 따랐을 뿐이다.” 12·3 내란 사태에 동원된 대다수 군 간부의 강변이다. 많은 예비역도 여기에 동조한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게 군인의 자세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군대에서 복종은 충성의 한 형태다. 군은 명령과 복종 위에 존재하고, 질서가 없으면 부여받은 사명을 완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성이 죄가 되는 경우가 있다. 관타나모 미군기지에서 일어난 한 병사의 죽음과 이에 얽힌 진실을 밝히는 영화 <어 퓨 굿 맨>의 한 장면을 보자. “우리가 뭘 잘못했습니까? 우린 잘못이 없습니다.” 군사법원에서 산티아고 이병의 죽음에 대해 두 명의 해병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자 그중 한 명인 로든 다우니 이병이 하는 말이다. 자신은 명령에 따랐을 뿐인데 유죄 판결이 내려진 것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우니 이병에게 상관의 명령에 따른 충성은 죄였다. 상관의 명령이 정의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명령을 따른 복종은 면죄부가 아니었다. 12·3 불법 계엄으로 벌어진 내란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부의 명령을 따른 것이 면죄부가 될 수 없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명령은 헌법을 파괴한 불법 지시였기 때문이다.
■별은 헌법 수호의 대가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28일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국민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불법 부당한 지시에 소극적으로 임했던 간부들에 대한 특진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정청래·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대령) 등을 거론하며 비상계엄 실행을 막는 데 기여한 장병에게 포상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를 놓고 ‘불법 부당한 명령을 거부했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한 간부들에 대한 특진’을 강조하는 언론 보도는 자칫 군의 위계질서와 연계시켜 국민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대신 헌법을 파괴한 내란 세력으로부터 ‘헌법을 수호한 공로에 대한 특별진급’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헌법은 군인들이 충성해야 하는 첫 번째 대상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인 지난해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도착한 군인들이 국회 직원 등과 대치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국방부는 ‘12·3 비상계엄’ 때 헌법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한 장병들이 특별진급할 수 있도록 ‘군인사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다. 새로운 시행령에서는 평시 공적으로도 특별진급이 가능한 최고 계급을 중령에서 대령으로 상향 조정해 대령이 장군(준장)으로 특별진급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번에 입법 예고된 시행령에서는 ▲적과 교전하거나 귀순자 유도 작전 등 현행 작전 수행 간 큰 공을 세운 사람 ▲천재지변이나 재난 발생 시 인명을 구조하거나 재산을 보호한 공이 특별히 현저한 사람 ▲기타 직무수행능력이 탁월하고 군에 큰 공헌을 한 사람 등으로 특진 요건을 확대했다. 이에 따라 비상계엄 때 위법·부당한 지시의 거부나 소극적 대응으로 헌법을 지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기여한 장병에 대한 1계급 특진도 가능해졌다.
국방부 감사관실은 헌법 수호를 위해 비상계엄 당시 위법 또는 부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은 장병을 포상하기 위해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국방부는 감사관실의 조사 결과를 진급에도 반영하기 위해 진행 중이던 영관급 장교 진급 심사도 미룬 상태다.
이번 내란 사태에서는 동원된 부대 지휘관 못지않게 공과를 구분해 신상필벌의 대상이 돼야 하는 군 간부들이 있다. 육군본부와 예하 사령부, 군단, 사단급 부대의 법무참모들이다. 이들은 비상계엄령이 헌법을 벗어난 불법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법률 전문가들이다. 그런 만큼 비상계엄령이 불법임을 지휘관에 보고하고 부대 출동 등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는 군 간부들이다. 지휘관에게 법률 조언을 제대로 한 법무참모에는 포상을, 지휘관의 불법 명령을 맹목적으로 따른 법무참모에는 징계가 따라야 한다.
■신상필벌의 공정성
문제는 섣부른 ‘신상필벌’은 군내 갈등을 조장할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 지시 이후 너도나도 상부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고 나서는 군 간부가 많아졌다. 포상 대상을 놓고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12·3 불법 계엄 당시 수도방위사령부가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 헬기의 ‘R75 비행제한구역’ 비행 승인을 3차례 보류해 국회 출동을 40여분간 지체시킨 공로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군검찰에 따르면, 707특임단 96명을 태운 특전사 헬기는 수방사에 긴급 비행 허가를 요청했다. 요청을 전달받은 김문상 전 수방사 작전처장은 특전사 헬기의 진입 승인을 보류해야 한다고 지휘통제실에서 함께 상황을 지켜보던 조백인 수방사 참모장에게 건의했다. 조 참모장은 “계엄사령부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라”라고 지시했다. 그가 김 작전처장의 건의를 무시하고 특전사 헬기의 비행을 승인했다면 내란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렇듯 12·3 불법 계엄은 누구 한 명의 영웅적 행위로 무산된 게 아니다. 관련 장병들의 개별적 판단과 절차에 따른 행동이 모여져서 헌법이 지켜졌다. 이런 점 등을 감안하면 특정인에 대한 영웅 만들기는 자칫 포상에서 소외된 이들의 서운함과 반발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군 내부에서는 신상필벌을 공정히 하고 뒷말을 없도록 하기 위해선 계엄군으로 동원됐던 부대들의 작전상황 일지를 정밀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특정 부대 지휘관이 자신의 행적을 유리하게 하도록 BL탄(비상상황에서 장병 개인에게 지급하는 탄약) 불출 상황을 두 차례 조작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계엄령에 동원된 한 대대급 부대의 경우에는 12·3 비상계엄 당시 부대원들이 정상 퇴근하지 않고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자 바로 출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분도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현재 국방부는 장병 포상을 위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이것이 만약 추후에 발표될 내란특검의 수사 결과와 충돌할 경우 문제가 된다. 그런 만큼 검증작업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치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군은 일부 보수언론의 영웅 만들기 과장 보도에 편승해 ‘가짜 지뢰 영웅’을 만들었던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한편 헌법 수호 장병 포상 대상이 비상계엄 당시 출동했던 수도권 육군 부대에 국한되면서 해군, 공군, 최전방 부대, 후방 부대에서는 “포상·진급 기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이는 타당하지 않다. 대간첩 작전에서 출동한 부대에만 포상한다고 불평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