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마이크. 게티이미지
“토미, 가만히 있어!” 무대에 오른 남성은 제멋대로 움직이는 ‘토미’를 타일렀다. 그가 말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토미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무대 위 주인공은 한기명씨. 토미는 그의 팔이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뇌병변 장애인이 된 그는 수년째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고 있다.
지난 6월 13일 금요일 밤, 서촌의 한 서점에서 열린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에서 그는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팔은 그에게 또 하나의 존재, 동료에 가까워 보였다. 그는 자신의 장애에 관해 말했고, 장애를 향한 편견을 비틀어 ‘농담’을 던졌으며, 장애로 말미암아 생긴 일화도 소개했다. 비장애인 중심 한국사회의 차별과 편견의 편린을 무대로 길어 올렸다. 유쾌하고 담담하게.
성 정체성이 여성인 한 트랜스젠더는 덩치가 있는 터라 화장실에 갈 때면 몸을 한껏 굽히고 간다고 이야기했다. 중성화한 반려동물에는 “나도 아직 못 했는데···”하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의 천연덕스러운 표정과 말재간에 관객석에선 웃음이 쏟아졌다. 이날 공연에서 코미디언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 성적 지향, 직업에 따라오는 사회적 고정관념 등을 코미디로 풀어냈다.
대부분 웃는 데서 끝날 이야기가 아니었다. 상당수의 트랜스젠더가 일상에서 화장실 이용 등 기초적인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이 때문에 질환이 생기기도 하는 현실이 떠올랐다. 트렌스젠더의 요건에 생식기관 수술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며, 건강 상태와 비용 등 이유로 수술하지 못하는 이가 적지 않다는 것도 재확인했다. 관객은 미처 몰랐던 세계를 서서히,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회에 의해 규정된 경계를 넘나드는 시간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솔직할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무대에서 펼쳐내기까지 자신을 미워하기도 하고 세상을 원망도 했다가 결국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 그리고 솔직함의 ‘선’에 대해선 사람들 간 무언의 합의가 형성돼 있는 듯했다. 이를테면 또 다른 이의 ‘약자성’을 희화화하지 않는 것과 같은 원칙 말이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은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울 때가 있다. 가급적 내 안의 좋은 것을, 세련되게 포장해 내놔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내 안에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경험을 어디까지, 어느 수준으로 풀어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남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북토크에서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원체 솔직한 터라 글을 쓸 때도 솔직하려 애쓰지 않았다는 그는 애초에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대답에는 공감이 갔다.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생각지 못하게 누군가는 응답을 해주더라고요. 그 응답을 통해 위로받고, 또 배우고요.”
그날 스탠드업 코미디 데뷔 무대를 치른 뮤지션이자 작가 요조는 과거 한기명씨를 인터뷰하며 얻은 영감으로 ‘Tommy’라는 제목의 노래를 만들었다. “네가 얼만큼 옳고 얼만큼 나쁜 인간인지 그건 나에게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닌 거야. 곧 없어질 석양을 보듯이 날 보지 마”(가사) 응답해줄 누군가가 있다면 조금 더 솔직해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