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세상에는 회사만을 위해 만들어진 마을이 등장한다. 회사만을 위한 마을이기 이전에 그곳은 들판이었다. 여름이면 풀과 잡초로 뒤덮여 눈부신 초록이 눈을 찔렀고, 겨울이면 모든 것이 잠들어 죽은 황야 같았다. 파란 하늘이 묵직하게 내려앉아 시야를 채웠으며 새들이 아름다운 정렬을 이루고 날아갔다. 그곳에서 사람은 풀잎에 앉은 벌레만큼 작아 보였다. 풀을 누르고 자리를 잡은 것은 공룡만큼 커다란 건물이었다. 별안간 회색의 건물들이 줄 맞춰 들어섰다. 아침이면 일꾼을 옮기는 버스가 오갔다. 건물이 세워지고 인파가 쏟아져도 그 땅의 여백을 메울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건물 안으로 스스삭삭 숨어들었다. 그러면 다시 바람 부는 소리만 들렸다. 잡초들이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처럼 마구 휘날렸다. 마찬가지인 일이 저녁에도 일어났다. 밤이면 텅 비어 산속 깊은 곳처럼 적막했다. 24시 편의점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버스는 이른 아침 도시의 중심부에서 출발했다. 버스에는 번호도, 노선도 쓰여 있지 않았다. 그곳을 아는 사람들만이 버스에 올랐다. 자리가 차면 소리 없이 출발했다. 들판과 회사만 있는 땅으로. 기사는 즉시 모든 불을 소등했다. 사람들은 마취상태처럼 일제히 기절했다. 아직 잠들지 않은 건 한사람뿐이었다. 회사가 사회로부터 인위적으로 격리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회사원 Z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섬 같은 구석이 있었다. 그래도 불만을 품을 일은 아니었다. 적어도 숨 쉴 공기조차 부족한 만원의 지하철에서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는 손을 마주칠 일은 없었으니까. 도시의 하늘은 조각보처럼 작았고 어디를 가나 누군가의 어깨와 부딪혔으며 매캐한 공기로 가득했으니까. 피로한 눈꺼풀을 일순 감았다 뜨면 그곳에 도착해 있었고 공기는 상쾌했다. 너른 들판은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어 도시엔 없는 계절을 알려주기도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Z는 잠에 빠졌다.
버스에서 내리면 사람들은 뛰었다. 차갑고 뭉근한 공기가 알싸하게 뺨을 스쳤다.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걷는 이는 회사원 Z였다. 그는 휴대전화의 클릭 몇 번으로 사무실 컴퓨터에 미리 설치해둔 원격 프로그램에 접속했다. 사내 프로그램에 로그인한 뒤 출근 도장을 찍었다. 매달 전 직원의 출근기록이 사장실에 보고되고 있었다. 풀잎에 앉은 벌레처럼 작은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천천히 걸어가 봐야 기껏 5분일 것을, 업무에는 어떤 지장도 주지 않을 텐데. 멀찍이서 그들을 바라보며 Z는 생각한다.
사무실에서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는 그림은 익숙하다. 처음 며칠은 그럴듯한 구실을 늘어놓거나 일부러 숨을 헐떡이는 척했으나 그마저도 곧 말았다. 그는 마치 원래 있던 사람처럼 소리 없이 등장해 웃는 낯짝으로 인사를 한 뒤에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온수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푸어푸 세수했다. 송골송골 물방울 맺힌 얼굴로 자리에 돌아와 로션을 발랐다. 매일 지각을 일삼는다는 말에 한 선배가 “그럼 드라이어를 가져와서 회사에서 머리를 말리는 건 어때?”라고 물었을 때 Z는 웃었다. “세수도 여기서 하는데요.” 근무 시간 8시간과 이동시간 왕복 2시간을 합치면 이미 하루에 최소 10시간은 이곳에 있었다. 그 이상의 준비시간은 단 한톨도 더 들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잠옷을 입고 오지 않는 것만 해도 지난한 설득의 결과였다. 최대한 잠이 덜 깬 채로 버스에 올라야 끊김 없이 자는 기분이 든다는 논지였다.
그는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결코 두각을 나타내는 법이 없었으나, 그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100명이 넘는 직원들은 회사원 Z를 이렇게 불렀다. “매일 몸 돌리는 애?” 세수하고 로션을 바르고 나면 Z는 아무도 나가지 않는 구석의 발코니 문을 열었다. 바람 부는 초록의 들판에 시선을 던지고 머리부터 돌리기 시작했다. 순서는 머리-어깨-무릎-발-무릎-발이라는 전통적인 순서를 지켰다. 그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점만 빼면 특별할 것도 없었다. 가끔은 그의 시선 끝에 백로 한마리가 서 있었다. 하얗고 늘씬한 백로가 햇빛으로 가득한 초록의 가운데서 고고히 서 있었다. 그 발코니는 아침마다 햇살이 비쳐드는 유일한 곳이었고 그 속에서 몸을 돌리는 순간은 회사원 Z도 빛을 머금었다. 빛이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갈 수도 있음을 아는 사람은 그곳에 없는 듯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그를 보고 있는 사람은 없었으나 사실 모두가 그를 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기지개조차 켜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납작하게 접혀 해가 진 후에야 건물을 빠져나갔다.
그 조용하고 작은 나라에서 그는 조용히 모든 이들의 혐오를 한몸에 받았다. 그들이 애써 붙들고 있는 규칙들을 그는 너무도 사뿐히 즈려밟았고 그러고도 아주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출근을 ‘왈츠’의 리듬이라 표현했고, 어느 순간 동료들은 그가 제시간에 오는 날이면 칭찬을 하고 있었다. 동료들은 Z를 어려워하고, 이상해하다가, 어이없어하고, 싫어한 뒤에 포기하는 수순을 겪었다.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격노했다. 회사원 Z는 회사의 규칙을 무시하는 것과 동료들 사이의 연관을 끝내 찾지 못했다. 그가 무시하는 것은 회사라는 비인간적 존재와의 관계였다.
회사원 Z는 사람들이 자기 행동에 놀라다가 어느새 익숙해하고 무뎌지는 과정이 많은 이들이 그렇게 애타게 하고 싶어하는 ‘브랜딩’의 일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놀랍도록 끈질기고 확실하게 자신을 관철시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을 관철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고용주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별다른 일이 없는 날이면 회사원 Z를 흘기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그날만큼은 그들을 어지럽히는 일이 따로 있었다. 갈수록 나빠지는 경기에도 회사는 세운 목표의 150%에 달하는 수익을 달성해냈다. 모두가 자리에 앉아 소리 없이 기뻐하며 콩알만 한 급여에 덧붙여질 얼마간의 인센티브를 소망하고 있던 차였다. 그때 마침 고용주가 모두의 노력을 높이 치하하며 인당 10만원의 인센티브를 선언했다. 사람들이 벌어들인 수익은 100억원이 넘었다. 고용주는 마땅히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작은 주먹으로 책상을 쿵 쳤다. “10만원이라고? 우리가 그딴 용돈 받으려고 그렇게 일한 줄 알아?” 회사원 Z는 몸을 돌리다 말고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귀를 기울였다. 그들이 밤낮없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세상에서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