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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택한 여장이 가져온 것

입력 2022.07.08 14:23

수정 2022.07.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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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순욱 초영세 만화플랫폼 운영자

여장 남자와 살인자

이쯤에서 만화 <여장 남자와 살인자>를 다시 꺼내보는 것이 적절해보인다. 프랑스 작가 클로에 크뤼쇼데의 이 그래픽 노블은 전쟁의 참상과 다양한 젠더 이슈가 뒤죽박죽 섞여 있는, 화려한 수상 이력의 작품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질서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전쟁을 겪으며, 가까이에서는 젠더 갈등을 수없이 목격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배경인 작품 속 인물들의 생각과 2020년대를 사는 지금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다를지 아니면 여전히 (당시의 사람들처럼) 고집스러울지 궁금하다.

클로에 크뤼쇼데의  한 장면 / 미메시스

클로에 크뤼쇼데의 <여장 남자와 살인자> 한 장면 / 미메시스

폴과 루이즈는 파리의 연인이다. 그들은 이내 결혼하지만, 가장 행복해야 할 시기에 제1차 세계대전을 맞이한다. 남편 폴은 징집돼 전쟁터로 보내지고 루이즈는 기약 없는 기다림을 시작한다. 폴은 자신감에 차 있는 군인이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동료의 얼굴이 폭탄에 날아가는 순간 그의 용기는 모두 가짜가 됐다. 그는 자기 손가락을 자르고 전투 중 다친 것처럼 연기한다. 커다란 부상에도 다시 복귀 명령이 내려지자 결국 폴은 탈영한다.

탈영한 폴은 루이즈의 도움으로 파리의 작은 숙박업소에 숨어 지낸다. 연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감옥과 같은 생활을 하던 폴은 어느 날 포도주를 사기 위해 루이즈의 옷을 입고 외출한다. 오랜만에 해방감을 맛본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쉬잔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여장 남자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폴보다 쉬잔으로 더 많은 시간을 살게 된 그는 퀴어 커뮤니티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자기 성적 정체성에 새로운 계기를 맞이하고 루이즈와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이야기는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전쟁은 평범한 사람의 삶을 바꿔놓는다. 평생 살았던 고향과 집을 떠나게 만들고, 가족과 헤어지게 하며, 심지어 누군가에게 총구를 겨누거나 그 반대의 처지에 놓이게도 한다. 최근에 벌어진 전쟁만이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남성의 가장 큰 트라우마이자 젠더 갈등의 단골 소재인 군대도 우리가 전쟁 중인 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겪는 문제다.

<여장 남자와 살인자>의 폴과 이유는 다르지만, 우리 주위에는 살기 위해 성별을 정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대한 시선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프랑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여전히 우리가 나아지지 않았다고 느끼게 한다. 만화 속의 퀴어들은 숲속에서, 그것도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밤에 모였다. 물론 거기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타당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엄격한 시선으로 봐온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당장의 사건만 봐도 그렇다. 서울시는 매년 벌어지던 퀴어 퍼레이드를 예전보다 까다로운 조건으로 제한하고, 얼마 전 방송국 게시판에는 동성혼 미화를 사과하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여장 남자와 살인자> 속의 이야기는 실화다. 지금도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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