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이 테이블에 앉아 말이 없다. 살벌한 긴장감이 흐른다. 내가 먼저 입을 연다. “기립하십시오.” 몸을 일으키는 세 사람의 얼굴엔 각각 어둠, 설렘, 결연함이 서려 있다. 세 사람은 삼각형으로 서서 어깨동무를 한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정수리를 붙인 채 일제히 땅을 바라본다. 이어서 내가 구호한다. “하나, 둘, 셋.” 동시에 외친다. “예뻐진다, 예뻐진다, 예뻐진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내가 한명을 쳐다보며 말한다. “잠깐, 귤. 목소리가 작습니다.” 아까부터 얼굴이 어둡던 귤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너무 부끄럽습니다….” 내가 말한다. “예뻐지는 게 부끄럽습니까?” 귤이 대답한다. “살면서 이런 말은 입에 담아 본 적도 없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말한다. “목소리 커질 때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젖먹던 힘까지 외칩니다. 둘, 셋!”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방안에 울려퍼진다. “예뻐진다, 예뻐진다, 예뻐진다!”
정식 명칭 ‘The little princess Beauty lab.’ 당신 안의 아름다움으로 입문하는 두 달간의 프라이빗 뷰-티 클래스. ‘우리는 예뻐진다’는 희망찬 슬로건을 내건 소공녀 뷰티랩은 방금 수치심 가득한 표정으로 구호를 외친 귤과 가숙, 두 사람의 간청으로 창설됐다. 요컨대 몇 달 전 우리는 우연히 마주 앉았다. “다솔, 나 화장하는 법 좀 가르쳐주라.” 동그랗고 말간 얼굴을 한 귤의 눈동자가 빛났다. 평소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메이크업과 패션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수로 평가받았다. 이것은 거품으로 가득한 상대적인 과대평가로, 주변 친구들이 하나같이 거울보다는 책을 보는 데 흥미를 가지고 있어 생긴 거대한 오해에 가까웠다.
그에 비해 늘 풀 메이크업, 풀 드레스업을 하고 다니던 나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친구들의 대소사에 출장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나서거나 퍼스널 쇼퍼로 활동하게 됐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귤의 요청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산속 나뭇잎에 맺힌 이슬처럼 순수하고 맑은 사람이었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따듯하고 편안한 기운을 주었다. 외모 단장에 관심이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그 나름대로 충분히 아름답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말했다. “지금도 예쁜데 뭘 배워. 귀찮은 일이야.” 귤이 말했다. “나 연애 좀 해보자.” 그 말을 하는 귤의 눈빛이 너무 뜨거워 순간 델 뻔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마침 옆에 있던 가숙이도 거들었다. “야, 다솔아. 나도 제발 가르쳐주라. 좀 해보려고 하는데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 응?” 가숙이는 말하자면 교회 오빠 혹은 모범생 하면 떠오르는 평범한 외양의 남자였다. 그런데 하는 짓은 꼭 하이틴 코미디에 나오는 잘나가는 여자애처럼 발칙했다. 가끔 쓰는 글을 보면 그냥 천재 같았다. 외적 이미지와 내적 이미지가 갈 데까지 멀어져 있었다. 겨우겨우 누군가와 잘 되려는 순간마다 상대가 생각지도 못한 가숙의 모습에 놀라 달아나고 말았다.
나는 귤과 가숙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딱 봐도 가야 할 길이 멀고도 험난했다. 한글로 치면 기역부터 가르쳐야 할 판이었다.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얘들아. 나는 내 얼굴만 겨우 책임질 뿐이야.”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귤이 말한다. “몇 달 전에 다솔이 북토크 사회 보던 날, 나 살면서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 실제로 처음 봤잖아.” 그러더니 두 손으로 내 손을 붙잡는다. “다솔은 진짜 대단한 사람이야.” 옆에 있던 가숙이도 얼른 내 손을 잡는다. 내 손에 뜨거운 네 개의 손바닥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둘이 입을 모아 말한다. “제발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소공녀 뷰티랩이 출범한다. 그 자리에서 함께 지은 이름이다. 그 유래를 말하자면 끝도 없으니 독자를 위해 과감히 생략한다. 나는 근엄한 목소리로 수업의 제1 강령을 열거한다. ‘무조건 내 말대로 할 것’,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을 것’,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 즉시 중단할 것’. 둘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무엇이든 따르겠노라고 말한다. 나는 결코 싸지 않은 수고료를 제시한다. 그들이 동의한 순간 그 자리에서 송금을 요구한다. 당장 만날 날짜를 정하고, 며칠 후 커리큘럼 페이퍼를 작성해 그들에게 송부한다.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도스토옙스키는 말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아름다움은 능력이다. 힘이고, 삶의 목표이고, 낙이며, 무기다. 당신은 내면의 아름다움에 너무 치중해 살았다! 책 좀 그만 읽어라!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나? 이너 뷰티 타령 좀 그만해라! 당신의 내면과 한없이 동떨어진 외면을 직시하라! 내면과 외면의 일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당신은 실질적인 자신감과 편안함을 얻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외면의 아름다움은 당신의 더 아름다운 내면으로 향하는 미끼를 제공할 것이다. 세상은 당신에게 빠질 준비가 됐다.
그렇게 세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우리 집 거실 테이블에 둘러앉는다. 내가 아무리 바빠져도 이 일정만은 절대로 미뤄지지 않는다. 시작은 무조건 얼싸안고 기합을 외친다. 나아질 거라는 확신이 이 수업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모든 것은 기세가 중요한 법이니까. 귤과 가숙의 눈에 털끝만큼의 의심이라도 서렸다가는 나는 언제든 벌떡 일어나 블루투스 마이크를 들고 온다. 조명을 모두 소등하고 디스코 볼을 켠다. 삽시간에 우리 집 거실이 노래방이 된다. 둘은 엄청난 것이 오고 있음을 감지한다. 나는 반주를 튼다. 첫 곡은 에일리의 ‘보여줄게’다. 나는 귤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말한다. “명곡입니다. 마음을 실어 부르세요.” 귤은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서는 거의 울먹이며 소절을 따라 부른다.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보여줄게 훨씬 더 예뻐진 나.” 나는 신이 나서 손뼉을 친다.
다음 차례는 가숙이다. 곡은 박보람의 ‘예뻐졌다’다. 이 노래는 통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던 가수가 어느 날 살을 쫙 빼고 실제로 예뻐진 뒤 불러 더 화제가 됐다. 가숙이는 기다렸다는 듯 고음을 쭉 뺀다. “예뻐졌다 매일 듣고 싶었던 말/ 정말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말/ 달라 모든 게 달라졌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을 만큼 절절히 부른다. 어느새 셋 다 덩실덩실 몸을 흔들며 떼창을 한다. 노래가 끝나자 나는 마이크를 끄고, 디스코 볼을 끄고, 다시 조명을 켠다. 사방이 환해진다. “노래 좋다.” 귤이 말한다. 우리의 작은 연구소, 테이블에 마주 앉은 세 얼굴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