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개입 없이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나아진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보육의 문제가 대표적이다. 보육 분야에서 도대체 어떤 문제가 나아졌냐는 반문이 바로 나올 듯싶다. 10년 전의 상황을 한번 보자. 2013년 전국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의 숫자는 148만6980명, 이 중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는 15만4465명으로 전체의 10.4%에 불과했다. 그보다 5년 전인 2008년에 이 비중은 10.8%였다. 한마디로 달라진 게 없었던 셈이다.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매년 국공립 어린이집 신축 예산을 줄였다. 박근혜 정부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2016년 말 기준 국공립 어린이집 원아의 비중이 12.1%에 그쳤다. 이때도 합계출산율이 내내 1.3을 하회하는 초저출생 사회였다. 양육자들이 선호하는 국공립 보육시설을 늘려달라는 민심에 당시에도 정치는 화답하지 않았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나마 문재인 정부 시기에 국공립 어린이집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문재인 정부는 국공립 원아의 비중 40%를 달성하겠다는 구체적인 공약을 내세웠고,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충했다. 그 결과 2021년 기준 국공립 원아 비중이 22.7%까지 올랐다. 공약 목표엔 훨씬 못 미치지만, 이전 정부에 비해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다. 그런데 숫자를 좀 뜯어볼 필요가 있다. 2021년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은 26만8967명으로 2017년 18만6916명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숫자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다니는 모든 아동의 숫자가 저출생의 영향으로 2017년 145만243명에서 2021년 118만4716명으로 급감했다. 만일 전체 아동의 숫자가 유지됐다면 국공립의 비중은 22.7%가 아닌 18.5%로 줄어든다. OECD 평균이 50%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의 국공립 어린이집의 비중은 지나치게 낮게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상황이 나아진 이유는 아이들이 적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개선되지 않는 보육환경에 사람들이 적응한 셈이다. 아이를 적게 낳는 방식으로 말이다.
하늘의 별 따기였던 국공립 보육시설
많은 양육자는 아이가 태어난 뒤에야 보육 환경의 현실을 알게 된다. 통계에서도 드러나듯 2010년대 중반까지는 국공립 어린이집에 입소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운 좋게 국공립 보육시설 인근에 거주하고, 맞벌이와 다자녀 등의 우선순위 요건을 충족하며 임신하자마자 대기 인원으로 신청하는 준비성을 발휘한 소수만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나마 새로 설립되는 국공립 어린이집은 신축 아파트단지에 자리 잡는 편이어서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계층이 좋은 보육시설을 누리는 면도 있었다.
그렇다면 왜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이 오랫동안 보육 분야의 핵심 쟁점이었을까. 꼭 국공립 보육시설이 아니어도 양질의 보육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면 보육시설의 운영 주체가 민간이든, 사회복지법인이든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수의 민간 어린이집에선 그러나 보육서비스의 수준이 양육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일단 교사의 처우가 좋지 않았다. 2021년 전국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민간 어린이집의 보육교사 월 평균 임금은 250.2만원으로 국공립 288.4만원보다 13% 낮다. 이 급여도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고 지급하는 수당인 57만4000원을 포함한 금액이다. 보육교사의 급여는 2009년 기준 전체 평균이 126만원으로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고, 그나마 최근에 빠르게 이 금액을 올려왔다. 2009년에도 국공립 보육교사의 급여는 평균 155만원으로 가정형(정원 20명 이하) 어린이집 보육교사 급여인 102만원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직률도 여전히 높다. 2020년 한 해 동안 그만둔 보육교사가 있는 어린이집은 전체의 72.6%이고, 어린이집 1개당 이직 혹은 사직한 교사는 평균 2.3명이며 전체 보육교사 대비 이직 및 사직 교사의 비율은 23.7%였다.
