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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쾌유를 빌며

입력 2022.12.30 14:55

수정 2023.01.0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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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다솔 작가

꿈에 그리던 퇴사를 하고 얼마 후 알 수 없는 두통이 시작됐다. 처음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저 컨디션이 안 좋나 보다 하고 잠을 더 잤다. 아무리 자도 자기 전과 똑같이 통증은 이어졌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어 두통약을 먹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내과에 가서 수액도 맞아보고 찜질도 받아봤지만, 두통은 지치지 않고 이어졌다. 그렇게 어떤 일도 집중할 수 없는 며칠이 흘러갔다. 두통이 멈추지 않는 일상이란 늘 정신없고 시끄러운 페스티벌 현장에서 사는 기분이구나 하며 만성두통 질환을 가진 사람의 범죄율 증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하루 중에 아프지 않은 순간보다 아픈 순간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통이 시작된 지 벌써 1주일이 넘었음을 깨닫게 될 즈음, 머리가 종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있는 머리카락을 다 뜯어버리고 싶어졌다. 뇌수막염을 의심케 하는 증상이었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나의 친절한 한의원 선생님께서는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이것을 ‘면역력 약한 아기들이나 걸리는 병’이라고 했다. 동네 내과에 찾아가 온도를 측정했을 때 40도, 그러니까 눈을 의심하게 되는 숫자를 확인했을 때까지 나는 코로나19에 걸렸다고 확신했다. 이제 내 삶은 끝났구나, 하며 어디서부터 삶을 정리해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태도가 놀랍도록 미련이 없어서 스스로 놀랐다. 죽는 건 두렵지 않았으나 응급실에서 척추에 커다란 바늘을 꽂아 뇌척수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하자 삶에 대한 미련이 온몸을 덜덜 떨게 하는 것을 느꼈다. 나이트클럽의 스피커처럼 터질 듯이 울리는 머리를 양손으로 쥐어짜면서 애써 웃으며 의사에게 말했다.

“에이, 아닐 겁니다. 그냥 고열이겠죠. 제게 부루펜을 주시겠어요?” 부루펜은 귀여운 아기가 혀를 빼꼼 내밀고 있는 액상 해열제였다. 그거면 되리라 믿었다. 의사는 부루펜 대신 근육까지 뻐근해지는 강력한 해열 주사를 처방해주었다. 나는 빨갛던 얼굴이 서서히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고통은 종식됐다고 믿었다. 바로 다음 날 다시 응급실을 찾았음은 물론이며 결국 척추에 주먹만 한 바늘을 꽂았다. 그러나 그즈음에는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통증으로 바늘은 느껴지지조차 않았다. 더 볼 것도 없이 뇌수막염이었다. 그길로 입원 병동에 수속 절차를 밟았다. 삶에서 가장 아픈 2주를 보내게 된다. 그즈음 세브란스병원의 어떤 6인실 귀퉁이에서 한이 맺힌 귀신이 출몰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모두가 잠든 새벽마다 알 수 없는 목소리가 ‘흑흑…. 하늘이시여 그냥 저를 죽여주시옵소서’ 혹은 ‘제길! 제길!’ 하며 섬뜩한 목소리로 울먹였다고 한다. 2주 동안 병실에 있는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의사들은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지만, 회사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3년간의 회사생활이 차곡차곡 쌓여 병이 됐다면 뇌수막염 정도면 다행이었다. 몸은 가장 솔직한 방식으로 그 시간이 무척 고통스러웠음을 말하고 있었다. 어떤 것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퇴원 후에도 꼬박 1주일을 누워만 있어야 했다. 고통이 사라진 자리에 그 어떤 힘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링거를 4개씩 꽂았던 팔에는 바늘 자국이 별자리처럼 수놓아져 있었다. 빈속에 무차별하게 처방된 진통제와 항생제에 절어 지냈던 몸은 전원이 완전히 꺼진 것 같았다. 1인 가구의 제1 강령이 다시금 자명해지는 순간이었다. 바로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그럴 때는 꿉꿉한 방에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들이듯 누구나 타인이 가져다주는 산뜻함이 필요하다. 너무 지쳐서 말 한마디 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을 땐 누군가 어깨를 톡 건드려주는 것만으로도 다시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킬 힘이 생기곤 했으니까.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것은 친구도 아니요, 엄마도 아니었다. 바로 친구의 엄마였다.

수화기 너머로 생기 넘치고 야무진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솔아, 어쩜 좋니. 일단 무를 사.” 그는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다가 처방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럴 때일수록 잘 먹고 잘 자는 게 보약이야. 스스로를 아끼고 돌봐주렴. 그리고 무엇보다 시장에 가서 무를 사. 무를 씻어서 마구마구 채를 썰어. 말린 표고버섯이랑 같이 넣고 팔팔 끓여서 오래 우려내. 신선한 통들깨를 갈아서 아낌없이 넣어. 뜨끈할 때 밥이랑 말아 먹어. 무는 따듯한 기운을 주고 들깨는 힘이 나게 해줄 거야.”

그 말을 듣자 딱 무를 사러 갈 만큼의 힘이 났다. 몸을 일으켰다. 나를 돌보아야 했으니까. 시장에서 무를 사 와서 채칼에 썰어 큰 솥에 담았다. 단맛이 올라올 때까지 들기름에 달달 볶았다. 고소한 향이 은은하게 올라올 때쯤 표고와 다시(멸치·다시마·조개 따위를 우려내 맛을 낸 국물)를 넣어 한 소끔 끓였다. 한마디도 빠짐없이 모두 그의 말대로 했다. 직접 볶은 통들깨를 즉석에서 갈아 아낌없이 넣었다. 뭉근하고 진한 국물이 될 때까지 충분한 시간 동안 끓였다. 언젠가 나와 똑같은 일을 해냈을 부엌의 그(친구 엄마)를 떠올렸다.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해주세요, 하고 작게 속삭였다.

완성된 무 들깻국은 맛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했으니까. 고소하고 달짝지근했고 깊은 감칠맛이 났다.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갓 지은 잡곡밥과 김치로 한 상을 먹으니 그릇이 뚝딱 비워졌다. 어느새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온몸이 따듯하게 진동했다. 속이 든든했다. 나는 생각했다. 맛있다. 참 맛있다.

가장 먼저 따듯해졌던 건 손이다. 내 끼니를 만들었던 그 손이다. 맛있다는 것은 때로 몸과 마음을 삶으로 완전히 불러냈다. 그럴 수 있을 만큼 강했다. 내 손이 그런 밥상을 차릴 수 있다는 것이 때로는 무적처럼 느껴졌다. 내 속을 채우고 데우는 음식을 만들고, 나를 살려내는 것이 여전히 가능하다는 걸 다시 확인하고는 했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부엌에 있었다. 그곳에서 가장 단순해졌다. 나는 살고 싶고, 그것도 아주 잘 살고 싶어서 거기 있었다. 물론 나 혼자 이 두 손으로 매일같이 정성스러운 약밥을 짓는데도 세상의 일로부터 얻는 병과 사고를 모두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배는 고파올 것이고, 나는 모든 순간의 나에게 물을 것이었다. 뭐 먹고 싶어? 그리고 다시 맛있을 수밖에 없는 밥을 짓는 일에 몰두할 것이다. 신나게 밥을 먹기 시작할 것이다. 따듯한 기운이 식기 전에 그릇을 싹싹 비울 것이다. 배가 든든하게 불러오고 등줄기로 땀 한 줄기가 훅 흘러내릴 것이며 얼굴은 반질반질 윤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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