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사원 Z와 달의 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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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사원 Z와 달의 표면

입력 2022.11.18 14:22

수정 2022.11.2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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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다솔 작가

회사원 Z는 출근시간 마다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삶이 대체 언제 시작되는 건지 궁금했다. 분명한 건 아직 한 번도 시작된 적이 없다는 거였다. 유치원 때는 초등학교 이후에, 중학교 때는 중학교 이후에, 고등학교 때는 고등학교 이후에 삶이 시작될 거라 생각했다. 오늘은 언제나 내일을 위한 준비과정에 불과 했다. 내가 입고 싶은 옷과 가고 싶은 장소가 아닌 교복을 입어야 했고 학교에 있어야 했다. 대학생이 돼도 마찬가지였다. 졸업을 하고 직장인이 되는 것만이 출발선에 서는 것처럼 보였다. 졸업을 앞둔 그에게 지도교수는 말했다. ?별걱정할 필요 없어.? Z는 생각했다. 어떤 ?걱정?을 말하는 걸까. 아무것도 시작된 것이 없는데.

일러스트 김상민기자

일러스트 김상민기자

회사원이 됐지만, 삶은 여전히 보류된 것 같았다. 눈을 뜨면 학교에 가는 대신 회사에 오게됐을 뿐이다. 3교시가 끝나면 점심을 먹듯이 오전 업무가 끝나면 점심을 먹고, 시간이 되면 하교하듯 퇴근했다. 월급을 받는다는 점이 달랐지만, 지극히 형식적인 차이로 보였다. 월급은 매일 끼니를 챙기고 머물 집을 유지하는데 썼다. 배를 채우고 에너지를 보충해 다시 회사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고 나면 얼마간 돈이 바닥났고, 다시 월급날을 기다렸다. 학교를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학급과 학년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를 뺀 모두가 교과서를 받은 듯했다. 선배들은 입을맞춘 것처럼 같은 말을 했다.

초반 한두 번은 그만둬도 돼. 결정이야 빠를수록 좋지. 마음껏 방황하란 말이야. 그런데 그래 도 2년 안에는 맞는 회사를 찾아야지. 20대 후반까지는 말뚝 박는다고 생각하고 커리어 쌓고. 서른 되기 전에 대리 달아야지. 그래야 서른 중반에 팀장 달고, 그때 이직 한번 하면서 연봉 올리고 승진 따면 나이스지. 마흔 전에 과장 달고. 쭉쭉 저금해 오십에 은퇴하고 나면 가게를 하든지.... 일단 유튜브 채널 하나 파. 자격증은 따고 있니? 요즘은 직장 다니면서도 관리해야 해. 일단 젊었을 때 바짝 벌어놔야 하니까. 설마 결혼할 생각은 없지?

그의 삶은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준비 중인 것으로 보였다. 회사원 Z는 삶이 시작되는 곳에 꽂혀 있는 깃발을 뽑아 들고 우왕좌왕했다. 그러니까 이걸 대리쯤에 꽂아야 하는 건가, 아니면 과장. 아니면 노인이 돼서? 보이지 않고, 방학도 없는, 그 어느 때보다 긴 학 교에 입학해버린 기분이었다. Z의 생은 달의 표면처럼 깃발을 꽂았던 구멍들이 송송 남아 있었다. 이제 그 깃발은 회사원 Z의 손에 들려 있었고, 쓸모없고 더럽고 무거운 것으로 변모했다. 무엇을 위해서? 대체 그 삶이라는 게 뭔데? 스스로 따져 묻고 싶었다.

만화 <월레스와 그로밋>의 주인공은 어느 날 달로 떠난다. 월레스는 집에서 크래커를 먹다가 함께 곁들일 치즈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치즈를 구할 방법을 생각하다가, 밤이면 하늘에 떠오르는 달이 치즈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떠올린다. 스케치북을 꺼내 로켓을 쓱쓱 그린다. 그 그림은 그대로 차고에서 현실이 된다. 월레스는 자신이 만든 로켓을 타고 반려견 그로밋과 함께 달나라로 떠난다.

