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보수란···진정한 보수와 진보의 자리매김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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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보수란···진정한 보수와 진보의 자리매김을 위하여

입력 2025.05.23 14:27

수정 2025.05.2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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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연주 전 성신여대 법대 교수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 개막을 앞둔 지난 5월 14일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 전시장에는 ‘윤석열 탄핵’ 집회 현장에서 사용된 각종 물품이 전시돼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 개막을 앞둔 지난 5월 14일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 전시장에는 ‘윤석열 탄핵’ 집회 현장에서 사용된 각종 물품이 전시돼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보수란 전통적 가치를 수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 나라의 전통문화, 민족주의, 사회의 기본 질서와 가치를 지키려는 사고방식이나 태도를 말한다. 국가가 분단된 상황이라면 조국의 단일성과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해 통일을 지향하려고 한다. 또한 보수는 도덕적 가치와 법질서를 지키기 위해 솔선수범하고자 한다. 국가와 사회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헌신과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는 의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보수의 덕목 중 하나인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이는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많은 사람이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를 그 예로 들곤 한다. 어디 그분뿐이랴. 일제강점기에 희생한 수많은 독립운동가, 조국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헌신한 수많은 순국선열, 그밖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훌륭한 영웅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실천한 분들이다.

보수와 헌법적 가치

이처럼 보수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한 국가의 기본 가치이고, 이는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것과 다름없다. 헌법적 가치란 무엇인가? 바로 민주주의, 법치주의, 사회국가 원리의 바탕 위에서 자유, 평등,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실현하는 것이다. 모든 이념이 한 국가의 기본적 헌법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진보도 마찬가지다. 보수·진보, 좌우의 차이를 떠나 모든 이념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의 실현을 궁극적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보수·진보, 좌파·우파라는 이념의 절대적·배타적 대립 구도를 거부한다. 이런 정치공학적 구도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퇴행시킨다. 헌법의 기능 중 하나가 사회통합이란 점을 상기한다면 사회의 갈등과 상호 배제를 조장하는 극단적 대립 구도는 헌법을 파괴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헌법정신을 실현하고,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공공선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굳이 양자의 차이가 있다면 보수와 진보는 이러한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과 대상, 절차 및 시기에 있어 점진적 추진을 하느냐 혁신적 추진을 하느냐, 그리고 자유와 공공선의 조화와 결합 비율의 상대적 차이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한국의 가짜 보수와 반공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수는 보수가 아니다. 보수적 가치를 배척하는 반보수다. 과거 일제에의 충성과 부역 행위, 해방 후 일제 청산의 거부 및 일제강점 행위의 정당화, 민족의 역사와 전통 및 정체성을 경시하는 식민적 사고,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폄하하고 부정하는 행태를 보라. 육사 교정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시도를 보라. 자칭 보수집회에 등장하는 성조기, 이스라엘기, 심지어 브라질기를 보라.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제대로 된 보수라면 자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적 자긍심으로 가득 차야 할 텐데, 자국민을 갈라치기하면서 아무 관련 없는 타민족은 이다지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강자에게는 한없이 비굴하고 약자에게 군림하는 행태, 경제적·사회적 불평등 조장, 부와 권력에 대한 한없는 동경과 추구, 타인과 사회에 대한 배려와 공감의 결여,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삶이 아닌 반지성·반철학적인 천박한 삶, 신의 계시와 가르침이 아닌 사교 및 부와 권력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술적 신앙을 악용하는 상당수 종교인의 행태, 자연환경의 보존을 위한 노력을 거부하거나 경시하는 태도 등이 오늘날 보수의 모습이다.

아울러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자칭 보수라 자부하는 지도층과 기득권층의 헌신과 희생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의 군 복무 이행률도 떨어짐은 물론, 군 복무 회피 목적으로 미국 국적 취득을 위해 자식이나 손주들의 원정 출산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반공과 안보를 입에 달고 산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의무는 소홀히 하면서 특권과 혜택을 갈구한다. 오래전부터 나라를 지키고 의무를 이행하며 국가·사회에 헌신하고 희생하는 일은 힘없는 일반 민중의 몫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사실 우리 사회의 보수는 반공을 운운할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공과 안보를 부르짖고, 북한을 악마화해서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력을 연장·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반공을 악용해왔다. 우리 사회에서의 반공 이념은 사유재산제도와 시민의 자유를 부정하는 전체주의적 공산주의를 배격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는 이념이라기보다는, 과거 청산을 부정하는 세력과 그에 편승해온 불의한 세력이 일제의 침략과 강점을 정당화하고 부당한 기득권과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돼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처럼 왜곡된 반공 이념은 민주 세력에 대한 탄압수단으로 악용됐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주의와 정의를 주장하는 세력, 진정한 법과 원칙을 주장하는 세력을 종북좌파나 빨갱이라 비난해왔다. 우리 사회에서의 좌파 또는 빨갱이라는 말은 그 단어의 본뜻과는 관계없이 극우·수구·식민 세력이 자신들의 견해와 이익에 반하는 세력을 지칭하는 용어가 됐다. 극우·수구 세력과 독재정권을 떠받쳐온 전가의 보도가 된 것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정체성

