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중국 수출 부진 심화 불구 하반기 반등 기대감
6850억달러(약 890조원). 정부가 제시한 올해 수출 목표치다. 지난해 12월 예상치보다 무려 4.7%포인트 높다. 2~3개월 사이 대내외 여건이 더 나빠졌음에도 수출 목표치를 높인 이유는 뭘까. 정부는 올해 한국 경제가 상반기에 바닥을 찍고 하반기에 반등할 것으로 본다. 전망의 주요 배경은 중국의 경제활동 재개(리오프닝)와 반도체 경기 회복 등에 대한 기대감이다. 일각에선 리오프닝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고 한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 가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주요국 긴축 확대 등 우리 수출을 위협할 글로벌 악재도 산적해 있다.
지난 3월 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월 수출입 동향을 보면 2월 수출액은 501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541억6000만달러)보다 7.5% 감소해 5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했다. / 연합뉴스
먹구름 드리운 수출 전선
글로벌 경기 침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반도체 업황 악화 등 악재가 겹치면서 지난해 10월(전년 동기 대비 5.7% 감소)부터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올 2월 수출액은 501억달러(66조3825억원)로 1년 전(541억6000만달러)보다 7.5% 감소했다. 5개월 연속 감소다. 주력 품목인 반도체 경기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對)중국 수출 부진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2월 반도체 수출액은 59억6000만달러다. 1년 전에 비해 42.5%(44억달러)나 급감했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8월부터 7개월 연속 감소세다. 월별로 전년 동기 대비 감소 폭을 살펴보면 지난해 8월 7.8%, 9월 5.6%, 10월 17.4%, 11월 29.9%, 12월 29.1%, 올해 1월 44.5% 등으로 최근 감소 폭이 커졌다. 수출 비중이 60%가량인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줄면서 가격이 바닥을 치고 있고, 재고 물량은 줄지 않고 있다. D램 고정가격은 지난해 초 3.41달러에서 올해 1~2월 1.81달러까지, 낸드 고정가는 4.81달러에서 4.14달러로 각각 떨어진 상태다.
최대 교역국인 대중국 반도체 수출액(2월)도 전년 대비 39.0% 감소했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국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3%(2022년 기준, 홍콩 경유 포함 55.3%)로 최대 수출시장이다. 이를 반영한 2월 대중국 수출은 24.2% 쪼그라들었다. 대중 수출 감소는 지난해 6월부터 9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수출 다변화 요구가 커지면서 대안으로 급부상한 아세안 지역으로의 수출(2월, -16.1%)도 5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수출은 줄어든 반면 수입은 소폭 늘었다. 2월 수입은 554억달러(73조4000억원)로 전년 동월보다 3.6% 증가했다. 이에 따른 2월 무역수지는 53억달러(7조225억원) 적자로, 지난해 3월부터 12개월째 적자 행진이다. 무역적자 12개월 이상은 1995년 1월~1997년 5월 이후 25년여 만이다. 반도체, 배터리, 철강, 석유화학 등 주로 중간재를 수출하는 한국은 글로벌 경기 변동에 취약한 구조다. 한국의 지난해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전년 대비 0.06%포인트 더 하락하며 2.83%로 집계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4차 수출전략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수출 목표치, 어떻게 나왔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23일 “모든 외교의 중심을 경제와 수출에 놓고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겠다”고 했다. 또 정부와 민간기업, 금융기관, 관련 단체 등의 ‘원팀’을 강조하면서 6850억달러라는 연간 수출 목표치를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 수출액(6836억달러) 대비 0.2% 높고,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12월 21일 ‘2023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발표한 올해 수출(통관 기준) 예상치(-4.5%)보다 훨씬 높다. 근 석 달 사이에 수출 목표치를 4.7%포인트나 올린 것이다.
무역수지 적자와 수출 둔화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이런 목표치를 내건 배경엔 ‘상저하고’ 기대가 깔려 있다. 윤 대통령이 ‘수출 사투’를 천명한 날 한국은행은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수출이 상저하고의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체적으로 “상반기에는 상품 수출이 4% 감소하지만, 하반기엔 5% 증가하면서 연간 수출은 0.5% 소폭 늘어날 것”으로 봤다.