회사원 Z는 어린 시절 그 비디오를 테이프가 닳도록 돌려보았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없었다. 치즈가 떨어졌다고 해서 마트에 가서 산다면 그것은 삶이될 수 없었다. 삶은 치즈 달나라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다. 어느 날 치즈가 떨어져서, 로켓을 지어서 달로 떠나볼 수도 있는 것. 매일이 내손에 달려있고, 뜨는 해는 지구에서 봤지만 지는 해는 달에서 볼 수도 있는 것.

삶은 분명 나의 편협한 바람을 조금씩 비껴갈 것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매일 입어야 할 옷과 가야 할 장소가 정해져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두렵고 통쾌하고 끔찍하고 또 벅찬 일이 될 것이었다. 그러자 회사원 Z의 정신분석가는 말했다. ?이미 하루는 당신의 예상을 벗어나고 있어요. 오늘만은 다를 수도 있다는 당신의 바람이 매일같이 배반되고 있잖아요.? 회사원 Z는 속이 거북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설마 지금 이것이 진짜 나의 삶이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짧은 상담시간은 이미 끝나 있었다. 다음 상담을 지불할 돈은 없었다. 회사원 Z가 당장 오늘 죽는다 해도 모두가 그것을 ?회사원의 죽음?이라고 부를 것이었다. 그것은 통계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삶은 달만큼 멀게 느껴졌다.

회사는 분기 매출을 100억원이나 초과 달성했다. 목표의 150%에 달하는 수치였다. 업적이라 부를 만한 일이었다. 경기는 침체해 대부분이 아래로 치닫고 있었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소위 ?사양산업?이라고 불리는 업계였다. 10년 뒤에도 자신이 하는일이 여전히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거기다 회사에서 정하는 목표라는 것은 현실 가능한 것을 훨씬 상위하고, 달성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일상적이었다. 그 결과를 만든 것은 회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4층 건물을 가득 채운 100여명. 그 한명 한명이 밥 먹는것도 잊고, 집에 가는 것도 잊고 회사에 머물렀던 결과였다.

순전히 회사원들이었다. 그들은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왔고 늦게 갔으며, 한번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일도 없었다. 누구도 그러라고 한 적이 없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기준에 만족스러울 때까지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회사원 Z는 그들에게 다가가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묻지 못했다. 모니터를 마주 보는 그들의 눈, 키보드 위에 올려진 손, 마사지볼과 에너지 드링크가 있는 어지러운 책상은 숭고했으니까.

회사원들이 구름처럼 한데 모여 시끌벅적했다. 그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은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사람들은 사장이 이번 매출에 대한 성과급을 인당 10 만원으로 통보했다고 했다. 모여 선 눈빛에 실의가 넘실댔다. 멈출 줄. 모르고 달려가던 기차 앞에 돌연 낭떠러지가 펼쳐 진 것처럼. 사람들은 피곤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원성을 토해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회사원 Z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그 빡빡한 틈 사이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 순간을 목격하고 싶었으니까. 얼마 안 가 그 무리는 각 팀의 회의가 소집되면서 해산됐다. 회사는 금방 다시 고요해졌다. 그후 성과급이 20만원이 됐는지 30만원이 됐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회사원 Z는 그들이 흩어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고개를 돌린다. 가뿐히 돌아 회사를 빠져나온다. 회사 밖은 텅 비어있다. 마치 쓰이지 않는 무대의 뒤편처럼 보인다. 그는 아무도 보지 않는 거리를 아무렇게나 활보한다. 사뿐한 걸음으로 편의점의 문을 연다. 구이 기계에 올려진 고구마 중에 가장 크고 실한 것을 고르는 데 시간을 쓴다. 편의점을 나와 천천히 그 껍질을 벗겨내기 시작한다. 김이 솔솔 나는 따뜻하고 노란 몸집이 드러난다. 입을 크게 벌리고 한움큼 베어 문다. 달큰하고, 조금은 믿을 수 없는 맛이다. 결코 일하기 위해 먹는 식사가 아니었다. 그의 아침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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