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도 딸도 아닌 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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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도 딸도 아닌 너와 나

입력 2022.07.29 14:16

수정 2022.08.03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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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희정 기록활동가

해오와 사라

<해오와 사라>는 세계와 불화하는 소녀들의 성장 이야기다. 1947년 우도에서 물질하며 살아가는 해오는 어느 날 말도 없이 떠나버린 엄마로 인해 상처 입은 열다섯 살 소녀다. 해오는 엄마를 미워하고 그리워한다. 어느 날 바닷가로 떠밀려온 비슷한 나이의 인어(人魚) 사라를 만나면서 세상의 비밀을 조금씩 알아간다. 사라 또한 엄마를 잃은 소녀다. 인간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반쪽이’라는 소문에 시달리는 인어다. 사라가 제주 바다로 온 것은 이곳이 해녀의 바다이면서 인어의 바다이기도 해서다. 인어사회를 유지할 어린 인어가 태어나는 곳. 새로운 인어와 함께 귀환할 중차대한 임무를 맡고 파견된 인어들 속에 사라가 있다. 사라는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인어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되기를 꿈꾼다. 두 소녀는 세계의 법칙에 몸을 맞추려 애쓰다가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깨닫고 위험을 무릅쓴 이주를 결행한다.

송송이 작가의 웹툰  한 장면 / 다음웹툰

송송이 작가의 웹툰 <해오와 사라> 한 장면 / 다음웹툰

세계를 넘나드는 해오와 사라의 이야기는 세계를 넘나드는 옥련과 요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옥련과 요나는 집을 떠나 자식과 분리된 엄마들이다. 집은 물리적으로 가두는 게 아니라 관계로 가둔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여성들이다. 해오의 엄마 옥련이 자신의 욕망에 따르기 위해 사회가 요구하는 모성 수행을 거부한다면, 인어 요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모성을 수행할 자격이 없다는 이유(마녀)로 인어들에게 딸 사라를 빼앗겼다. 요나는 “그 이별로 내 영혼의 한 부분은 망가졌다. 영원히 회복되지 못할 형태로 비통하게. 그렇지만 또 다른 사실을 말하자면 영혼의 나머지 부분은 그제야 온전히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상실감과 해방감을 함께 느끼는 이중적 상황에서 요나는 자신을 책망하는 흔할 길로 가지 않는다. 억압이 감정의 사슬이라는 형태로 작동한다는 걸 알아버려서다. 요나는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향해 분노한다. 다른 세계를 동경한 인어를 불행하게 해온 주문을 부수고 새로 쓰고자 한다. 대가 없이도 누구나 원하는 인어는 인간이 되는 주문으로.

옥련은 해오에게 깊은 상실감을 준 채로 머문다. 엄마의 흔적을 쫓아 해오가 보낸 편지가 도달했음에도 응답하지 않는다. 지식과 성장을 갈망한 옥련과 자신이 꼭 같은 사람임을 깨닫게 됐을 때, 해오는 자신을 떠난 옥련을 무작정 책망할 수만은 없게 된다. 그러나 <해오와 사라>가 시도하는 모녀관계 다시 쓰기는 한 인간으로서의 엄마를 이해해가는 여정만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해오는 엄마가 있는 먼 이국땅으로 떠난다. 이름을 불러 돌아보게 할 수 있는 거리까지 엄마에게 다가선 바로 그 자리에서 해오는 “엄마를 버린다.”

가부장제 가족구조 안에서 엄마와 딸은 서로 가해와 피해를 넘나드는 복잡다단한 관계를 쌓는다. 감히 부모를 버릴 수 없는 ‘자식’으로, 비슷한 고통을 겪는 ‘여성’으로, 딸은 엄마를 이해할수록 배반하기 어렵다. 해오는 버린다. 옥련이 아니라 엄마를. 관계의 단절이 아닌 해체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시 쓰기로 한다. 상실을 힘껏 받아들이고 서로의 관계를 재설정할 용기를 낸다. 복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힘이다. 죄책감이나 책임감에 붙들리지 않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이 말하는 대로 살아갈 힘. 아버지의 집도, 어머니의 집도 아닌 곳에 나의 집을 지어도 된다. 그 간단한 문장에 도달하기까지 우리는 너무나 먼 길을 돌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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