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공무원’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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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공무원’의 기준

입력 2025.07.23 06:00

수정 2025.07.23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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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8월 22일 새 정부 첫 업무보고에서 “공직자는 국민과 함께 깨어 있는 존재가 돼야지, 그저 정권의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정권의 위법한 지시를 따라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정권의 지시가 위법한지 아닌지 그 기준은 누가, 어떻게 정할까. 맹점은 여기에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같은 경우는 비교적 법 위반임이 명료했다. 문화예술인을 정치적 성향에 따라 나누고 지원을 배제하는 것은 정책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공무원 조직에서 일반적인 상급자 지시가 위법한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책은 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하지만, 모든 사안이 다 법에 정해져 있지는 않다. 법 바깥에서 협의하고 토론해야 할 일도 많다. 어느 정부든 집권 초반 국정과제 추진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강한 정책 추진력과 위법이라는 잣대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이 모호한 기준을 이용한 게 검찰과 감사원이었다. 정부 정책의 방향을 시민이 아니라 검찰과 감사원이 심판하고 나섰다. 수사, 감사 과정에선 가치 판단과 위법의 영역, 관행과 당위가 뒤섞였다. 탈원전 정책을 겨냥해 수사를 벌인 검찰총장(윤석열 전 대통령)은 대선에, 감사를 한 감사원장(최재형 전 의원)은 대선 경선에 출마했으니 ‘정치 수사’, ‘정치 감사’ 의심은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 산업부 공무원은 박근혜 정부 땐 친원전 정책을 담당했다가, 문재인 정부 땐 탈원전 정책을 담당하게 됐다고 한다. 정반대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몇 번 직을 고사했지만, 결국 업무를 맡게 됐다. 탈원전이 국정과제였기 때문에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수원, 주민 등 이해관계가 민감하게 얽혀 있어 최대한 조심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결국 탈원전 정책은 형사법정 심판대에 올랐다. 산업부 안팎에선 ‘이제 아무도 원전 업무를 맡으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3일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문 전 대통령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이 대통령은 “(공무원에 대해) 영혼이 없다고 비난하면 안 된다”고 했다. 공무원이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대통령 지시를 따르는 것은 당연하고, 정권에 따라 공무원을 편 갈라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다 같이 가야 한다”고 했다. 정책 추진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수사, 감사를 받는 일은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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