굳이 전통적인 진보의 기준을 우리의 정당들에 적용한다면 진보·좌파로 분류되는 정당들은 사실 중도라 할 수 있고, 진보 또는 중도로 분류되는 더불어민주당은 사실 전형적인 보수정당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유럽 정당들과 비교해보면 분명해진다. 독일의 전통적 보수정당으로 분류되는 기민당의 정책, 기민당 소속으로 얼마 전까지 무려 16년간 총리를 지낸 앙겔라 메르켈의 정치적 노선은 한국에선 매우 진보적이고 좌파적이라 평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민당은 진보·좌파 정당인가? 물론 아니다. 전형적인 보수정당이라는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한국의 민주당은 독일에서라면 기민당보다 더 오른쪽에 있는 보수정당이다. 우리 사회가 매우 극우화돼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보수인가? 물론 아니다. 가짜 보수일 뿐이다. 부드럽게 표현하면 극우정당이라 해야 하겠지만, 딱히 그렇게 부르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유럽의 극우정당들에서 보듯이 극우란 일반적으로 배타적 민족주의 내지 국수주의를 기반으로 외세와 타민족, 외국인을 배척하는 특성을 갖는데, 국민의힘은 자국민을 갈라치기하고, 민족적 주체성과 자긍심을 내팽개치면서 친일·사대·외세 의존적 입장을 견지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 그저 ‘수구·내란 정당’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가짜 보수 현상의 원인 중 하나는 우리가 불의한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데 있다. 불의한 역사와 부역 세력을 단죄하지 못한 채 해방 이후에도 계속 부정·부패의 카르텔을 형성·강화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실제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단죄·청산되지 않은 채 광복 이후 일제히 반공을 부르짖으면서 독재정권의 앞잡이가 됐고, 이들 대다수가 오늘날 왜곡된 보수의 뿌리가 된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에서 악이 처벌되고 선이 보상받는다는 기본 원칙과 정의가 한 번도 실현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한 현상이 누적되고, 선과 지성과 정의가 배제된 타산적이고 기회주의적이고 비인간적인 교육이 이뤄졌으며, 사회가 그런 것을 용인하거나 부추기니 젊은 세대가 어떻게 정의를 배우고 실천하겠는가?

지난 5월 19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공약 평가에서 경실련 김성달 사무총장(왼쪽)과 임효창 상임집행위원장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19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공약 평가에서 경실련 김성달 사무총장(왼쪽)과 임효창 상임집행위원장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가짜 보수의 청산과 진정한 보수의 자리매김

이제 진정한 보수로 돌아가야 한다. 사회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한다. 정치인과 공직자, 기득권층이 환골탈태해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보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가르쳐야 한다. 역사의식과 국가적·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해야 한다. 진정한 보수의 모범을 보인 순국선열들에 대한 한없는 존경과 부채 의식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이 나라가 어떻게 독립했는지 왜 분단이 됐는지 과거청산은 왜 이뤄지지 않았고, 적폐와 불의가 상존하는지 역경 속에서도 어떻게 민주화를 이뤄냈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삶의 목적과 의미가 부와 권력의 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평등·정의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공공선의 실현에 있다는 간명한 진리를 깨닫게 해야 한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헌정 파탄 사태는 비극이지만 대전환을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과 문제점을 직시하고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내란 세력에게 책임을 묻고 상응하는 처벌을 해야 한다. 이들을 절대 용서해서는 안 된다. 사면도 있어선 안 된다. 사면이란 대상자의 적극적 사실 규명과 진정한 사과, 그에 따른 처벌과 국민의 용서가 전제된 이후에나 고려될 수 있는 것인데,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의 사면은 이러한 조건들을 전혀 충족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대상자들이 죽을 때까지 어떠한 반성도 없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피해자와 국민을 조롱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하는데 일조했을 뿐이다. 이는 역사적·교육적으로 매우 잘못된 것으로, 후세가 도대체 무엇을 배우겠는가? 우리 사회는 아무리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러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권력을 쟁취하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라는 참담한 교훈을 후세에 남긴 것이 아닌가?

불의한 과거의 청산 없이 미래는 없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프랑스가 나치에 부역했던 민족 반역자들을 가혹히 처벌했듯이, 그리고 독일이 히틀러와 나치의 제3제국을 극복하고 반면교사로 삼아 모범적 민주·법치국가로 거듭 태어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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