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갑질 무관용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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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갑질 무관용 시대

입력 2025.07.25 14:14

수정 2025.07.2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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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용현 한계단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A동 2001호, 내일 아침 밖에 있는 거 분리 배출해주세요”, “강아지 샴푸가 필요한데 떨어졌으니 사서 집으로 오세요”, “(대표 딸이 주말에) 마트에 장 볼 것 있으니 빨리 오세요”, “(딸의 차를 닦으라고 하면서) 차 유리가 너무 지저분해요, 안팎으로”, “(큰 소리로) 마트에서 사진 속 검은콩 소스 물품도 못 찾나요?”, “(대표 딸이) 병원에 데려다주세요.”

“오늘도 따님 병원에 모셔다드려야 합니까?”

“어차피 우리 회사 차 운전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건 회사 업무가 아니지 않습니까.”

“직원이 아니라 하인 취급… 반복된 사적 지시에 회사도 2000만원 배상 책임.”

한 운전기사가 피고 회사에 ‘총무부 운전기사’로 입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회사 업무보다는 대표이사와 그 가족을 위한 심부름에 대부분 시간을 할애해야 했습니다. 특히 대표이사의 성인 딸까지 그를 불러 운전을 시키고, 장을 보게 하며, 병원 마중도 시켰습니다. 쓰레기 분리 배출과 반려견 용품 구매까지 시켰습니다. 사적 지시는 2년간 총 91회나 반복됐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3년 7월 21일, 대표이사와 회사가 연대해 위자료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2021가단5350904·항소기각 확정). “대표이사로서의 지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한 범위를 넘어 원고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킨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고, 이러한 직장 내 괴롭힘 행위는 근로자인 원고의 기본적인 인격권을 침해한 것으로서 민사상 불법행위책임을 구성한다. 이로 인해 원고가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은 경험칙상 명백하다”, “주식회사인 피고 C는 상법 제389조 제3항, 제210조에 의하여, 그 대표이사인 피고 B는 민법 제750조 또는 상법 제389조 제3항, 제210조에 의하여 연대해 원고에게 정신적 손해의 배상으로서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즉 회사 지위와 고용 관계를 이용해 수행 기사에게 반복적인 사적 업무를 시켰고, 가족까지 수행 기사를 부리게 한 행위는 명백한 위법이라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회사(법인)와 대표이사 개인은 연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됐습니다.

피고 측은 “근로계약 당시, 면접 때 개인적인 용무도 업무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피고 측이 제출한 ‘면접자료’에 전임자들은 서명했지만, 원고는 서명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오히려 사적 심부름에 대한 동의가 없었다는 정황으로 본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수행 기사와 대표 간의 갈등을 넘어 기업 내 위계와 가족 중심 갑질의 민낯을 보여주는 판례입니다. 대표이사의 가족까지 근로자를 ‘집안사람처럼’ 부리게 하는 문화는 그 자체로 직장 내 괴롭힘이며 불법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회사와 대표 모두 책임을 지는 이 판결을 비롯해 ‘사적 지시’에 대한 징계가 유효하다는 판결도 있습니다(성남지원 2022가합404207). 상급자의 사적 요구가 더는 묵인되기 어려운 시대가 왔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공인 갑질 무관용 시대

새 정부의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로 지명됐던 강선우 의원이 결국 고개를 떨궜습니다. 보좌진에게 부당한 사적 지시 등을 했다는 이른바 ‘갑질’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현직 국회의원으로서는 처음으로 장관 후보직에서 사퇴하는 불명예를 안은 것입니다. 실제 여론조사에서 국민 60% 이상이 강 의원 임명이 부적절하다고 답해 반대 의견을 보였습니다.

의혹은 대표적으로, 의원 본인 또는 가족의 주거지에서 발생한 음식물쓰레기 처리를 지시하거나, 자택의 비데 고장을 수리하라고 요구하는 등 생활 편의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자녀의 병원 방문 시 보좌진이 대리로 동행하거나, 장을 보거나 반찬을 받아 의원 자택으로 전달하는 등 가사에 가까운 사적 지시도 이어졌다고 알려졌습니다. 그 외에도 의원 차량의 주차와 세차를 맡기거나, 공식 일정과 무관한 개인 심부름을 근무시간 중에 우선해 지시했다는 사례도 제기됐습니다. 이러한 지시는 모두 국회의원 보좌진의 직무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반복적이고 일상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단순한 일회성 요청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적 지시 관행’이었다는 비판이 뒤따랐습니다. 특히 회의록 정리 등 국회 업무를 미루고 개인용 물품 수령이나 심부름을 우선시하라는 식의 지시는 공적 자원의 사적 남용이며, 직장 내 괴롭힘의 성격도 지닌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강 의원은 일부 지시가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해명했으나, 관련 문자 메시지와 내부 증언 등이 공개되며 여론의 비판이 거세졌고, 결국 장관 후보직에서 사퇴했습니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가 공인의 갑질 의혹에 대한 냉혹한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입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우월적 지위를 가진 사람의 무례한 행동을 두고 특별히 ‘갑질’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습니다.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폭언하거나, 손님이 종업원을 함부로 대하는 장면도 ‘원래 저런 것’이라며 참아 넘기는 일이 많았습니다. 특히 의원님이라면 어지간한 행위는 용인될 수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현역 의원 불패 신화’가 유지된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소한 언행일지라도 상대의 인격을 침해하는 행위는 곧바로 ‘갑질’로 규정되는 시대입니다. 최근 정부 조사에서도 “과거에는 갑질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최근에는 갑질이라고 여기게 됐다”고 답한 이가 56.4%에 달해 국민 인식이 크게 달라졌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갑질 퀀텀 점프(Quantum Jump)

공인, 기업인, 재벌가 일원, 고위 공직자, 연예인의 갑질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사회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고, 빠른 시간 안에 평판 리스크로 확산합니다. ‘라면상무’ 사건(2013), ‘땅콩회항’ 사건(2014)이 잇따르면서 사회는 ‘갑질’이라는 용어를 일상어로 채택하게 했습니다. 박찬주 전 육군 대장 부부의 노예 공관병 갑질 사건(2016)도 군 인권 문제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원들에게 무릎 꿇리기, 뺨과 머리 가격, 생닭 도살 강요, 휴대전화 사찰 등 엽기적이고 반복적인 폭언·폭행과 인격 모독 행위도 2018년 공개됐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2019) 및 공공·민간에서의 갑질 예방 제도가 강화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충격적인 사건들은 결국 입법과 정책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최근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사건(2024) 이후 프리랜서 등 ‘노무 제공자’까지 직장 내 괴롭힘 보호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를 위해 근로기준법 개정 또는 별도의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단행법(특별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6주년을 맞은 2025년 7월, 갑질 제도 퀀텀 점프(Quantum Jump·비약적 도약)가 필요합니다.

이번 낙마 사건은 공적 자원의 사적 남용과 공인의 도덕성 및 책임 의식에 대한 높아진 국민적 기대를 반영했습니다. 공직사회 내 공사 구분 확립과 권력형 갑질에 대한 원칙의 필요성, 직무 범위 명확화, 사적 지시 금지 규정의 강화가 시급합니다. 또 고위직·공직자에 대한 갑질 방지 특별 교육 의무화도 필요합니다. 국회나 공공기관 내부에 독립적인 갑질 신고 및 조사 기구를 마련해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고,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강화해 2차 피해를 막는 것도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서두에 언급한 성남지원 판결문을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인 가족의 직속 인력처럼 봉사하도록 지시한 것은 근로자의 기본적인 인격권을 침해한 것으로서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을 구성하고,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은 경험칙상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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