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밤을 넘어서



주간경향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15)밤을 넘어서

입력 2022.12.16 11:30

수정 2022.12.21 11:10

펼치기/접기
  • 양다솔 작가
일러스트 DALL·E

일러스트 DALL·E

환절기면 부쩍 부고 소식이 들렸다. 나이가 들면 계절이 대수로워진다 했다. 한여름이나 한겨울이 그저 몹시 춥고 더운 것을 넘어 삶을 흔들게 된다 했다. 계절이 몸 한가운데에서 일어나고 있는 양 새로운 계절을 넘지 못한다고 했다. 여름에서 가을이, 가을에서 봄이 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산을 넘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보이지 않는 흐름이라는 것이 정말 있나 싶었다. 꽃들이 계절에 따라 피어나고 지고 씨앗을 떨구듯이 사람도 날씨에 따라 옷을 바꿔 입는 것일까 하고.

도시인에게 계절이란 감정만큼이나 부수적인 것이었다. 사계절이 아닌 출근과 퇴근, 주중과 주말만이 있었다. 계절의 변화는 벽에 걸린 액자의 그림이 바뀌는 것과 비슷했다. 빨간 날을 기점으로 어렴풋이 인식됐다. 겨울은 크리스마스, 가을은 추석이고, 여름은 휴가, 봄은 설날이었다. 도시를 가득 채운 도로와 빌딩은 매일 같은 모습이었다. 환절기는 옷 입기가 다소 까다로워지는 날들에 지나지 않았다.

몇주 전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장 충북대병원으로 가. 시간은 자정을 넘은 새벽 1시 30분이었다. 그 시각 나는 친구와 경기도 여주시를 달리고 있었다. 온종일 어항 속에 갇힌 기분이어서 평소에는 잘하지도 않는 드라이브를 나선 참이었다. 집에서 100㎞나 떨어져 있었다. 달이 예쁘게 보인다는 절이랬나. 어느덧 목적지까지는 6분을 남겨놓고 있었고,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할머니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실 것 같아.” 엄마는 말했다. 늦여름의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밤이었다. 앞으로 3일간 예정된 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서둘러 내비게이션을 충북대병원으로 설정했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그런데 아침에 가도 되지 않아?

생각지 못한 발상이었다. 그저 가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가라고 했다는 것 말고는 별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엄마 아빠가 이혼한 후 할머니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벌써 5년이 지나 있었다. 웬만해서는 앞으로도 볼 일이 없을 예정이었다. 이 새벽에 이유도 따지지 않고 만사를 제치고 달려가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물론 가야 하는 것 자체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굳이 이 새벽에? 함께 있던 친구를 서울로 보내느라 치른 택시비가 떠올라 속이 쓰렸다. 달이 예쁘다는 절을 못 본 것의 서운함도 들었다. 피곤이 몰려왔다. 물음표가 숱하게 떠올랐다. 내가 잠들어 있어 전화를 놓쳤다면? 운전을 할 줄 몰랐다면? 아팠다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연한 걸 왜 물어. 그런 건 그냥 가는 거야.” 엄마가 말했다. 나는 물었다. “세상에 당연한 게 어디 있어. 그건 엄마한테나 당연한 거야. 내가 운전을 못 했으면 이 새벽에 어떻게 가는데?”, “택시 타고 가지.”, “그냥 자고 아침에 천천히 갔어도 되잖아.”, “그래도 되지만… 가족이잖아.”

한동안 검은 도로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미 아침부터 밤까지 긴 일정을 소화했던 몸은 한껏 지쳐 있었다. 멍한 표정으로 병원 쪽으로 핸들을 돌릴 즈음엔 목이 유난히 칼칼했다. 심호흡을 하고 뺨을 두어 번 찰싹찰싹 때렸다. 초보운전인 내가 이 새벽에 졸음운전을 했다가는 먼저 임종을 맞을 수도 있었다. 웃긴 얘기도 아니었다. 상향등을 켜고 텅 빈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부러 사납게 인상을 썼다. 가족이라니. 엄마가 그 깨끗한 목소리로 높여 부른 그 가족이란 이름은 내 인생에 도움이 된 적이 없었다. 명절 때 그 흔한 용돈도 받은 적이 없었다. 누구 하나 예외 없이 가난했다. 가난해서 억척스러웠고, 고약했고, 걱정이 많았으며, 상냥함 같은 것은 시간 많은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나에게 좀 여자같이 예쁘게 꾸미고 다녀라, 1등 해라, 부자 되라는 말 외에는 별말이 없었다. 늘 본인 자랑을 하기 바빴다. 할아버지는 그마저도 말이 없었다. 그가 말하는 걸 평생 열 마디 정도 들은 것 같다. 그는 내가 시골집에 가면 “왔냐”라고 말하는 게 다였다. 늘 텅 빈 표정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그것이 수줍어서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아주 가끔 그가 나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달리거나 경운기 옆에 앉히는 일이 있었는데, 그러면 은으로 때운 이빨들이 가득 드러나게 웃었다. 할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나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은 엄마한테 화가 났다. 무언가를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의 방식에 싫증이 났다. 엄마는 말했다. 그럼 나보고 뭘 어쨌어야 한다는 거니, 나는 내가 아는 대로 너에게 알려줄 뿐이야. 어떤 사람이 될지는 네가 생각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를 혼자 달리는 것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진공상태 안에 있는 것에 가까웠다. 계기판에 서서히 올라가는 숫자가 무색하게 느껴졌다. 빠르게 움직이기는커녕 멈춰서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깜깜한 방에 갇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새벽을 달려 누군가를 보러간다면 그건 무슨 일이 돼야 할까 궁금해졌다. 지금 이 도로를 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어딜 가는 걸까. 창문을 조금 열어 밤바람을 들였다. 멀리서 움직이는 빛이 보이면 그게 그렇게 반가웠다.

살아 있을 때 얼굴을 본다는 것은 힘이 된다, 고 엄마는 말했다. 나에게도 위안이 되는 일이고 남에게도 떳떳해지는 일이라고. 그를 이해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디까지 왔는지도,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침을 삼킬 때마다 식도가 쓰라렸다. 피곤해진 몸이 낮게 떨려왔다. 어느 순간부터 삶은 수없이 많은 선택으로 뒤덮여 있었다. 너무 많은 차원의, 너무 많은 장르의 선택이 겹치고 어긋났다. 그것은 수십 곡의 노래가 한꺼번에 재생되는 것 같았다. 좋은 순간도 불쾌한 순간도 여러 개로 포개지니 굉음이 됐다. 후회와 만족과 아쉬움과 그리움이 제멋대로 엇갈려 이상한 박자가 됐다. 정답은 알 수 없었다. 아무도 대신 대답해줄 수 없댔다. 엄마의 말대로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지금의 나뿐이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도로에 유일한 작은 빛이 빠른 속도로 저편으로 향하고 있었다.

몇시간을 달려 병원에 도착했을 땐 면회시간은 끝나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밤을 넘겼다.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무사히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 사실에 기뻐하는 이는 없었다. 슬퍼할 수도 없었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나는 계시를 받은 듯이 목에 손을 올려보았다. 목이 팅팅 부어올라 있었다. 새벽바람이 사뭇 찼다. 어제와는 다른 바람이었다. 창문 밖으로 동이 트고 있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