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민주화 이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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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민주화 이후의 역사

입력 2022.08.26 15:17

수정 2022.08.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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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요즘 한국 어디를 봐도 무기력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가지만, 공동체는 변화의 동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라는 의문은 우리의 시선을 역사로 돌린다.

집중과 흩어짐

한국의 20세기를 ‘민주주의를 향한 전진의 역사’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일단락된 1987년 이후의 35년은 어떤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대략 노무현 정부 초기까지는 민주당의 집권이 곧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간주됐다. 군사 독재의 잔재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대결구도는 20세기 역사의 연장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지난 35년의 정당정치는 어떤 경향을 가진 역사적 흐름이라기보다는 국가권력을 주고받는 핑퐁게임에 가깝다. 모두의 기대를 받으며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지만, 약속한 개혁은 이뤄지지 않고, 결국 실패한 정권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정권을 내준다. 이른바 ‘보수정당’은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추억에만 젖어 있을 뿐 국가를 운영할 아무런 역량이 없고, 처참한 실패와 함께 사라진다. 그러면 민주당 정권이 재등장하지만, 과거와 비슷한 과정을 따라 선거에서 패배한다. 앞으로도 이런 패턴이 반복될 가능성이 큰데, 거대 양당은 일관된 목표나 이념 없이 선거라는 개별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당정치에는 선거 승리와 실패라는 개별 사건들이 있을 뿐, ‘정치의 역사’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

대중운동의 역사가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예컨대 촛불시위의 기원은 2002년 주한미군 장갑차 중학생 사망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미국산 소고기 수입, 세월호 참사,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폭로, 조국 장관 임명과 검찰수사 등 여러 정치적 사건이 대규모 촛불시위의 계기가 됐다. 1987년 이전의 대중운동이 ‘반독재 민주화’라는 거시적 흐름의 부분이었던 것에 비해 촛불시위의 다양한 형태와 목적을 묶을 일관된 흐름은 없다. 커다란 분노와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하면 다수 대중이 광장과 온라인 공간에 집결하고, 집단적 요구가 전면적 혹은 부분적으로 수용되면 대중은 다시 흩어진다. 대중의 힘은 폭발적이지만 일회성이고, 일관된 목적을 향해 나아가지도 않는다. 이는 촛불시위의 한계가 아니라 본성이다. 운동의 목적이란 곧 이념인데, 최근의 대중운동은 어떤 형태의 이념도 거부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먹이를 쫓아 우르르 몰려다니는 물고기 떼의 운동과 비슷하다. 어떤 중심점이 등장하면 모두가 그쪽으로 집중하지만, 그것이 사라지면 모두 흩어져 다음 중심점을 기다린다. 선거에서 ‘청년’이 소비됐던 방식을 떠올려보자. 정당, 언론, 유권자 모두 그 기호를 따라 떼 지어 몰려다녔지만, 그것의 ‘약발’이 떨어지자마자 다른 기호를 찾아다닌다.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기본소득 따위도 한번 쓰고 버려지는 정치 상품일 뿐, 정당정치의 목적이 아니었다. 대중운동은 거대한 감정 덩어리의 꿈틀거림이다. 충격적 사건이 발생하면, 대중의 거대한 분노와 열망이 그곳으로 쏟아지지만, 그때가 지나면 다시 잔잔해졌다가 다음 사건을 기다린다. 한국 정치의 지난 35년은 이러한 집중과 흩어짐의 반복 아니었을까? 아마도 그것에 ‘역사’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힘들 것이다. 어떤 시간을 (거시사든 미시사든) 역사라고 부르려면 개별 사건을 잇는 흐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역사

그렇지만 한가지 목적을 향해 꾸준히 전진하는 것도 있다. 지난 35년간 한국의 자본주의는 멈춤 없이 성장하며 자기 역사를 만들어왔다. 그 결과 ‘역사=경제 성장’이라는 박정희식 역사관은 민주화 이후에 오히려 더 강화됐다. 즉 역사란 못 사는 상태에서 더 잘 사는 상태로 이행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한국의 위대한 역사와 발전’을 말하는데, 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이 세상에 대한 인식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사회와 정치의 많은 부분이 정체돼 있거나, 퇴보하고 있다. 경제 성장이라는 역사관은 개인의 인생사를 지배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제 인생이란 못 사는 상태에서 잘 사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 즉 불평등의 사다리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역사만 남고, 다른 모든 역사가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한국 정치는 독자적 역사성을 상실하고, 자본주의 역사의 일부분이 돼버리지 않았는가? 누군가는 이것이 현시대의 자연스러운 경향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는 정치체제인 동시에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도달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끝없이 전진한다. 민주주의와 비민주주의를 구별하는 것은 선거제도가 아니라 이러한 전진 운동의 유무다. 역사로서의 민주주의가 사라진 곳에 민주주의는 없다.

1987년 이후의 한국 정치는 거대 양당의 핑퐁게임이 돼버렸다. 그들은 오로지 선거 승리를 위한 집중과 흩어짐을 반복한다. 대중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대중적 감정의 집중과 흩어짐이다. 누군가는 이런 평가를 반박하며 ‘87년 이후의 한국 정치사’를 성공적으로 쓸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민주주의를 향한 전진의 역사는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정치 체제를 민주주의라 부를수 있을까?

한국 정치의 무력함은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 지금 겉으로 드러난 무력함은 위에서 ‘흩어짐’이라고 부른 시기의 특징이다. 새로운 정치인 혹은 정치 상품이 등장하거나,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다시 ‘집중’의 시기가 시작될 것이다.

그럼 한국 정치가 다시 역동성을 되찾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 뒤에는 다시 흩어짐의 시기가 이어질 것이고, 또다시 정치는 무력함에 빠질 것이다. 문제는 더 근본적인 무력함, 즉 전진 운동을 멈춘 한국의 민주주의 그 자체에 있다. 지금 우리는 윤석열 정부에서 한국 정치의 바닥을 목격하고 있다. 다음 질문들에 주목하지 않으면, 그 바닥 아래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시 흐르게 할 것인가? 정당정치와 대중운동이 자본주의와 분리된 독립적인 정치사를 쓸 수 있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정확히 어떤 민주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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