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여자의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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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여자의 설

입력 2023.02.10 11:36

수정 2023.02.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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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다솔 작가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이모가 목욕탕에서 미끄러졌다. 설날 하루 전이었다. 동네의 작은 목욕탕은 여느 때처럼 한산했고, 누구도 그가 넘어진 것을 보지 못했다. 그 소리는 짙은 수증기 속에 포근하게 묻혔다. 이모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바로 알지 못했다. 너무도 극심한 통증에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 한참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는 시점에, 그는 천천히 바닥에 손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내가 넘어진 건가? 그는 자문했지만, 일어선 곳에 넘어진 흔적 따위는 없었다. 그는 거품 하나 묻히지 못한 몸 그대로 탕을 빠져나왔다. 천천히 옷을 주워 입었다. 온몸이 얼얼하고 욱신거렸지만, 그보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졸음이 쏟아졌다. 어딘가 한구석이 마비된 듯 무감각하면서도 뼈와 근육이 모두 제각각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는 목욕탕이 있는 사거리에 보이는 정형외과로 천천히 걸어갔다. 밖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는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 깊은 잠에 빠졌다.

이모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골절됐다. 뼈가 붙는 데는 한 달이 걸린다고 했다. 경과를 지켜보며 수술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모가 가장 먼저 했던 말은 “감사하다”였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허리나 머리를 다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손과 발이 허리와 머리를 지킨 셈이었다. 사건은 바라보기 나름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다음날 늦은 밤에 나는 이모를 데리러 갔다. 설 귀경길 정체를 피해 해가 저문 뒤에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손발이 불편한 그를 위해 우선 집에 가서 대신 짐을 꾸려야 했다. 집에 도착하자 짐은 이미 야무지게 싸져 있었다. 이모는 손과 발에 붕대를 친친 감은 채 두꺼운 외투와 모자까지 챙겨 쓰고 침대 소파에 걸터앉아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1년 만의 재회였다. 이모의 짐들을 둘러메고 차에 실은 뒤 천천히 동네를 빠져나갔다. “나 운전면허 처음 땄을 때 연수도 안 받고 강원도까지 혼자 다녀왔잖아.” 평소에도 시원시원한 성격을 가진 그가 충분히 할 만한 일이긴 했지만 조금 파격적이었다.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을 했어?” 내가 묻자 이모는 말했다. “그냥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대답은 명료했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대뜸 물었다. “너 신호 단속 잘 지키니?” 당연한 질문이었으므로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느라 조금 뜸을 들였다. 이모는 말했다. “너 그거 안 지키면 돈 많이 문다. 나는 그런 거 있든 말든 질주해서 편지를 참 많이 받았어.” 과속 단속 카메라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질주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 잘 상상돼 웃음이 났다. 이모는 어떤 의미에서건 늘 엄청난 사람이었다. 나는 명심하겠다고 답했다.

여자 셋이 한 지붕 아래 모였다. 서울 마포에 혼자 사는 나, 은평에 혼자 사는 이모, 충북에 혼자 사는 엄마다. 1년 만의 재회다. 전도 부치지 않고 제사도 지내지 않는데도 셋이 모이니 명절 기분이 났다. 장거리 운전의 피로로 늦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두 여자는 벌써 떡국을 끓여 먹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고 한다. 나는 두 여자를 소파 앞에 앉혀놓고 마른 얼굴로 세배를 한다. 엄마가 말한다. “아랫집 순자 언니가 놀러 오래.” 그러자 이모가 질색한다. “내 평생 누구 만날 때 마스카라 안 하고 만나본 적이 없어.” 그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모는 온종일 집에 있을 때도 아침부터 부지런히 일어나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을 하고 완벽한 코디를 한 뒤에야 거실에 나타났다. 그건 허영이나 여성스러움으로 말해질 수 없는 이모의 브랜드였다. 엄마는 깜짝 놀랐다. ‘마스카라’라는 단어는 그 시골 동네에서 멸종된 언어나 다름없었다. 화장을 했다는 건 필시 큰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말했다. “내가 해줄게.” 이모가 의자에서 사뿐히 일어섰다. 그리곤 엉덩이를 씰룩이며 방에 들어가 짙은 갈색의 가발을 가져왔다. “그럼 이거부터 씌워줘.”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며칠 동안 감지 않아 눅눅해진 이모의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쓸어넘겨 쪽져 주었다. 그리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가발을 씌웠다. 그 모습은 꼭 폭탄 맞은 만화 주인공 같았다. 몇 번의 손짓이 오가자 감쪽같이 봐줄 만한 머리가 됐다. 금세 우리가 아는 이모의 모습이 돼갔고, 그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엄마도 덩달아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나도 할래.” 그렇게 세 여자의 난데없는 단장이 시작됐다. 시골 볕에 구수하게 그은 얼굴에 하얀 파운데이션을 바른 모습이 꼭 달걀귀신 같았다. 거기에 시커먼 아이라인까지 더하니 영락없는 고대 이집트인이었다. 깔깔 웃으며 내가 바르던 볼 터치를 엄마의 볼에 쓸어주었다. 무성하게 자라난 눈썹도 다듬고, 검은 아이라인도 부드럽게 펴내 주었다. 달라진 그를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그의 휴대전화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잘되던 얼굴 인식이 수도 없이 시도해도 되지 않았다. 휴대전화는 그날 하루가 다 가도록 주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엄마의 휴대전화 얼굴 인식 사건은 그날 마을 사람 모두를 웃기는 하이라이트가 됐다.

살을 에는 바람이 불고 눈발이 휘날리는 추운 겨울 충북 깡시골의 어느 외딴집에는 오랜만에 명절을 맞아 모인 세 여자가 몇 분째 트럼프를 꺼낼지 화투를 꺼낼지 고민 중이다. 그들의 속눈썹은 서울 명동거리를 지나는 아가씨들의 그것처럼 바짝 올라가 있다. 입술엔 생기 넘치는 루주가 발라져 있다. 근방 10㎞에 남자는 아무도 없고 아무도 그것을 신경쓰지 않는다. 잔돈을 가져오는 일이 중요해졌다. 점당 50원의 게임을 시작한다. 귀가 들리지 않고, 손이 불편하고, 다리가 불편하고, 건망증이 있어도 게임에 예외는 없다. 승자는 웃고 패자는 재기를 다짐할 뿐이다. 게임 한 판마다 새로운 흥망성쇠가 쓰인다. 세 여자는 게임을 좋아한다. 게임은 인생과는 달리 승패가 명확하고, 계산도 정확하며, 이기든 지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짤랑짤랑 소리가 여자들 사이를 오간다. 기쁨과 슬픔의 탄성도 그사이에 섞인다. 예쁘게 단장한 얼굴로 잔뜩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패를 바라보고 있는 두 여자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밖이 어느새 칠흑처럼 어둡다. 나는 생각한다. 내일 아침엔 이 여자들과 눈썰매를 타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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