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재벌개혁. 이 네 글자는 누군가에겐 생경하고, 누군가에겐 식상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박근혜·문재인 정부 때만 해도 정치권에서 늘 들려왔던 이 네 글자는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자취를 감췄다. 오히려 재벌은 개혁의 대상이 아닌 경제 성장의 필수 동반자로만 자리매김했다. ‘정경유착’이란 말이 한물간 용어가 된 것만 같이, 오히려 정·재계가 가깝게 보이기 위해 애를 쓰는 듯한 사진 구도도 여러 번 노출됐다. 대기업 총수들이 2023년 12월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윤 전 대통령과 함께 떡볶이를 시식하는 장면, 모두 기억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별다른 재벌개혁을 언급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강력히 추진하긴 했지만, 그 배경도 재벌의 지배구조를 뜯어고치겠다는 의도보다는 주식시장의 개미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이 컸다.
삼성생명 일탈 회계에 대한 지난 호 기사를 쓰기 전 스스로 여러 번 검열을 했다. 이 내용은 과연 시의성이 있는가, 기사화할 만한 화제성·영향성 등 가치가 있는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른 기사를 쓸 때보다 여러 번 스스로 질문하고 주저하고 있었다. 저 깊은 무의식 속에, 중국 반도체의 맹추격을 받는 국내 대표기업 삼성의 발목을 내가 붙잡는 건 않을지에 대한 우려가 자리 잡았을 수도 있다. ‘삼성’은 내게도 쉽지 않은 벽이었다.
하지만 불변의 진실은 삼성의 지배구조가 기형적이란 것이고, 그 기형적 구조 속에서 누군가는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이재용 회장이 고작 지분율 1.63%로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는 것도,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때문인데, 그 지배구조를 만든 건 유배당 보험 계약자의 돈이었다. 그리고 삼성은 유배당 보험 계약자들에게 성과의 이익을 나눠주지 않고 있다. 또 이들의 회계는 그런 사실을 가리고 있다.
기사는 나갔다. 삼성은 여러 경로를 통해 연락이 왔다. 기사 내용에 대한 해명을 위해서였다. 사진이나 제목을 서로가 합의되는 선에서 조정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여러 차례 겪다 보면 일반적인 다른 기사를 쓸 때와는 다른 피로감이 깊이 쌓인다. 그런데도 불변의 진실, 즉 일탈 회계와 기형적 지배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누군가는 재벌개혁을 말해야 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취재해야 할 것이다. 내게 기회가 다시 와도 나는 또 주저하겠지만, 결국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