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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오요안나는 노동법에 ‘살려달라’ 할 수 없다

입력 2025.05.23 14:39

수정 2025.06.1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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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용현 변호사
MBC 기상캐스터 고 오요안나씨의 모친 장연미씨가 지난 5월 19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MBC에 대한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MBC 기상캐스터 고 오요안나씨의 모친 장연미씨가 지난 5월 19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MBC에 대한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방송국의 불빛만이 외로이 깜빡입니다. 그 불빛 아래, 수많은 시청자에게 내일의 희망과 정보를 전달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매일 출근 도장을 찍던 젊은 기상캐스터, 오요안나가 있었습니다. 그의 하루는 방송 시작 3시간 전부터 시작됐고, MBC 정규직 파트장의 꼼꼼한 원고 검토와 지시 아래 방송이라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카메라 불빛 뒤편, 그는 “네가 유퀴즈에 나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어?”라는 선배의 공개적인 질책과 보이지 않는 압박감 속에서 홀로 스러져 갔습니다. 그의 마지막 외침은 유서 속에 빼곡히 기록됐습니다.

그러나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 뒤에 남겨진 것은 차가운 현실입니다.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 결과, 고인이 겪었던 괴롭힘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정작 고인을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프리랜서’라는 이름표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고인은 근로기준법 제76조의2가 규정하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 결정은 깊은 슬픔과 함께 우리 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매일 방송국이라는 ‘직장’으로 출근해 동료들과 부대끼며 일했던 고인이 왜 ‘근로자’가 아니란 말인가? 고인이 겪었던 괴롭힘은 분명 ‘직장 내’에서 일어난 일인데, 왜 법은 고인의 손을 잡아주지 못했을까요?

노동부는 고인에 대해 괴롭힘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①MBC와 계약된 업무 외 행정, 당직, 행사 등 미수행 ②일부 캐스터의 외부 영리활동 및 수입 전액 귀속 ③구체적 지휘·감독 없이 상당한 재량과 자율성으로 업무 수행 ④정해진 출퇴근 시간 및 휴가 절차 부재 ⑤의상비를 직접 지불한 점 등을 이유로 근로자성을 부인했습니다. 이로 인해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오락가락하는 근로자성 판단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법원은 계약 형식보다 실질적인 사용종속관계를 중시하며(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 등), 업무 내용의 결정권, 지휘·감독 여부, 근무 시간·장소의 구속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그런데 그 기준은 구체적인 사건마다 달라 끝까지 예측이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5억~10억원의 고액 연봉을 받던 등기이사인 사장의 경우도 의외로 임원의 지위를 부정하고 근로자성을 인정한 사례도 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3가합81655). 그리고 “재판은 오직 해당 사건에만 효력을 미치고, 재판이 단죄하는 건 국가나 사회가 아니라 이미 발생한 오직 한 사건, 한 개인뿐”입니다(박주영 판사 <법정의 얼굴들>).

유사 사건인 KBS 사건(서울고등법원 2020나2048261)에서는 형식상 프리랜서 아나운서의 실질적 근로자성을 인정했지만,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MBC)는 노동부로부터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두 사례 모두 계약 형식과 실제 근무 간 괴리가 핵심 쟁점입니다. KBS 사건에서는 방송사가 업무 배정, 상세한 지휘·감독을 했고, 이는 오요안나 사건에서 MBC 파트장의 원고 지시 등과 유사합니다.

[한용현의 노동법 새겨보기](49) 오요안나는 노동법에 ‘살려달라’ 할 수 없다

두 경우 모두 방송사 시설을 이용하고 사실상 고정된 스케줄로 근무했습니다. KBS 아나운서도 계약 외 회사 업무도 수행했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역시 업무 범위가 유동적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휴가 및 근태 관리도 양측 모두 회사의 통제하에 있었습니다. 또한 별도의 소속사 없이 사실상 해당 방송사에 전속돼 활동한 사실도 유사점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KBS 사건 판결은 실질적 사용종속관계를 중시해 근로자성을 판단한 반면, MBC 오요안나 사건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법원의 이러한 판단 기준은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의 근무 조건과 유사점이 많아 법적 판단 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노동부가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의 근로자성을 부인한 주요 근거들은 표와 같이 KBS 사건 판결에서 근로자성이 인정된 내용과 대비됩니다.

넘쳐나는 ‘직괴’사건과 노동부의 고민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2019년 2130건에서 2024년 1만2253건으로 6배나 급증했습니다. 이중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거나 조사가 불가능해 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된 ‘기타 사건’의 수는 2만4183건으로, 절반이 ‘기타 사건’으로 종결됐습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학원 강사, 헬스 트레이너 등 많은 프리랜서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신고 건수의 절반가량이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종결되고 있는 것입니다.

고 오요안나 사건으로 인해 프리랜서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입법 논의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근로자성’ 문제 해결과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회에서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프리랜서를 포함하거나, 적용 대상을 ‘일하는 모든 사람’으로 확대하는 ‘오요안나 특별법’ 제정 등이 발의되고 있습니다. 특별법은 중대 괴롭힘의 즉시 처벌, 노동위원회 재심 절차 등을 담고 있으며, 근로기준법 개정안 중에는 근로자 추정 원칙을 도입하고 사용자에게 입증 책임을 지우는 내용도 있습니다.

현행 제도와 폭증하는 사건통계에서, 고 오요안나 사건에 대한 노동부의 입장은 늘어나는 행정 부담을 의식한 것은 아닐까요. “손 뻗으며 살려달라 말해요”라고 시청자에게 조언했던, 정작 본인은 노동법에 살려달라 못하는 사건에 대해 고인은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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