정부 당국의 전망도 비슷하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앞서 2월 9일 발표한 ‘2023 경제전망’에서 당시 브리핑을 한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소비 감소와 수출 부진으로 경기 둔화가 심화하고 있어 상반기 (성장률) 전망치를 (1.4%에서 1.1%로) 낮췄지만, 하반기엔 중국의 리오프닝이 국내 수출에 기여하면서 경기 회복세가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2월 1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재정경제금융관 간담회에서 “향후 무역수지는 여러 변수가 작용하겠지만 1월을 지나면서 계절적 요인이 축소되고,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시차를 두고 반영되면서 점차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중국의 리오프닝이 글로벌 경기 회복 신호탄이자 우리 수출의 반등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조의윤 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경쟁 사이에 끼어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주요국 긴축 등 올해 우리 수출에 미칠 악재 속에서 중국의 리오프닝은 우리 수출에 긍정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막강한 영향력을 갖춘 중국 내수시장과 교역 여건에서 중국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우리 경제 구조를 감안하면 중국의 리오프닝은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하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9년 이미 1만달러를 돌파해 중진국 기준을 넘어섰으며 대도시인 상하이, 베이징 등은 지난해 3만달러 수준에 도달했다. 투자 규모는 중국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추월했으며 오는 2026년에는 격차가 약 1.7배로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 경기의 견조한 성장세도 하반기 수출 반등을 기대하는 요인이다. 이형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고물가에 대응한 긴축 기조가 지속되면 글로벌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미국 1월 소매판매가 시장 전망치를 웃돌고 중국 리오프닝과 함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50을 넘기면서 글로벌 경기 반등 시기가 예상보다 더 빨라질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1월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3.0% 늘어난 6970억달러를 기록했고, 중국의 2월 PMI는 2012년 4월 이후 가장 높은 52.6(기준 50)을 기록했다.
국내외 기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한은이 2월 27일 발표한 ‘중국 리오프닝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우리 경제가 긍정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은 재화 수출과 중국 관광객 유입이다. 보고서는 “재화 수출의 경우 우선 중국 내수 경기에 민감한 화학공업제품 등의 수출이 늘고 최대 2개월의 시차를 두고 휴대전화·반도체 등 IT 제품 수출이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월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리오프닝 효과 제한적” 근거는
리오프닝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은 대중국 수출 비중 감소와 중국시장의 구조 변화에 주목한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비중은 2021년 25.3%에서 지난해 14년 만에 가장 낮은 22.8%로 하락했다. 품목별로는 여전히 반도체 수출이 1위를 차지했으나 전년 대비 수출 증가율은 2021년 22.9%에서 지난해 3.7%로 크게 둔화했다.
중국의 중간재 수요도 줄었다. 지난해 기준 전체 우리의 대중국 수출에서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83.6%에 달한다. 중국은 2015년 첨단 제조업 육성을 목적으로 한 ‘중국제조2025’ 전략을 통해 제조업 기술력 향상과 자체 공급망 구축에 속도를 내면서, 원자재를 들여와 가공한 후 중간재로 수출하는 한국과 경쟁 관계로 전환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중국의 중간재 수입은 금융위기 이전(2001~2007년)엔 연평균 32.4% 증가하다가 금융위기 이후(2010~2021년)엔 연평균 8.9% 증가에 그쳤다. 한은도 “중국의 소비중심 회복, 재고누증 및 대외 수요 부진 등으로 중국 리오프닝에 따른 국내 성장 제고 효과가 과거 평균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며 중국의 중간재 자급률 상승도 대중 수출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한은에 따르면 중국이 해외에서 중간재를 구입하는 글로벌 가치사슬(GVC) 후방 참여도는 2007년 23.1%에서 2021년 18.3%로 하락하는 추세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중국의 리오프닝에 따른 한국의 수출 개선 효과가 2.7%에 그칠 것으로 봤다. 이는 인도네시아(4.8%), 인도(4.2%), 태국(3.9%)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2월 23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과거 중국 경제가 1% 성장하면 한국도 0.2~0.25% 올랐는데 이제는 그 효과가 절반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중국 리오프닝이 국제유가 상승과 국내 물가 상방압력으로 작용하는 부작용도 키울 수 있다.
수출·수입선 다변화를 강조하는 와중에 불거진 고위 당국자들의 논란성 발언이 대중 수출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예를 들면 지난해 8월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했고, 정재호 주중한국대사는 “기업들이 중국에 투자할 때 지정학이 주는 리스크를 정확히 파악하고 (중국에) 들어와야 한다”고 했다. 7월엔 한덕수 국무총리가 “중국 경제가 꼬라박는 수준으로 가고 있다”고도 했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올해 2월 8일)에서 “작년에 사상 최대 무역적자를 기록했지만, 그 기록이 올해 다시 깨질 듯하다”면서 “윤석열 정부가 미국의 중국 배제에 선제적으로 ‘올인’하는 정책은 경제 현실에 맞지 않다”고 했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전문위원은 “중국의 리오프닝과 경기 부양에 따른 추가 수요가 분명 있겠지만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과 중국의 자급산 비중 확대 등을 감안하면 중장기적으로 우리의 대중 수출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기업 경쟁력 제고와 수출 지원에 정부가 적극 나서는 한편 미국의 중국 견제 구도를 활용해 수출 기회를 늘리고 기술격차를 확대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