민간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원장 중 다수는 헌신적으로 보육시설을 운영하고 아이들을 보육하고 있으나, 일부는 아이들의 식비와 운영비를 지나치게 아끼며 수익을 추구하고, 그중 일부는 원장이 개인적으로 유용하는 등의 비리를 저질러 2018년에 큰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이는 구조적으로 공적인 재원을 투입하는 데도 민간이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다. 이 외에도 양육자 입장에선 국공립 보육시설에 보낼 때는 각종 특별활동비 등을 거의 내지 않지만, 민간 보육시설엔 상당한 특별활동비와 경비 등을 따로 내야 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민간보다 국공립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그렇게 선호하는 국공립 보육시설에 입소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너무 급격하게 출생아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골든타임에 두 차례 보육대란
박근혜 정부 시기에 두 차례 보육대란의 위기가 있었다. 여기서 보육대란이란 보육기관에 가야 할 예산이 가지 않아 운영이 중단되거나, 아니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해 보육기관이 직접 파업을 하는 경우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월 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늘봄학교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첫 번째 보육대란의 위기는 보육예산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통 교육과정인 ‘누리과정’ 예산을 이명박 정부가 처음 도입할 때 지방교육청이 부담하도록 정책을 설계했다. 그나마 처음엔 만 5세에게만 누리과정을 실시했기 때문에 지방교육청의 부담도 크지는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약으로 “만 0~5세 보육 및 유아교육 국가완전책임제 실현”을 내세웠다. 이는 당시 누리과정 예산을 중앙정부가 책임지겠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2014년 유아교육법 시행령에 아예 지방교육청의 부담을 명시했고, 이로 인해 2015년부터 연례행사처럼 지방교육청과 중앙정부 간 힘겨루기가 되풀이됐다. 그나마 이 문제가 해결된 계기는 2016년 총선이었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예상외로 총선에서 참패했고, 여소야대의 국회가 중앙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부담하게끔 입법했다. 골든타임 시기에 보육예산의 부담을 두고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이 다투는 꼴이었는데, 당시 누리과정 전체 예산의 규모는 4조원으로 전체 재정의 1% 수준이었다.
두 번째 보육대란의 위기는 2016년 맞춤형 보육서비스를 도입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정부는 보육서비스의 효율화를 위해 전업주부가 있는 가구의 경우 보육시설 이용시간을 오후 4시까지로 제한하는 맞춤형 보육서비스를 도입했다. 이 정책에 양육자들이 아닌 보육기관들이 반대했다. 이유는 맞춤형 보육을 이용하는 아동의 경우 월 보육비가 적게 책정되기 때문에 보육기관의 수익성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두 차례 보육대란의 위기는 정부가 대대적으로 투자해 보육의 양과 질을 크게 늘렸어야 할 타이밍에 발생했다. 비유하자면 수혈을 받아야 할 시기에 헌혈을 한 셈이다.
사실 저출생 정책이 전반적으로 잘못된 타이밍에 시작된 경향도 있다. 한국은 이미 1983년에 합계출산율이 2.06을 기록해 인구 대체 합계출산율인 2.1 밑으로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관성적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하고,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한 여아 낙태가 심각한 국가였다. ‘초저출산’으로 분류되는 합계출산율이 1.3 밑으로 떨어진 시기도 2001년이었지만, 정책적으로 저출생이 논의되기 시작한 시기는 2006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다. 2010년대에는 저출생이 지속되고 보육의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정책적 대응 속도가 여전히 늦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에 하나는 정치적 대표성의 문제다. 정부의 주요 인사, 국회의원 가운데 영유아 양육자와 학부모의 비중이 너무 낮다. 특히 교육정책을 책임지는 교육감의 연령대와 성별이 균질적인 편이다.
초등돌봄 절벽과 늘봄학교
최근 양육에 있어 최대 현안은 초등돌봄 절벽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방과 후에 돌봄 공백이 발생하는 이 문제 역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인 2017년생부터 당시 출생아 수가 40만명을 하회하기 때문이다. 후년부터는 급격하게 입학생 수가 줄어든다. 작금의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치열하게 학교의 방과 후 과정을 등록하기 위해 경쟁하고, 여러 돌봄 공백을 태권도, 피아노, 미술학원으로 메우고 있으며 이마저도 다 채워지지 않아 그나마 이어오던 경력을 끝내고 양육에 전념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윤석열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후 8시까지 방과 후 교육활동과 돌봄을 제공하는 초등 ‘늘봄학교’를 올해부터 시범 도입하고, 내년 7~8개 교육청으로 확대하며 후년부터 전국에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미 많은 학부모는 당장이라도 오후 3~4시까지 안정된 돌봄을 원한다. 과연 내후년부터 절벽을 메울 만큼 우리가 한가한 상황일까. 이번에도 시간차는 또 메워지지 않을 듯하다.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된다. 다시 아이들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