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vs AI 심판···스포츠 판정 시스템을 둘러싼 불신의 역설
AI가 오심은 줄였지만…그로 인해 잃어버린 ‘불완전의 매력’
아나스타시야 파블류첸코바가 지난 7월 6일 윔블던 테니스 여자단식에서 소나이 카르탈(영국)을 상대로 득점한 뒤 주먹을 쥐고 있다. 로이터
지난 7월 6일 윔블던 테니스 센터코트에서는 인간과 기술 사이에 흐르는 긴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발생했다. 소나이 카르탈(영국)이 친 백핸드 공이 라인을 벗어났고, 아나스타시야 파블류첸코바(러시아)는 아웃임을 확신했다. 주심도 그렇게 본 듯했고 TV 리플레이도 이와 비슷했다.
그런데 이때 전자 라인콜(ELC·Electronic Line Calling)은 반응이 없었다. 결국 주심은 재경기로 선언했다. 그 포인트에서 파블류첸코바는 실점했다. 경기는 파블류첸코바가 이겼지만, 그 순간 그는 “이번 게임을 도둑맞았다”고 주심에게 항의했다. 전자 라인콜이 작동하지 않은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더 인간적인 실수’였다. 누군가 실수로 라인콜 장치를 꺼버린 것이다. 이틀 후 남자 단식 8강전에서는 서브 ‘폴트’가 잘못 선언됐다. 심판은 전화로 문제를 확인하더니 “시스템 고장으로 마지막 포인트를 재경기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AI 심판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 논란 확산
이번 윔블던 대회는 148년 역사상 처음으로 ‘선심 없는’ 대회를 맞이했다. 전 코트에 전자 라인콜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선심제가 폐지됐다. 전 윔블던 챔피언 팻 캐시는 BBC를 통해 “전자 라인콜은 사람 눈보다 훨씬 정확하다”며 “완벽하지 않아도 전반적으로 선수들은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 라인콜은 스포츠 기술 전문 업체 ‘호크아이’가 개발했다. 코트마다 설치된 12개 카메라가 공의 위치와 선수의 발을 실시간으로 추적한다. 인공지능(AI)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인간 운영자 50여명이 시스템을 감독한다. 판정 결과는 녹음된 인간 목소리를 통해 관중에게 전달된다.
AI 기반 판정 시스템은 실제로 야구, 축구, 체조 등 여러 종목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미국 야구장 전광판에 ABS 시스템 판정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게티이미지
미국 야구에서는 볼·스트라이크 자동 판정 시스템(ABS·Automated Ball-Strike System)이 마이너리그와 스프링캠프에서 실험됐다. 카메라와 센서가 투구 궤적을 실시간으로 판단해 판정을 내리는 시스템으로, 이르면 2026년부터 메이저리그에도 도입되리라 전망된다. ABS는 판정 일관성 및 공정성 확보, 선수 불만 감소, 기술 발전 촉진, 중계 활용도 향상 등 장점이 있다. 동시에 인간 감각의 상실, 기술 오류 위험, 경직된 스트라이크 존, 경기 흐름 방해, 감정 몰입 저하 등 단점도 있다.
또한 포수와 투수 간 사인 교환을 자동화한 피치컴(PitchCom) 시스템도 사용되고 있다. 포수가 팔뚝에 찬 디바이스 버튼을 눌러 투수에게 신호를 보내고, 투수는 이어폰으로 포수가 원하는 구종과 구질을 전달받는다. 상대의 사인 훔치기 방지 효과, 경기 속도 조절 측면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피치컴은 앞으로 수비하는 팀 모든 야수에게 확장될 수도 있다.
세계체조연맹(FIG)은 일부 국제대회에서 AI 기반 컴퓨터 스코어링 시스템을 도입했다. 고속 카메라와 센서가 선수의 자세, 각도, 회전수 등을 계산해 실시간 채점하는 방식이다. “점수는 정확해도, 예술성과 연기력 같은 인간적 감각을 기계가 이해하긴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축구에서는 이미 기술 판정 시스템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2024년 프리미어리그 토트넘-리버풀전에서는 VAR(비디오 판독 시스템)이 명백한 오프사이드 오심을 정정하지 못해 리버풀의 골이 취소됐다. 이에 대한 분노는 리그 전체로 퍼졌고, 노르웨이 등 일부 국가는 VAR 폐지를 검토하기도 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골라인 판독 기술이,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비디오 판독이 차례로 도입됐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시스템(SAOT·Semi-Automated Offside Technology)이 적용됐다. 왜 자동이 아니라 ‘반자동’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오프사이드는 단순히 위치 정보만으로 판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의도적인 플레이인지, 굴절인지, 상대에 대한 방해가 있었는지 등 여전히 인간의 해석이 필요한 영역이 있다. 축구 심판 출신 홍은아 이화여대 교수는 “축구가 단순한 판정보다 ‘판단’의 비중이 큰 종목으로, 인간의 직관과 해석이 경기 일부로 받아들여져 왔다”며 “물론 기술 발전 속도를 고려하면 이러한 해석의 권한마저 AI에 조금 더 넘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시대에 되묻는 스포츠의 본질적 매력
기계가 인간보다 정확한 판정을 내리는데 왜 인간은 기계를 완전히 신뢰하지는 못할까. 영국 케임브리지대 지나 네프 교수는 그 원인을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지닌 ‘공정성’에 대한 감각에서 찾았다. 네프 교수는 “AI는 프로그래밍이 된 규칙에 따라 판단하지만, 사람은 조금 더 넓은 맥락과 가치를 포함해 결정을 내린다”며 “그게 기술적으로 옳은 판정이라도 감정적으로는 불공정하게 느껴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네프 교수는 “중요한 건 인간과 시스템 사이 ‘교차점’을 얼마나 잘 설계하느냐다. 양쪽 장점을 조화롭게 통합해야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AI를 이용한 첨단 기술은 의료, 자동차 등 삶 전반에서 이미 적용되고 있다. AI가 인간 의사보다 암을 더 정확히 진단하더라도 환자들은 결국 사람의 최종 진단을 원한다. 자율주행차가 사고율이 낮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율주행차 탑승에 불안감을 느낀다. 스포츠에서는 기술이 만들어내는 ‘완벽함’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될 수는 없다. ‘골프먼슬리’ 수석 편집자 빌 엘리엇은 “스포츠 기술이 추구하는 건 완벽이지만, 만약 삶이 완벽하다면 우리는 모두 지루해 미쳐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이 오심을 줄여주는 건 사실이다. 그 대가로 우리는 예측 불가능성, 감정, 갈등, 반전 등 스포츠의 본질적인 매력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축적된 문화적 현상으로서 스포츠는 단순한 승패를 가르는 도구가 아니다. 홍은아 교수는 “지금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기술과 인간, 감성과 데이터가 공존하는 스포츠 생태계를 어떻게 설계해 나갈 것인가”라며 “완벽한 정확도보다 중요한 것은 스포츠가 지닌 ‘불완전함의 매력’을 유지하는 것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BBC는 “윔블던 판정은 정확해졌지만 분위기는 조용해졌고, 판정은 더 공정해졌지만 덜 인간적으로 변했다”며 “새로운 전자 라인콜 시대는 우리가 스포츠에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다시 묻고 있다”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